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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06. 2023

어떤 인연(3)

   #4. 회상

   업무 차 8개월 간 부산에 장기체류한다는 소녀로부터 느닷없는 연락을 받은 한 친구가 부산 사는 불교반 동기들과 만나고 싶다는 소녀의 제의를 전했을 때 소년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세 번을 만난 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거라고 후회한 피천득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엄밀히 말해 소녀와는 두 번째 만남을 끝으로 절연했으니 다시 만나는 건 난센스다.

   그럼에도 회상이라는 것은 그때는 미처 닿지 않았던 마음의 다른 한 켠을 뒤져보게 하는 순작용을 한다. 이를테면 소녀가 뭇사내들에게 추파 아닌 추파를 던진 까닭이 혹시 가정에서 받지 못한 따뜻한 애정을 동아리 동기들한테 전이시켜 대리만족을 꾀하려던 의도가 아니었을지. 만약 그게 맞는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결핍증을 충족시키고자 했던 소녀의 마음을 이해했더라면 독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박탈감에 괴로워해 소녀한테 그리 독하게 굴진 않았을 텐데. 당시 소년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냉철함으로 그리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차분하게 관조하는 척이라도 했다면 어쩌면 소녀와 소년은 막역하지는 않아도 그리우면 부담없이 연락을 취할 정도 사이로 인연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반백 살이 넘은 이 마당에 희노애락이 뒤섞인 과거일랑 망각의 장막으로 덮어 버리면 차라리 쿨하다는 공치사를 들을지 모를 일이지만 소년답지 않게 재회만은 냉정하게 거절한 소년이다. 무상한 세월 앞에 옛 추억의 부스러기 따윈 바스러지기 쉽다지만 무턱대고 만났다간 말은 또 나올 테고 그 말 속에 오해와 반목이 서슬 퍼렇게 도사리지 말란 법이 없어서다. 그러니 세 번째는 아니 만나는 게 신상에 이로울 테다. 이대로 회상하고 뉘우치며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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