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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25. 2023

마이 컸다, 깎새!

   마가 끼면 들어오는 손님 족족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염색한 머리를 헹굴 때까지는 잠잠하다가 머리 말리다 말고 느닷없이,

   "염색약이 옷에 다 묻었잖아! 이따위로 염색을 하면 어떡해!"

   앞손님 샴푸 해주느라 대기시간이 길었던 뒷손님 목에 커트보를 두르고 있던 깍새한테 눈을 부라리며 발칵 역정을 낸다. 이건 뭐하자는 시추에이션인가 싶어 멀뚱멀뚱 면상만 쳐다보다가 이내 작심하고 되받아치는 깎새.

   "염색 바르기 전에 염색보를 분명히 둘렀고 머리 감을 때도 똑같이 염색보를 둘렀는데 어째서 가슴팍에 얼룩이 생깁니까? 말 해놓고 이상하다 안 느낍니까? 말이 되야 알아먹죠."

   깎새 역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진상이 슬그머니 자리를 뜨자 나도 질 수 없다는 양 이번엔 커트 손님이 버럭한다.

   "짧게 쳐올려 달랬는데 이따위로밖엔 못 깎아요?"

   오늘 이따위로 저격 많이 당한다.

   "오늘 처음 뵌 손님 스타일을 알 턱이 없잖아요. 손님이 깎으랜다고 무턱대고 밀어 올렸다가 그게 아니면 자른 머리털 도로 갖다 붙입니까? 그러니 초면인 손님 머리는 이발 달인 할애비라도 보수적으로 깎는 법입니다. 얼추 깎아 놓고 손님 마음에 안 들어 다시 깎아 달라고 하면 눈치껏 고치면 될 일입니다. 화부터 버럭 낼 건 아니잖아요?"

   잇따른 파상 공세에 초짜 시절이었다면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 기운이 쏙 빠지면서 영혼은 이미 가출한 지 오래라. 그러다 문득 정신이 돌아오면 분통이 터져 역마살 낀 영혼이 또 가출을 감행했을 테지만 더는 호락호락할 깎새가 아니다. 지난 2년 간 매만진 머리통만 수천이 넘는다. 별의별 인간을 겪으면서 장사라면 이력이 붙은 메구가 되고도 남았다. 

   깎새 실수가 번연하다면 두말없이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게 아니고 억지를 부리거나 돼먹잖은 시비를 걸면 곧바로 대거리를 시전한다. 사리에 맞지 않게 이의를 제기하면 그 이의의 오류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어차피 점방 안에서 벌어질 분쟁은 이발 아니면 염색 관련한 불만일 텐데 '이따위로' 욕바가지를 뒤집어 쓸 어설픈 깎새가 더는 아니라고 재차 강조하겠다. 그러니 마가 단단히 낀들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하다. 마이 컸다, 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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