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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09. 2024

격전

   작년 초여름 처음 발을 들인 이래 점방 올 적마다 시시콜콜하게 트집을 잡아 깎새 염장을 지르던 손님과 지난 토요일 아침 결국 일대 격전을 벌이고 말았다. 손님 앞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건 그만큼 매상이 줄어드는 의미라는 걸 잘 아는 깎새는 집을 나서기 전 제 배알을 냉장고에 고이 모셔 두고 점방을 향함으로써 장사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가 장사에 미칠 악영향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대거리를 불사한 까닭은 습관처럼 깎새 속을 헤집는 터무니없는 트집에 참는 것도 한도가 있음을 절감해서였고 이대로 계속 받아줬다가는 코뚜레 움켜잡힌 소마냥 두고두고 끌려다닐 걸 염려해서였다. 그 손님이 지불하는 금액만큼 평생 못 벌 걸 각오하고 말이지.  

   토요일 아침이라 느긋했다. 정상적으로 커트하고 염색을 바른 뒤 샴푸까지 순조로웠고. 그러다 다른 손님이 새로 들어 와서 커트를 준비하던 차였다. 한참 머리를 말리다 말고 트집쟁이가 느닷없이 염색이 잘 안 됐다면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흑갈색 염색을 하면 손님에 따라 머릿결에 붉은 빛이 살짝 감돌긴 한다. 때마침 창문을 통해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보니 염색한 머리카락에 흐리멍텅한 붉은 빛이 더 감도는 착시를 일으켰다. 단언컨대 염색 작업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꼬투리 하나 잡았다 싶었는지 어김없이 깎새를 물고 늘어진 노친네. 무슨 억하심정인지 모르겠지만 여태껏 단 한 번도 그냥 곱게 넘어가질 않는 행상머리에 깎새가 그만 폭발하고 만 게다. 작년 8월쯤 이 트집쟁이를 소재로 <트집 3종 세트>란 글을 썼을까. 오죽했으면!


​   장사를 하다 보면 별의별 손님을 다 겪는다. 그러니 일일이 일희일비하다가는 되레 감정 소모로 이어지기 십상이라 그저 일없이 넘어가는 게 신상에 이롭다. 하지만 마수걸이 손님이 아침 댓바람부터 별 시답잖은 트집을 그것도 3종 세트로 작렬할 때는 깎새 공고한 인내에도 심각한 균열이 생긴다. 

   나이를 점잖게 잡순 멀쩡하게 생긴 노친네가 유난히 까탈스럽게 굴었다. 이발의자에 앉자마자 트집의 초탄을 날린다. 점방 연락처를 왜 등록시키지 않았느냐는 거였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유분수라서 소상히 여쭈었더니 혹시 휴가라도 갔는가 싶어 네이버에서 점방 연락처를 검색해봤더니 안 나오더라나 어쨌다나. 네이버에다 점방 등록을 시키는 방법을 모를 뿐더러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껴서 안 했으니 당연히 연락처가 나올 리 없다고, 동네 장산데 그런 데다가 꼭 등록을 해야 하냐고 반문했더니 입을 쏙 봉해 버린다.

   커트보를 두르고 앞머리 지간을 막 잡으려는데 또 트집 일발 장전이다. 제발 머리 좀 짧게 깎지 말라나.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싶어 거울 속에 비친 손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그리 단언하는 까닭을 재촉했더니 깎을 적마다 적당하게 깎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멈출 줄 모르고 마구 깎아 제낀다고 이기죽거린다. 어이가 없는 깎새는 대답할 일고의 가치를 못 느껴서 말문을 아예 닫아 걸었다. 예를 들어 어떤 손님이 먼젓번에 너무 올렸으니 이번에는 신경 써서 적당히 깎아 달라고 요청을 하면 십분 수용해 두 번 실수를 안 하는 깎새다. 하여 말귀를 잘 알아먹는 깎새로 정평이 나 점방 찾는 커트 손님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를 않는다. 만약 시비조로 일관하는 노친네의 경우처럼 올 적마다 지상가상없이 짧게 깎기만 했으면 점방을 접었어도 진작에 접었을 거이다. 처음에 실수가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하지 말라는 짓은 두번 다시 안 한다는 게 깎새의 철칙이다. 고로 두 번째 트집도 어불성설이다. 

   세상은 삼세번으로 돌아간다고, 점방에서 판매하는 탈모 예방 샴푸 가격을 가지고 노친네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트집을 잡는다. 깎새는 알고 있다. 노친네가 들를 적마다 입버릇처럼 샴푸 가격을 물어본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어김없이 가격을 또 물어보는 것은 노친네 인지에 장애가 생겼거나 기필코 에누리한 값으로 샴푸를 쟁취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로밖에는 의심할 수 없다. 

   - 저 샴푸 얼마요?

   - 3만5천 원입니다.

   - 저번에는 3만 원이라더니.

   - 물가가 올라 올해 초에 4만 원으로 가격이 올랐지만 작년 가격으로 받겠다고 지겹도록 말씀드렸을 텐데요.

   땅 판다고 돈이 나오냐 금이 나오더냐며 우짜든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부친은 신신당부하셨다. 성심성의를 다해 손님을 응대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푼돈일지언정 커트값 5천 원 벌기가 참 지난하다는 건 절감하고도 남음이다. 그러니 끼니 때우겠다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려고 해도 그 100원, 200원 차이가 아까워서 김밥을 들었다 놨다 하지. 하지만 차라리 안 벌고 말지 진상 손님 때문에 지레 말라 죽고 싶진 않다.(2023.08.08)


​   이발의자에 손님이 대기하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옥신각신했다. 염색물이 안 들었다는 부위를 깎새 얼굴에다 들이밀면서 잘못했다고 빌면 순순히 넘어갈 텐데 손님한테 왜 바락바락 대드냐길래 당신 머리카락 색깔이 그런 걸 난들 무슨 수가 있나, 한두 번 온 것도 아니면서 오늘따라 왜 이리 유난을 떠느냐, 정 마음에 안 들면 염색값 돌려줄 테니 제발 다시는 오지 말라면서 맞대들었다. 씩씩거리던 손님은 미리 계좌이체한 요금 돌려달라고 했고 커트비를 뺀 나머지를 되돌려 줬다. 입금을 확인하자 궁시렁대면서 거칠게 나가 버렸다.

   이발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던 애먼 손님 커트를 서둘러야 했지만 일손이 영 잡히지 않았다. 한바탕 난리 때문인지 트집쟁이가 나가면서 퍼부은 저주 때문인지 이후로 일진도 엉망이었다. 시시콜콜하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끝내 분노 조절 장애를 일으킨 결과는 참담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자괴감을 달래기엔 그날 하루로는 부족했다. 며칠 동안은 출근해 영업을 알리는 사인볼을 돌릴 적마다 그때 그 실랑이가 떠올라 아침 맑은 기분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득보다 실인 줄 뻔히 아는데도 욱해 버리는 성마른 성미가 망조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면 고질이지만 이 고질 때문에 결국 마음 상하고 장사도 상할 게다. 그러니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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