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Jan 10. 2024

자기검열

   7~8년 전 독서토론 모임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다. 이 아무개는 당시 43세 미혼 여성이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해 중남미 지역에서 코트라 직원으로 일하다 귀국해 부산에서 직장생활하며 정착했다. 한번은 이 아무개가 모임 당일 오후에 불참을 단톡방으로 통보해왔다. 숙부께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애도를 표하면서 불참을 아쉬워했다. 잠시 뒤 그니는 급히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내용을 요약하면 그니가 미혼 여성이라서 부의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모친이 알려줬지만 판단이 안 서 회원들에게 물어보는 거였다. 생전 숙부와는 그리 돈독하지 않았고 사회 통념으로 어떻게 하는 게 도리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글을 읽고 곧장 키보드를 두드려 댔다.


   본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고인에 대한 본인의 감정이 부의금을 내고 싶어 하면 내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미혼이니 기혼을 따질 계제는 아닐 듯합니다. 하다하다 상갓집에서까지 남녀를 구분짓는 게 한심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엔터키를 누르려다 일순 망설여졌다. 그간 접했던 이 아무개의 면면이 불현듯 떠올라서다. 그니는 예민한 편이었다. 오롯이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예쁘게 포장하면 센시티브하고 상대와 의견 대립이 보이면 슬그머니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걸 적잖게 포착되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게다. 딴에는 위한다는 글이 오해의 빌미가 되어 감정만 상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 나머지 쓴 글 옆에다 괄호로 사족을 달았다.   

   (어머니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미혼이니 비혼이니 하는 따위로 차별 아닌 차별을 짓는 사회가 구저분해서 그런 것이니 오해는 마시길.)


  꼬리를 단다고 달았지만 그조차 영 구차해 보여서 엔터키만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다른 회원이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00님의 생각이 가장 우선이죠...하는게 좋을것 같으면...하시구요 ㅋ’ 다정한 투로 먼저 다가섰다. 그길로 내가 쓴 댓글을 싹 지웠다.

   조언이 그럴싸했는지 부의금은 안 내는 걸로 정했다. 댓글은 안 달았지만 어쨌든 속엣말이 관철된 성싶어 안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찝찝했다. 내 속엣말이나 다른 회원이 단 댓글이나 골자야 오십보백보임에도 댓글 달 생각을 감히 못한 까닭은 뭘까? 혹시 댓글을 쓰는 내내 그니의 감정을 살피다 끝내 알아서 기고 만 자기검열이 작동해서가 아닐는지.

   이기와 이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조절능력, 즉 자기검열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선까지가 평탄한 표현인지를 아는 건 참 어렵다. 댓글을 단 회원은 명쾌하게 그 벽을 뚫고 나왔고 나는 멍청했다. 그리고 여전히 멍청하다. 

   '처녀비행'이란 낱말로 고민하다 예전 일이 떠올랐다. 오늘 게시글 다음 글 제목으로 그 낱말을 쓸지 말지 판단이 안 선다. 두 개의 실질형태소가 결합된 겹낱말 중 '처녀'란 낱말이 성인지 감수성에 저촉되느냐 아니냐를 고민하는 중이다. 알아서 길 것 같으면 제목으로 삼으면 안 되겠지만 글을 쓴 목적에 부합한다는 측면에서는 이 낱말만 한 게 없다. 하여 쓸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다. 

   별 게 다 고민거리긴 하지만.

작가의 이전글 격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