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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Apr 03. 2020

新 석유 전쟁의 발생 원인 분석과 향후 시나리오 전망

이번 주 내내 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 금일 새벽에 생각보다 빠르게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감산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발표를 해버렸네요;;


타이밍은 조금 늦어 민망한 글이 되었지만(어젯밤에 올릴걸 괜히 한번 더 수정한다고 질질 끌어서...), 그래도 아무쪼록 본 글이 갑자기 발발한 새로운 석유 전쟁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 2020년 3월 6일, 산유국 연합체 OPEC+*는 2017년 이후 이어오던 감산 합의 연장에 실패했다.


* OPEC+ :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들과 10개 비회원국으로 이뤄진 산유국 연합체


국제 유가는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이미 하락 추세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OPEC+가 감산 규모를 더 늘려 유가를 다시금 끌어올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산 합의가 실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감산 합의를 먼저 깬 국가가 석유 생산 단가가 중동 국가들보다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합의가 실패하자마자 합의를 다시 시도하기보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석유 생산량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국제 유가가 끝없는 추락을 할 수 있다는 선언과 다름이 없었다.


 

지역 및 주요 국가별 1일 원유 생산량 (2017년 기준, 자료 출처 : 한국무역협회)


이에 지난 1월 초까지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 유가는 날마다 곤두박질친 끝에 현재는 배럴당 20달러를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으로 1/3 토막이 나고 말았다.


도대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그리고 그들의 타깃으로 알려진 미국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일까?






 1. 저유가 출혈 경쟁은 석유 에너지 산업의 전통(?)이다. 


사실 감산 합의가 실패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정확하게 모를 것이다. 다만, 과거 역사를 되짚어 보고, 각 국가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현재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게 된 몇 가지 원인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석유의 가격, 즉 유가가 어떻게 움직여왔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유가는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종교 중 하나인 '보이지 않는 손'은 적어도 석유 에너지 시장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설명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정상적으로 동작하여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아주 많은 다수여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석유 시장에서는 수요자는 많은 반면, 공급자는 아주 적은 소수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공급자는 시장에 어떤 공급자들이 있는지, 얼마나 공급할 수 있는지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특수한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동작할 수 없는 상황이 아주 쉽게 발생하는 것이다.


수요가 감소하면? 그에 맞춰 공급을 감소시키면 된다.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은 증가시켜도 좋고, (공급자 입장에서는) 공급이 부족하여 가격이 치솟아도 좋다. 가격이 치솟으면 자연스레 공급량을 늘려 높은 가격이 주는 이득을 얻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가는 자연스레 석유 생산을 틀어쥐고 있는 소수의 공급자들에 의해 움직인다. 이 소수의 공급자들, 이른바 '큰 손'이 서로 협력한다면 그들에겐 가격을 자기 맘대로 붙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큰 손'의 시작은 과거 미국의 석유왕으로 불렸던 록펠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록펠러는 1860년대 초창기 미국 석유 산업의 중심지였던 클리블랜드에서 정유 사업을 차리며 석유왕으로써의 행보를 시작했다. 록펠러는 석유 운송으로도 재미를 본 후, 이것을 발판으로 클리블랜드의 정유소들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75년에는 클리블랜드의 정유 능력 중 95%를 장악할 정도로 시장 독점에 성공했다.


그는 이 방식을 미국 전체로 확장하여 1882년 스탠더드 트러스트라고 불리는 트러스트(동맹)를 구축하여 실제 자신이 가진 것 이상으로 덩치를 키워서 가격 결정권을 틀어쥔 뒤, 경쟁자가 나타나면 저가 정책을 구사하거나 정치, 언론 등을 동원하여 경쟁자를 무너뜨린 후 그 경쟁자를 인수하는 식으로 더욱 덩치를 크게 만들었다.


당시 미국의 자유방임적 경제 상황에서는 이렇게 독점적 지위의 기업이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점점 덩치가 커질 수 있었다. 그렇게 20세기 초가 되자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마침내 미국 석유 시장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비록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반 트러스트 법'의 등장으로 스탠더드 오일은 34개 회사로 쪼개졌지만 록펠러의 후예들은 록펠러가 사용했던 방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스탠더드 오일에서 분리된 기업들 중 가장 큰 규모였던 스탠더드 오일 뉴저지/뉴욕/캘리포니아 등이 스탠더드 오일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텍사코, 걸프 오일 등과 영국계였던 쉘과 BP 등과 함께 7 Sisters로 불리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국제 석유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들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간혹 이들에게 반기를 드는 존재가 나타날 경우 인위적인 저가 정책으로 상대방을 고사시켜 버리고, 상대방이 무너지면 다시 원유 가격을 올리는 식으로 석유 시장을 장악했다. 이런 식의 경쟁은 덩치가 크고 자본력이 강한 쪽이 무조건 승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7 Sisters 이외의 기업들은 감히 이들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공개거래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정하여 공시하는 가격이 곧 전 세계의 유가로 통용될 정도였다고 한다. 7 Sisters는 그렇게 1950년대까지 세계 유가를 좌지우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일으키는 인위적인 저유가 상황이 세계 에너지 수요가 석탄에서 석유로 급격하게 이동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도 저유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가 잠잠해졌다가, 고유가가 시작되면 친환경 에너지 논의가 대두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때까지 중동 산유국들은 아직 자신들의 힘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1945년에 끝난 2차 세계 대전까지는 유럽 국가들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유전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또 석유 생산 능력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7 Sisters가 유전을 개발해서 이익을 올리면, 그 이익을 나눠 받는 처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196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장관으로 셰이크 야마니(Sheikh Ahmed Zaki Yamani)라는 인물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마침 미국이 1967년에 일어난 3차 중동 전쟁(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편을 들자, 야마니는 미국에 대한 반발로써 아랍만의 석유 카르텔인 OAPEC를 결성하고 아랍 오일 엠바고(Arab Oil Embargo)라는 석유 수출 중단 조치를 거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 중단을 논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4차 중동 전쟁에서 미국이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1973년 10월 야마니는 석유 공시 가격을 하루아침에 3달러에서 5.12달러로 끌어올리는 충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차 오일 쇼크'였다.


결국 이 조치로 인해 세계 경제는 크게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세계의 맹주로 등극했던 미국 경제에도 큰 위기를 몰고 왔다. 이때는 마침 미국이 1971년 8월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달러를 가지고 와도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선언(불태환 선언)을 한 뒤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는 아직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진정한 화폐는 지폐와 같은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금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제는 달러를 가져와도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 하자 많은 국가들이 더 이상 달러를 보유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에서 내려올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1976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다시 한번 상황은 하루아침에 급변하게 된다. 합의의 핵심은 간단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든 석유 거래를 금이나 다른 국가의 화폐가 아닌 미국 달러로만 살 수 있게 하는 대신, 미국은 적극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해준다는 조건이었다.


1971년 미국의 불태환 선언 이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들은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해 달러를 처분하고 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결제에는 미국 달러만 이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자 이제는 반대로 석유를 사들이기 위해서 다시 달러를 구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의 보호막이 생기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적극적으로 석유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란을 필두로 한 OPEC 내부의 일부 강경파 세력은 감산을 통해 가격 인상을 지속하고자 했지만 그 사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생산량을 늘려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17.2% (현재는 13% 수준)를 점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OPEC 내부에서 감산을 주도했던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반대로 생산량을 늘렸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카르텔의 맹주로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석유 산업에서 과거 7 Sisters의 힘은 자연스럽게 중동 산유국으로 넘어갔다. 야마니의 주도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채굴/수송 회사였던 아람코의 지분율을 늘리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중동의 석유 산업을 영미 서구사회로부터 되찾아온 야마니를 두고 사람들은 석유 황제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석유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1986년부터 2003년까지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 기준 평균 유가는 배럴당 21.5달러를 유지했지만, EIA(미국 에너지 정보청)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세계 석유 공급은 일일당 1,807만 배럴이 증가한 반면 수요는 그보다 많은 1,827만 배럴이 늘어났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음에도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던 것이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진 고유가 때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 연평균 유가는 배럴당 93달러 이상이었던 해가 다섯 번이 넘는 고유가 상황이었지만 이 기간 동안 공급은 일일당 1,130만 배럴이 늘어난 반면, 수요는 일일당 1,111만 배럴 늘어났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위와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다.


 이 같은 역사를 통해 현재 석유 카르텔 참가자들이 축적한 경험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유가는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공급을 조절할 능력이 있는 석유 생산의 큰손들에 의해 결정된다.  


2) 록펠러 이래로 석유 생산 기업들은 덩치를 키우고, 자본과 생산량에 기반한 인위적인 저가 정책을 펼쳐 상대방을 고사시키는 전략에 익숙하다.


3) 사우디아라비아는 안정적인 석유 공급과 달러 패권을 보장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4) 석유 카르텔이 하나로 뭉치지 못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증산을 통해 패권을 장악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석유 카르텔이 역사적 경험으로 축적해온 지식들을 살펴보면 현재 석유 카르텔 참가국들의 움직임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 러시아는 왜 감산합의를 먼저 깼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대로라면 올 3월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있었던 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합의 연장 및 확대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러시아는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 핑계를 대며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은 감산 합의에 동참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유가를 높게 형성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절하는 사이 셰일 오일 기업들은 생산량을 엄청난 속도로 증가시켰던 것이다.


(시각화 자료 출처 : 노컷 뉴스)


하지만 러시아도 중동 국가들 못지않게 석유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고, 석유 채굴 단가도 중동 국가들보다 높은 상황이었기에 러시아의 이런 출혈 경쟁 선언은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통상적으로 사우디의 채굴 단가는 배럴 당 10달러 미만으로 알려져 있고, 러시아는 20달러 수준, 미국 셰일 오일 기업 등은 4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대체 무엇을 위해, 큰 고통이 뒤따르는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1) 국가 재정 상태를 반영한 채굴 단가는 러시아가 가장 낮을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단순히 러시아의 순 채굴 비용은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보다는 낮으나, 중동 산유국들보다는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저유가로 인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고통은 예상과 달리 러시아가 국제 산유국들 중에 가장 적을 수 있다.


래피던 에너지 그룹의 밥 맥널리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산유국의 고통은 배럴당 생산원가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각국 국가재정 상태를 반영한 손익분기점을 봐야 알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석유를 생산했을 때 벌어들일 수 있는 돈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산유국들의 씀씀이까지 감안하면 실제로 받는 고통은 채굴 비용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채굴 비용이 높아서 저유가 상황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중동 산유국들보다 적더라도, 러시아는 검소한 생활을 하는 반면 중동 산유국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간다면 저유가에 더 타격을 입는 것은 중동 산유국들이 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계산해 발표한 2020년 국가재정 상태 반영 원유 채굴 손익분기점은 다음과 같다.


(시각화 자료 출처 : 중앙일보)


위 계산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채굴 단가는 중동 산유국들이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씀씀이가 헤픈 탓에 실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유가는 훨씬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민들에게 풍족한 복지를 제공하는 한편, 탈 석유시대를 대비해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재정위기에 빠진 바레인을 지원하는 등 여기저기 돈 쓸 일이 많은 상황이다.


바로 이런 점을 통해 왜 사우디아라비아가 먼저 감산 연장을 제안했고, 러시아는 이것을 거부할 수 있었는지 대략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 모두 미국에 섭섭한 것이 많고, 셰일 오일 기업들이 눈엣가시 같았던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산이 더 절실한 상황이었고,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쉬운 것이 있는 이상 언제든지 감산 합의는 다시 할 수 있으니 이번에야 말로 뭔가 판을 새로 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 있다.



(2) 결국 미국(또는 트럼프)에게 뭔가 얻어내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은 러시아이다.


일단 감산 합의 연장을 사우디가 아닌 러시아가 먼저 걷어찼다는 것을 보면, 판을 다시 짜건 아니면 미국에 무언가를 얻어내건 상황을 바꾸고 싶은 것은 러시아임을 알 수 있다.


일단 러시아가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을 노린다는 것이지만, 진짜 이것을 노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까지는 현재로썬 알기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을 놓고 봤을 때 단순히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을 노린다는 명분은 진짜 속 뜻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바로 셰일 오일의 채굴 특성 때문이다. 셰일 오일은 그 특성상 비용도 많이 들고 심각한 환경 오염도 일으키지만, 대신 기존의 대규모 유전 개발 방식보다 훨씬 더 빠르게 뽑아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셰일 오일 기업들이 채굴을 중단하더라도 국제 유가가 다시 배럴당 40달러 이상으로 올라가면 셰일 오일 기업들은 언제든지 다시 석유 채굴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각화 자료 출처 : 사이언스타임즈)


(시각화 자료 출처 : 동아일보)


그렇다면 산유국들은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계속해서 배럴당 40달러 미만의 저유가를 유지하던가 2) 미국까지 감산 협정에 끌어들여 생산량을 같이 조절하던가 3) 아니면 예전처럼 미국을 내버려둔 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OPEC+의 태두리 안에서 감산 협정을 다시 체결하던가 하는 것이다.


1) 번이 목표일 리는 없으니 결국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2) 번이거나 아니면 미국(트럼프)에게 뭔가 원하는 것을 얻어낸 후 다시 3) 번으로 돌아갈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전통적인 산유국들은 이미 2016년에 미국의 셰일 오일 기업들을 노리고 유가 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은 곧 고사될 것처럼 보였지만, 셰일 오일 기업들은 채굴 비용을 낮추고 금융권의 지원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각화 자료 출처 : 노컷 뉴스)


WTI 석유 가격 그래프 (2006 - 2020, 자료 출처 : 세인트 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물론 러시아가 이번에는 진짜로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을 몰아내기 위해 저유가 출혈 경쟁을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은 2016년처럼 버틸 수 있는 체력도 없고,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까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에너지 업계를 도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지금 당장은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이 줄 도산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유가가 배럴당 60-80달러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셰일 오일 채굴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러시아가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을 무너뜨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감산 합의를 걷어찬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그것이 무엇일지는 비밀리에 제안을 하는 러시아와 비밀리에 제안을 받는 존재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두고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러시아 입장에서 하늘이 내려준 기회일 수도 있다.


감산 합의가 실패한다고 해서 무조건 석유 증산을 무한대로 늘릴 수는 없다. 수요가 넘치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감산에 실패하거나 어설프게 증산을 한다고 해서 유가가 지금처럼 폭락하기는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저유가 쇼크를 극대화시키기에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때마침 미국 경제에서 셰일 오일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해왔다. 미국 석유연구소(API)에 따르면 미국에서 에너지 부문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6%,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셰일 오일 기업들이 무너지면 미국 GDP는 3~4%가 후퇴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독립석유협회(IPAA)에 따르면 에너지 부문에서 만들어내는 일자리만 450만 개라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선 실업자가 20~30만 명만 늘어나도 경제 위기가 닥쳤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셰일 오일 기업들이 무너지면 당장 수백만명의 실업자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극적으로 당장 코로나19를 수습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셰일 오일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져 GDP가 3~4%가 하락하고, 실업자가 수백만 명이 생긴다면 재선은 물 건너간 것과 다름이 없다. 반대로 상황이 변해 유가가 7~80달러 수준으로 치솟는다면 미국은 석유를 판 돈으로 빠른 경제 회복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면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3. 사우디아라비아는 왜 기다렸다는 듯이 석유 생산량을 늘리고 있을까? 


그렇다면 감산 합의가 실패하자 왜 사우디아라비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과거 경험을 통한 본능적인 행동일 수 있고, 둘째로 미국을 향한 경고 메시지일 수도 있다.



(1) 사우디아라비아는 과거 경험으로 현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먼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합의가 실패되었을 때 되려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다. 가격이 낮아지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채굴 비용이 낮아 아직은 손해를 보고 팔 정도는 아니므로 생산량을 늘려 가격이 떨어진 만큼 이익을 늘리는 박리다매 전략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렇게 박리다매로 버티기를 성공했을 때 결국 다시 감산 합의를 하더라도 합의에 참여하는 상대방보다 더 우위에 설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우디가 하루에 1,000만 배럴 생산해내던 것을 1,500만 배럴로 늘렸다고 가정해보자. 1,000만 배럴일 때는 10% 감산한다고 가정하면 900만 배럴을 생산해 판매할 수 있다. 그런데 1,500만 배럴로 생산량을 늘린 상태에서 감산 협상에 들어간다면 20%를 감산했다고 생색내더라도 1,500만 배럴에서 1,200만 배럴로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증산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 길들일 수 있다. 지금까지 석유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결국 승자는 채굴 단가가 낮고, 더 오래 버틸 체력이 있으며, 단기간 내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는 국가가 승리해왔다. 이걸 러시아도 알고 있는 상황이므로 당장 증산이 용이하고, 중동 동맹국들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경쟁은 피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처한 상황은 게임 이론에서 넌제로섬 게임(non-zerosum game)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연속해서 발생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은 서로 협력할 경우 모두 작은 이익을 볼 수 있고, 배반할 경우 먼저 배반한 사람만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딱 1번만 한다면 참가자들은 서로 배반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같은 참가자들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계속해서 여러 번 치른다면 게임의 룰이 달라진다. 이때는 상대방을 매번 배반하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전략들 중 연속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상대방이 배반하지 않도록 묶어두면서 참가자들이 다 같이 최상의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전략은 팃포탯(Tit for tat)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상대방이 배반하려고 한다면 나도 함께 배반한다는 전략을 사용했을 때 게임의 참가자들은 불필요한 싸움을 멈추고 서로 협력하여 작은 이익을 얻도록 노력하게 된다.


마침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장 개발되어있는 유전의 양이 러시아보다 더 많아 생산량을 단기간 내에 늘리는데 더 우위에 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셰일 오일 개발 방법과 다르게 전통적인 유전 개발 방법은 탐사부터 개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당장 최대한 증산을 하여 더욱더 심각한 저유가를 불러일으키면 미국 셰일 오일 기업들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 길들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2) 사우디도 미국에 섭섭한 게 많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당장 1차적인 목표는 러시아라기보다는 미국의 셰일 오일 기업들로 보인다.


지난 10년 사이 중동 지역의 정세는 많이 변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미국이 에너지 독립국이 되었다는 점과 더 이상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는 다른 통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70년대 전까진 달러가 무너지면 그냥 세계 각국이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금본위제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진국들 중 그 어떤 나라도 금 본위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석유 결제에 달러 대신에 유로나 위안화, 엔화를 사용하기엔 그 화폐들이 갖는 역사도, 화폐를 만드는 국가들의 힘도 부족한 상황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이 에너지 독립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더 이상 외부에서 유입되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급속히 식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미국 우선주의/고립주의를 지향하고, 경제인으로써 전쟁 비용을 혐오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 입장에서 발을 빼고 싶은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2016년부터 기존의 전통적 중동 동맹국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만한 일들을 여럿 저질렀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인정했던 사건부터 지난해 시리아 내전에서 마음대로 발을 뺐던 사건도 있었다.


예루살렘은 아랍인들(이슬람교), 이스라엘인들(유대교), 그 밖의 기독교 등 여러 종교들의 성지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실효 점유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은 섣불리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인정하는 초대형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당연히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슬람 국가들은 미국의 이러한 행동이 격분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의 없이 마음대로 발을 빼기도 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는 수니파 반군 세력을 지원하며 시아파 세력을 지원하는 이란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서 일방적으로 발을 빼자 수니파 세력이 단숨에 궁지에 몰린 것이다.


이 같은 사건들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하여금 미국이 언제든지 자신들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을 것이고, 조만간 한번 미국에 경고를 날려야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러시아 감산 카르텔에 편승하여 이익을 챙기고 있는 미국의 셰일 오일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도 매우 거슬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석유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지난 3월 20일 에너지부 소속의 고위 관리를 부랴부랴 사우디로 보내 사우디에서 아예 상주하면서 설득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은 현재 적극적으로 OPEC 보다 더 확장된 새로운 감산 카르텔을 만들자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단 대외적으로 기사화된 사실 중에는 미국이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거나, 러시아와 어떤 협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저 푸틴과 트럼프가 서로 통화했다는 소식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감산을 먼저 깬 것은 러시아지만, 미국이 공식적으로/적극적으로 달래고 있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인 것을 알 수 있다. 감산 합의를 먼저 깬 것이 러시아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합의 연장을 제안했었다면 상식적으로 미국이 설득하려고 애써야 될 존재는 러시아여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의는 기사화되는 반면 러시아와의 협의는 기사화되는 것이 없을까?


이것은 러시아와는 공개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것이 진행된다면 새로운 감산 카르텔은 사우디아라비아만 설득하면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4. 지금 마음이 가장 급한 사람은 누구일까? 


(1)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바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셰일 오일 기업들은 미국 경제 중 아주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셰일 오일 기업들이 무너진다면 미국 경제는 엄청나게 후퇴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시점에서 대통령 선거밖에 모르는 남자인 트럼프에게 엄청난 장애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한 에너지 자립으로 중동 정세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의 치적 중 하나로 자랑할만했다. 하지만 미국 셰일 혁명이 무너지고 나면 치적으로 내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금 골치 아픈 중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수 있다.



(2)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


두 번째로 마음이 급한 곳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닐까 싶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출을 감축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낮출 수만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가 급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재정 지출 씀씀이가 러시아보다 헤플뿐더러, 국민들은 러시아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재테크 전문가들이 신신당부하는 것 중 하나가 함부로 생활수준을 높이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 생활수준을 높이고 나면 그것을 낮추는 것은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어렵기 때문이다. 앞선 석유 전쟁에서 많은 아랍 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정권이 무너진 사례들이 있었던 점도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쉽사리 국민들에게 생활수준을 낮추고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빈살만 왕세자는 아람코를 상장시켰으며, 왕위 계승을 앞두고 있다.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왕위 계승이 발생한다면 아마 국민들 반응이 썩 좋진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석유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물론 지금처럼 저유가가 유지된다면 석유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체제는 좀 더 장기간 이어질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돈을 적게 버는 상황이 되면 미래를 대비하는 투자는 예전보다 적어질 수밖에 없다.



(3) 러시아의 입장


러시아 또한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영구 집권 체제로 가는 상황에서 저유가로 인한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것이고, 그동안 경제위기로 혁명이 발생해 정권이 무너진 수많은 산유국들의 운명과 같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푸틴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석유 머니를 이용한 안정적 경제 운영이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이어진 경제적 혼란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경제를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이 설혹 석유 머니의 힘이더라도) 푸틴의 장기 독재를 허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 또한 아주 장기간 동안 저유가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상대들은 러시아가 감산 합의를 거부하고 증산하는 치킨 게임을 벌인다고 해서 모두 없애고 혼자 살아남을 수가 없는 상대들이다. 아주 빠른 시일 안에 원하는 것을 얻어 석유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러시아가 바라는 그림일 것이다.






 5.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를 토대로 앞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모두 네 가지이다.


첫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가 밀실 합의에 성공한 후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하여 미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감산 카르텔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로써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이며, 이 경우 저유가는 단기간 내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미국의 셰일 기업들이 줄도산하여 결국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도 현재로썬 유력한 시나리오이며, 저유가가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시나리오지만, 미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감산 카르텔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전과 같은 고유가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미국이 셰일 오일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재정지원을 하여 셰일 기업들이 좀비처럼 버티고 버텨 결국 반대로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의 정치 불안정이 촉발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의 수습을 위해 엄청난 재정지출을 하고 있는 미국이 셰일 기업들까지 챙기기 위해 재정 지출을 훨씬 더 늘리는 것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이미 2016년에 한 번 발생한 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발생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상황은 미국이 셰일 오일 기업들을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도 재정 지출 감축에 성공하여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저유가가 지속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국민들의 불만을 억누른 상태에서 획기적으로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을까? 아마 감산 카르텔의 유혹이 더 클 것이다.






# 참고서적, 자료

- <오일의 공포> 이종헌, 손지우 지음

- [세계 원유시장 현황 및 국제유가 동향] 한국무역협회 엄혜선 작성

- [이제 진짜 원유전쟁 시작, 승자는 ‘이것’을 봐야 알 수 있다]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743434

- [美 슈퍼부양책 비웃는 국제유가…빅3 '석유패권' 갈등]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5317609

- [셰일가스 부도시계 째깍째깍… ‘금융위기 팬데믹’ 뇌관되나] 동아일보 http://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00328/100388637/1

- [석유 고갈 걱정 덜어준 ‘셰일 가스’] 사이언스타임즈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84%9D%EC%9C%A0-%EA%B3%A0%EA%B0%88-%EA%B1%B1%EC%A0%95-%EB%8D%9C%EC%96%B4%EC%A4%80-%EC%85%B0%EC%9D%BC-%EA%B0%80%EC%8A%A4/

- 세인트 루이스 연방준비은행 / https://fred.stlouisfe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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