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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May 21. 2020

경제적 해자를 통해 살펴본 유행의 지속 가능성

만약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이 전파되는 경우에는 어떤 것이 받아들여지고, 어떤 것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경우에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억에 잘 남는 생각이 이기는 것일까요?


경쟁 관계에 있는 두 가지 생각이 있을 때 어떤 생각이 이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한 서적이나 자료를 저는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가치투자와 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경제적 해자'의 개념을 통해 여러 생각들이 서로 경쟁할 때 어떤 것이 살아남고, 어떤 것이 도태될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적군을 막기 위해 성벽 주변에 만들어둔 물가를 해자라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겐 이른바 '생각의 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생각의 해자를 극복할 수 있는 생각은 기존의 다른 생각들을 무찌르고 왕좌에 오를 수 있는 것이고, 생각의 해자를 극복하지 못하는 생각은 유행이 되더라도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지 못하고 금세 사라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 펀드 평가회사인 모닝스타의 가치투자자들이 낸 저서 <경제적 해자 실전 주식 투자법>에 따르면, 모닝스타에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중 한 가지 이상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경제적 해자'를 갖춘 기업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1) 무형자산

2) 비용우위

3) 전환 비용

4) 네트워크 효과

5) 효율적 규모


이 다섯 가지를 지금까지 살펴본 생각의 경쟁에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무형자산 : 기업이 가진 특허권이나 특정 산업의 영업권 등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해당 기업의 영업을 보호해주는 자산들은 도시를 보호해주는 성벽처럼 기업을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 생각이 가진 독창적인 점이 있다면, 그 생각은 다른 생각들과는 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비용우위 : 어떤 기업이 가진 특별한 생산 방법, 판매 방법 등이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들과는 차별화된 점이 있어서 훨씬 더 낮은 비용에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면 그 기업은 비용우위라는 해자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생각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더 쉽게 기억되고, 뇌리에 찰싹 달라붙을 수 있다면 그 생각은 확산 과정에서 비용우위를 갖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가 가진 인지적 유창성을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생각이 바로 그런 종류입니다.


3) 전환 비용 : 소비자들이 어떤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한번 받아들이고 난 후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쉽사리 다른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로 바꿀 수 없다면 그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는 전환 비용이라는 해자를 갖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을 쓰던 사람이 쉽사리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지 못하고,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던 사람이 아이폰을 불편해하는 것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난 후, 그것을 대체할만한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많은 부분들을 바꿔야 된다면 새로운 생각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시아 문화권에서 유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 중 많은 부분을 바꿀 필요가 없는 종류의 종교들, 예를 들면 불교나 도교 등에는 관대했던 반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 중 많은 부분을 바꿔야만 했던 서양의 기독교에는 강한 반감을 가졌던 것 또한 바로 전환 비용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네트워크 효과 : 네트워크 효과란 어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쉽사리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말합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떤 생각이 사회적 네트워크의 주류로 퍼져나간다면,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생각이 가진 힘은 점차 더 커질 수 있습니다.


5) 효율적 규모 : 효율적 규모란 어떤 한 기업이 속한 비즈니스 세계가 안정된 과점 규모로 서로 사이좋게 이윤을 나눠갖고 있느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효율적 규모를 가진 시장이란 신규 기업이 그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 경우 기존 기업들과 신규 기업이 이익을 포기하고 적자 경쟁을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신규 기업이 섣불리 진입을 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시장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은 3개의 기업이 사이좋게 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에서는 제4의 이동통신 기업이 참여를 하여 더 활발한 경쟁이 발생하길 바라지만 민간 기업들은 해당 분야에 뛰어들 경우 어마어마한 투자 대비 거둘 수 있는 이득은 적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섣불리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우리가 소화해낼 수 있는 생각의 규모에 부합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가 한 번에 소화해낼 수 있는 규모를 벗어난다면 그 생각은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한 번에 뒤집는 일대 혁명적 이론이었지만, 당시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3명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바로 생각의 효율적 규모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다섯 가지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생각이 우리에게 전파되더라도 그것이 쉽게 대체가 가능한 것일지 아니면 쉽게 대체가 불가능한 것일지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패션 / 신조어 / 춤 / 연예인 등 흔히 '유행'을 탄다고 하는 생각들은 위에서 언급한 비용우위가 약하고, 전환 비용이 낮아 쉽게 대체가 가능한 것들이지만, 예법 / 종교 / 학문 등의 분야에 속한 생각들은 바뀌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 속도가 매우 느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각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접할 때면 그것이 저 위의 다섯 가지 경쟁 우위 중 한 가지 이상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보면 그것이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버릴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를 구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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