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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Feb 11. 2020

경제위기는 10년마다 한 번씩 발생하는가?

(Feat. 중국의 경제위기는 언제 찾아올까?)

얼마 전 지인과 함께 부동산 이야기를 하던 중 경제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국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수 있는 조건으로 중국의 금융위기를 설명하자 지인이 "금융위기? 그거 10년마다 한 번씩 터지는 거 아니야?"라고 물어왔던 것이죠.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주기론은 바로 이 ‘10년 주기 경제위기론’ 일 것입니다. 1987년 블랙 먼데이부터 시작해서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10년 주기론을 설파하는 분들의 예를 살펴보면 진짜 대략 10년 정도마다 한 번씩 세계적인 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보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경기 후퇴, 경기 침체, 불황 등을 구분해야겠지만 일단 본 글에서는 경제위기 또는 경기 침체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10년에 한 번씩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게 맞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유사한 흐름으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일정한’ 주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효 기준 금리(파란색 선)와 미국의 경기 침체기(회색 음영 표시된 부분)를 표시한 그래프 - 뭔가 주기적인 것 같으면서도 주기적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10년 주기설은 경제학자들이 정식으로 주장한 이론은 아닙니다. 다만,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위기들을 보고 언론이나 많은 사람들이 '대략 이런 주기로 발생하는 것 같다'라고 딱 떨어지는 숫자로 만들어낸 것이 10년 주기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깐 첨언하자면 '주기'라는 것은 '싸이클', '순환', '파동'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정한 주기를 동그란 원 모양으로 그리면 '싸이클' 또는 '순환'이라 부를 수 있고, 시간 지평에 따라 펼쳐진 그래프 형태로 그리면 '파동'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본 글에서도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주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주기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시계추, 순환(싸이클), 파동


그렇다면 10년 주기설은 말도 안 되는 이론에 불과한 것일까요? 사실 똑 부러지게 말도 안 되는 이론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실제 경제학자들이 경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이론들 중에서도 10년 주기설과 유사한 이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이 만든 주기 이론들은 크게 단기 순환 주기, 중기 순환 주기, 장기 순환 주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단기와 중기 순환 이론들은 기본적인 콘셉트가 모두 유사합니다.


1)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 호황이 찾아오면 기업들은 최대한 많은 이익을 올리기 위해 제품 생산을 늘리고, 설비 투자를 합니다.


2) 하지만 소비자들의 소비가 증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어느 순간 제품 생산이 소비자들의 소비 이상으로 늘어나 재고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3) 재고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물건을 적극적으로 만들지 않아 점차 재고가 부족해집니다.


4) 재고가 떨어지면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다시 (1)으로 돌아가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고 생산 설비를 증설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단기와 중기 순환 이론들의 개념은 위와 같이 분위기 좋을 때 사람들이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보니 다시 경기 침체를 만든다는 개념이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어떤 분야에 적용되느냐, 어떤 요소에 의해 동작하느냐에 따라 그 특성이 다릅니다.


먼저 단기 순환 이론으로는 4년 주기의 재고 순환이 있습니다. 이 순환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키친 사이클(Kitchen cycle)'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재고 순환은 자동차와 같은 주요 내구재 산업의 재고가 2~3년 정도는 증가했다가 다시 1~2년에 걸쳐 감소하는 것을 보고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주요 내구재인 자동차, 전자제품 등은 그 수명이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 정도 됩니다. 그래서 자동차, 전자제품 회사들은 사람들이 내구재를 쓰다 교체하는 시점이 다가올 때쯤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홍보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 그랜져를 타던 사람들이 차를 바꿔야 될 때쯤인 4~6년 후 현대는 새로운 그랜져를 내놓고, TV 회사들은 4년에 한 번 정도 축구 월드컵이나 올림픽 개최 시점에 맞춰 기존 제품에 특이한 기능이라도 하나 추가해서 마치 새로운 모델인 것처럼 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기 순환으로는 9년 주기의 신용 / 설비투자 순환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발견한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서 '쥐글라' 또는 '주글라 순환(Juglar’s cycle)'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9년 단위로 크게 증가했다가 감소하는 현상을 보고 발견한 순환입니다.


주글라 순환을 신용 순환이라고도 하고 설비투자 순환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금융회사들의 (신용) 대출 태도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들이야 투자 자금이 필요한 경우 주식이나 채권을 더 발행하거나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현금을 이용하여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할 수 있지만, 대기업을 제외한 중견/중소기업들의 경우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투자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에 산업 생산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러한 중견/중소기업들은 은행이 적극적으로 돈을 푸느냐 마느냐, 금리가 높으냐 낮으냐 등에 따라 설비 투자가 크게 좌우됩니다.


( 출처 : DB금융투자 리포트 '키친과 주글라의 변화를 예비하는 주식 투자 전략' )


또 다른 중기 순환으로는 18년 주기의 부동산 순환이 있습니다. 이것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쿠즈네츠 사이클 또는 한센 사이클이라고도 합니다.


부동산 순환 이론은 주택용, 상업용 건축이 호황을 맞이하다가 불황을 맞이하고, 다시 호황을 맞이하기까지의 주기가 18년 정도에 걸쳐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부동산 투자는 비용이 아주 많이 들기 때문에 빈번히 발생하지 않고, 또한 건물을 한번 지어두면 아주 오랫동안 쓰기 때문에 다른 단기, 중기 순환 이론들보다 주기가 긴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수요가 얼어붙는 순간 이미 만들어둔 건물을 팔기가 대단히 어려워지기 때문에 재고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악성 재고가 쉽게 해결되지 못해 불황의 깊이가 다른 산업들보다 더 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황의 깊이가 깊다는 것은 반대로 다시 호황기로 접어들었을 때 이미 많은 업체가 도산을 하고 난 뒤기 때문에, 그리고 건축의 특성상 공급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공급 부족이 다른 산업보다 더 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장기 순환인 콘트라티예프 파동은 위에서 언급한 단기, 중기 순환 이론들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단기, 중기 순환 이론들이 모두 기업과 사람들의 욕심이나 특정 재화의 교체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설명했다면, 이 장기 순환 이론은 50년 ~ 60년에 걸쳐 거대한 기술 변화 또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순환이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트라티예프가 발견한 것으로, 그는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사를 통해 장기간에 걸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변화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것을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계승하면서 자신의 기술혁신 이론과 접목하여 새로운 기술 발전에 따라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른 한 시대가 열린다고 설명합니다.


콘트라티예프 파동과 원인이 되는 기술은 대략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제1 파동(1780~1849년) : 초기 증기 기관 산업

- 제2 파동(1849~1890년) : 제2산업혁명 철도/철강 산업

- 제3 파동(1890~1940년) : 자동차, 전기공학과 중공업 산업

- 제4 파동(1940~1990년) : 전자, 석유 화학, 항공 산업

- 제5 파동(1990년 ~ 현재) : 정보통신혁명




주식 투자 방법론 중 기술적 투자 방식에 조예가 있는 분이라면 파동이라는 단어가 보이는 순간 위에서 언급한 주기들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으실 겁니다. 바로 기술적 분석에서 사용하는 엘리어트 파동 이론, 기자모리 파동 이론, 사케다 5법, 우라가미 구니오의 주식시장 4계절 이론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술적 분석에서 사용하는 주기 이론, 파동 이론 등은 주식 가격의 움직임에만 집중하여 만든 이론들이라는 점에서 경제학자들이 만든 이론들과는 다릅니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들이나 기술적 분석을 이용하지 않는 투자자들은 기술적 분석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주식의 가격이라는 것도 결국 실물 경제 데이터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 분석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주기 이론, 파동 이론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주가의 움직임은 실물 경제의 변화에 앞서 대략 6개월 정도 선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물 경제에 주기성 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면 주가의 움직임에도 당연히 주기성 또는 흐름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엘리어트 파동에서 이야기하는 3단계 상승의 모습은 유명 가치투자자인 하워드 막스가 이야기하는 강세장의 3단계와 궤를 같이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적 분석의 대표적 파동 이론인 엘리어트 파동 이론(좌측)과 사케다 5법(우측) ( 출처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


# 하워드 막스가 설명하는 강세장의 3단계

- 1단계 : 대단히 통찰력 있는 소수만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을 때

- 2단계 :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개선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 3단계 : 모든 사람이 상황이 영원히 나아질 것이라고 결론지을 때


또한, 혼마 무네히사가 말하는 삼산(三山), 삼천(三川) 등의 이론은 기억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이 밝혀낸 동일한 자극이 반복되면 반응이 약해진다는 인지과학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나름 실전적 통찰이 담겨 있는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갓난아기에게 동일한 시각적 주의를 반복해서 제공하면 점차 아기들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새로운 자극이 발생하면 다시 반응이 커진다. ( 출처 : 에릭 캔델 기억의 비밀 )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술적 분석에서 사용하는 파동론이 완전히 유효하고 언제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적 분석에서 설명하는 파동 이론들은 보통 발생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고, 같은 이론을 가지고도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그래프 해석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실물 경제의 움직임에 비해 주가의 움직임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파동 이론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지나치게 빈번하다는 치명적인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종 주기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이 정도로 마치고, 다시 저희가 최초로 꺼냈던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경제 위기는 정말 10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것일까요? 경제학자들의 말대로 신용 확장과 수축은 4년마다 한 번씩 발생하고, 설비 투자는 9년마다 한 번씩 몰리는 것일까요?


먼저 미국의 경제 불황 발생 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유효 기준 금리(파란색 선)와 미국의 경제 불황기(회색 음영 표시된 부분)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준)


그리고 4년의 주기의 키친 순환에서 이야기하는 미국의 재고순환지수입니다.

재고량(파란색 그래프, 좌측 기준)과 전년 동기 변화량(빨간색 그래프, 우측 기준)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준)


약 9년의 주기의 주글라 사이클에서 이야기하는 설비투자지수를 반영하는 내구재 주문 지수입니다.

내구재 주문(파란색 그래프, 좌측 기준)과 전년 동기 변화량(빨간색 그래프, 우측 기준)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준)


몇 가지 데이터만 살펴봐도 앞서 경제학자들이 언급한 것과는 달리 기간이 일정하지 않고, 변동이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미국의 경우에만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이번엔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조업 재고율(파란색 그래프, 좌측 기준)과 전년 동기 변화량(빨간색 그래프, 우측 기준) (출처 : 통계청)


설비투자지수 (초록색 그래프, 좌측 기준)과 전년 동기 변화량(빨간색 그래프, 우측 기준) (출처 : 통계청)


기간은 별도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주기를 끊어서 보면, 마찬가지로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변동이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기간이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참여하는 경제 시스템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복잡계의 특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복잡계란 무엇일까요? 아직까지 복잡계를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의하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통 다음의 특성을 가진 시스템(계)을 복잡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1. 참여자/참여요소들 간에 서로 상호작용할 것

2. 과거 기억을 이용해 행동을 수정할 수 있을 것

3. 시스템이 열려 있을 것 - 예를 들어, 경제 시스템은 정치, 사회, 문화 등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위와 같은 특성들을 살펴보면 실제 생산 활동에서부터 시작해서 투자 활동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참여하는 모든 경제 시스템은 복잡계의 특성을 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계의 특성을 띄는 시스템에서는 참여자들이 과거를 이용하여 창발적 행동을 하기 때문에 유사한 흐름은 있을 수 있어도, 똑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규칙적인 주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과거 20년을 살펴본 결과 TV 판매량이 5년마다 한 번씩 갑자기 증가하는 현상이 있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를 먼저 알아챈 어떤 한 TV 회사 A사는 그때에 맞춰 신형 TV를 준비하여 판매량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A사의 전략을 눈치챈 B사에서는 A사에 앞서 신형 TV를 발매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C사에서는 A와 B사에 앞서 TV를 발매하는 전략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신형 TV의 발매 시기는 처음 의도와는 달리 조금씩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D라는 회사에서 오히려 더 느리게 중저가 TV를 내놓아 고가 신형 TV에 지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사용한다면 시장의 관심은 다시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TV의 판매량이나 생산량, 재고량 등은 어떤 때는 주기가 짧아지고, 어떤 때는 주기가 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여자들의 행동이 과거에 따라, 다른 참여자들의 행동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서로 동시에 새로운 TV를 내놓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새로운 TV를 내놓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투자자들에게서도 유사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어떤 기업의 주가 상승 패턴을 발견한 투자자가 있다면, 그 투자자는 새로운 패턴을 통해 처음에는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그 패턴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 다른 투자자들 또한 그 패턴이 발생하면 주가 상승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고, 패턴이 발생하자마자 주식 매수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투자자들이 몰리는 순간 가격은 갑자기 치솟게 되고 처음 그 패턴을 발견한 투자자는 처음처럼 큰 수익을 거두긴 어려워집니다. 그러던 중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떤 투자자는 아예 패턴이 발생하기 전의 패턴까지 찾아내 주식 저가 매수에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결국 처음에는 어떤 주기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것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이 주기는 그 특징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과거의 역사나 다른 참여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한 참여자의 행동이 변하는 것을 복잡계 학문에서는 되먹임 고리 또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라고 합니다.


복잡계의 되먹임 고리로 인해 시장이 투자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현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9년 초 미국에서 대표적인 경제 불황의 징후인 장단기 금리 역전이 2006년 이후 13년 만에 발생하자 또다시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 시장이 요동친 사례가 있었습니다. 며칠 사이 주가지수는 5% 이상 하락했고 투자자들의 머릿속은 불황 우려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미국 고용시장이 굳건한 모습을 보이는 한편, 과거에도 장단기 금리차가 발생하고 나서 실제 경제 불황이 발생하기까지 1-2년의 시간이 남았다는 과거 사실이 공유되자 시장은 다시금 반등하기 시작해 도리어 역대 최고점을 연이어 갱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다음 장단기 금리차 역전 때는 2019년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되어서 실제 경제 불황 징후가 보이기 전까지는 아예 시장이 미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마찬가지로 지난 사스, 메르스 사태 등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지난 전염병 사태 때 발생했던 주가의 흐름을 참고하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다시 점차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인류가 가진 지식으로는 복잡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예측하거나 주기성을 측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매 순간순간이 과거에 있었던 상황과 유사해보여도 사람들이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앞서가려고 하는 순간, 또는 사람들이 서로의 행동을 읽고 이용하려고 하는 순간, 과거의 역사가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습니다.


복잡계는 인간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의 세계에서도 복잡계가 동작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철새 떼와 물고기 떼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철새 때와 물고기 떼 또한 위에서 언급한 복잡계의 특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무리 지어 움직일 때 무리가 작아졌다가 커졌다를 반복하지만 그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새들의 움직임이나 물고기들의 움직임에서 우리 경제가 움직이는 모습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철새 떼나 물고기 떼가 아주 좁게 뭉치기도 하고, 널리 퍼지기도 하지만 결국 무리 지어 움직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이상 서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제 주기도 어떤 때는 시간 간격이 길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간 간격이 짧아지기도 하지만 결국 기다리던 주기는 돌아올 것입니다. 그동안 긴 경제 호황기를 맞을 때마다 마지막쯤에는 “더 이상 경기 순환은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금까지 항상 마지막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움직임 - 과도한 경제 거품, 경기 침체 발생 등 - 을 막는 방법도 물론 있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참여하는 모든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어떤 특정 계획에 맞춰서만 움직이도록 하여 서로 간에 영향을 주거나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는 되먹임 고리를 없애야만 합니다. 그러면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자본주의에 내재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제약은 또 다른 문제점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 문제점으로 생기는 결과를 우리는 구 소련의 결말을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기 이론들이나 경제지표들은 일정하게 움직이지 않고 예측할 수 없으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마크 트웨인이 남긴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흐름(각운)은 맞춘다.(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does rhyme)”라는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한 증거가 없다는 게 함정입니다만...)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정확한 상황을 예측한다거나 정확한 시점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하는 과정과 흐름은 유사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주 세밀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큰 그림은 대강이라도 맞춰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워런 버핏은 이런 조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정확하게 틀리는 것보다 대충이라도 맞는 편이 낫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다음 대공황이 언제쯤 올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공황 이후 태어난 첫 대통령이 나오고 15년이 지난 후쯤 다음 공황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대공황 이후 태어난 첫 번째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1993년 대통령이 된 후 약 15년이 지나자 대공황 못지않은 큰 위기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갤브레이스가 정확한 주기를 예측했던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커다란 위기의 기억이 지워질 때 다시 큰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예견한 것입니다.


워런 버핏 또한 세세한 시기나 거시적 경제를 예측하지는 않으나 자신의 말처럼 '대충이라도 맞추기 위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두고 지금이 기업을 사들여야 할 때인지, 아니면 증시가 과열 국면이므로 현금을 쌓아두어야 할 때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거품이 찾아올 때면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 중) 썰물이 오면 누가 발가벗고 있었는지 드러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워런 버핏이 현재 증시가 거품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표는 GDP 대비 시가총액 비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GDP 대비 시가총액 비중은 주식회사들의 주식 가격의 총합과 그 회사들이 생산해내는 재화의 총합인 GDP와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식회사들이 그들이 생산해내는 재화의 총합보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면 증시가 과열 국면이므로 주의해야 됩니다.


GDP 대비 시가총액 비중(파란색 그래프, 좌측 기준)과 윌셔 5000 주가지수(빨간색 그래프, 우측 기준)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준)




간단하게 마치려고 하던 글이 걷잡을 수 없이 길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꺼낸 김에 좀 더 첨언해보겠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부동산 투자의 위험 요소 중 하나로 중국의 금융위기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수도권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의미 있는 하락을 하거나 오랜 기간 정체가 되었던 적은 총 3회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채 공급 정책으로 인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1998년 IMF 경제위기 때였으며, 세 번째는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공급자 우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이처럼 대규모 공급책 또는 큰 규모의 위기가 발생해야만 부동산에 혼이 빠진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부동산 가격 하방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대규모 공공기관 지방 이전

2. 그린벨트 해제 후 대규모 주택 공급

3. 중국발 세계적 금융 위기 발생


이 중 1번과 2번은 정치인들 입장에서 쉽게 꺼내기 힘든 정책이라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으나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 공약 형태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3번의 경우 그동안 수차례 이야기가 나왔던 회색 코뿔소와 같은 위험(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아 닥치는 위험)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중국에서는 정말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발생한다면 대체 언제 발생하게 될까요? 아마 현재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대한 제 나름의 이론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한 나라를 휘청이게 만들 정도로 크게 발생한 경제위기(사실 금융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금융위기라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들은 보통 다음의 조건들을 대부분 충족하는 위기들이었습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 문제일 것

2.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소비 또는 투자를 하여 재화/자산 가격을 상승시킬 것

3.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 영향이 미칠지 예측할 수 없을 것

4. 문제에 빠진 사람들이 스스로 수습할 수 없을 것

5. 기존에 참고할만한 사례나 해결 방법이 없을 것

6. 사람들이 공포에 빠질 것


현재 중국이 처해있는 상황을 단계로 표시한다면 1번부터 3번까지 해당되는 상황이지만 아직 4번 ~ 6번에는 해당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기업과 지방정부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빚이 위안화 부채이기 때문에 (경제 참여 주체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중국 정부가 구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살아있습니다. 바로 4, 5번에 해당되기 전에 아직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걸림돌이 되어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기업과 지방정부, 그리고 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금융 위기'라는 존재를 겪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문제가 생겼을 때 중앙 정부가 구제해줄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빚을 내서 투자하고, 기업을 굴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부동산 거품은 날로 커지기만 하고,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들도 퇴출되지 않고 비효율적인 경영을 계속하고, 지방 정부는 땅을 팔아 사람이 거주하지도 않을 유령 도시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중국의 중앙 정부가 지난 몇 년간 적극적인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을 추진해왔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 미중 무역전쟁까지 겹쳐 경기가 급속히 침체되자 전혀 해결된 게 없음에도 황급히 디레버리징 정책을 폐지했다는 점은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될 포인트입니다.


우리나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 심리로 인해 정부의 정책이 안 먹히고 있듯이 중국 또한 정부의 정책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그간 가져왔던 관성적인 심리와 행동을 바꾸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의 무역 협상이 1차적으로 타결되며 중국의 자본시장이 좀 더 개방된다면 상황은 좀 더 나빠집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외국 자본이 중국에 더 많이 들어온다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중국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빚을 더 늘릴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중국 정부가 디레버리징을 추진하자 자금줄이 마른 중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달러 부채를 조달해왔습니다. 자본시장이 좀 더 개방된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돈 줄을 조이면 중국인들과 중국의 기업들이 더 많은 달러 부채를 조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부채가 문제가 되었을 때는 중앙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중국 기업들에 대해 해외 금융회사의 영향이 커지면 중국은 이제 4번과 5번 단계로 진입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중국 기업들이 해외 금융회사들에 ‘달러’로 진 빚에 대해서는 손 쓸 도리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곧 큰 공포가 중국 전역을 덮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했는데, 어떤 기업과 어떤 지방정부가 무너질지 모르고, 정부가 해결해줄 수도 없는 공포를 우리는 20년 전 경험해본 바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중국 중앙 정부는 외환 보유고와 환율에 엄청나게 민감합니다. 자칫 잘못해서 중국의 중앙 정부가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순간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중국 위안화 평가가 하락하자, 단호하게 1달러 당 7위안 이상으로는 위안화 하락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위안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에서 이탈하려고 하는 외국 자본이 늘어나고, 중국의 외환 보유고가 실제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라도 나오면(이미 몇 번 나온 적 있는 경고입니다.)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대로 말하자면 중국 기업들에게 아직 달러로 된 빚이 많지 않은 한, 그리고 중국 중앙 정부가 해결한 능력과 믿음이 존재하는 한 아직 중국 경제를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빚을 내 투자하여 성장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점점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 참고서적 또는 영감을 준 서적

- 복잡한 세계 숨겨진 패턴

- 돈 좀 굴려봅시다 

- 워런 버핏 바이블

- 주식에 장기투자하라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 거래의 신, 혼마

- 기억의 비밀

- 호황 vs 불황

-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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