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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Sep 15. 2018

40대 개발자의 독일 회사 취업기 (1)

한국의 30~40대 개발자들이여, 독일로 오세요~!

https://brunch.co.kr/@nashorn74/68


만일, 독일로의 이민을 희망하는 개발자라면, 다음 중 여러분이 몇가지나 해당되는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참고로 필자는 4번만 제외하고 모두 해당된다.


1. 4년제 대학교를 다니며 컴퓨터 관련 학과를 전공했다.

2. IT 기업에서 5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가지고 있다.

3.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4. 영어 회화가 능숙하다.

5. 새로운 환경이나 문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긴다.

6.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7. 왠만한 좌절쯤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8. 함께 독일에 와서 나를 옆에서 응원해줄 가족이 있다.

9. 항상 새로운 기술이나 언어를 배울 의지와 의사가 있다.

10. 서류 작업을 꼼꼼이 처리할 수 있는 성격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모두를 만족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독일 베를린으로 올 필요가 있다. (최소 7~8개 정도는 만족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제 2의 인생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현재 한국에서의 삶이 만족스럽게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한국 생활이 불만족스러워서 독일로 온 것이 아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지만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항상하는 40대 가장으로써, 당장 많이 벌어도 늘 불안한 한국보다는 앞으로 20년 이상 계속 나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 회사의 계약서를 검토하다가 한 항목에서 깜짝 놀랐다. 67세까지 근무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1. 독일에서는 한국에서 어떤 대학교를 다녔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블루카드는 4년제 대학교을 졸업하고 반드시 전공이 IT 개발 업무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다닌 대학교와 학과가 독일에서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가 무척 중요하다. 물론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득한 경우가 있다고 들었으나, 이 부분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모르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수능 시험 점수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은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기 때문에 수능을 치르지 않았다. 그래서 수능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대신 제출했다.


2.3. 한국에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IT 회사들이 존재한다. 여러분이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무 능력"이다. 즉, 직접 코드를 작성하고 알고리즘을 만들거나,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 및 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최근에 관리자로써 일만 했다면 당연히 탈락이다. 오래전에 개발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요즘 기술을 공부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산이다. 또한, 최신 기술 트랜드와는 무관하게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특정 기술만 오랫동안 써온 것 또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발 패러다임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공부만 한다고 쉽게 따라갈 수는 없다. 직접 실제 업무를 수행해서 결과를 만들어본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좀 못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개발 업무 자체는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독일을 비롯한 모든 EU 국가는 EU 시민권자를 우선으로 선발한다. 머나먼 한국에서 온 개발자가 당장 결과를 만들어낼 줄 모른다면 굳이 뽑아서 쓸 이유가 없다. (게다가 비자까지 없다면?) 그런면에서 한국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 스타트업은 글로벌 스타트업과 동일한 개발 환경에서 동일한 개발 스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스크럼과 애자일은 기본이다.


4. 필자가 독일 중에서도 베를린을 선택한 것은, 독일 내에서도 베를린에는 엄청나게 많은 스타트업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독일 기업은 독일어가 필수이지만, 베를린 스타트업은 영어가 기본 통용 언어이다. 물론 베를린에서 생활 할 때도 영어로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여러분이 영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면 기본 조건을 만족시키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설마 내가 외국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적도 없던 사람이라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었다. (물론 토익이나 토플 점수도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5. 여러분이 아무리 영어나 독일어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일은 낯선 외국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독일에 와서 독일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음식 이름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음식 이름이 나오면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는데, 우리는 먹어보기는 커녕 들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해가 될리가 없다. 한국에서는 부모님도 한국인, 어렸을 때부터 친구도 모두 한국인이고,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도 모두 한국인이었으며 직장에서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민자들이 엄청나게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우리처럼 부모님, 친구, 회사 동료가 모두 한국인인 경우를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회사에는 최소 2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온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것을 즐기지 못하면 힘들 수 밖에 없다.


6. 우리나라 문화는 나서거나 들이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상대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상대에 맞춰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독일에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이 대인 관계에 유리하고, 더 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독일에 처음 왔을때 독일에서 태어난 한인 2세에게 들은 이야기가, 독일인은 무조건 들이대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취업할 때도 CV를 보내놓고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계속 연락하면서 자신이 이 회사를 정말로 다니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나중에는 인터뷰 후에 그저 결과만 기다리지 않고, 담당자에게 인터뷰가 정말 좋았고 나는 이 일을 진심으로 원한다는 식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7. 한국에서는 이직이나 취업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본 일은 없었다. 30대 초반부터 보통 1주일 정도 준비하면 몇 군데의 회사에서 오퍼를 받고 그 중에 한곳을 선택해서 근무 조건을 협상하고 이직을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다닐 때 이미, 병역 특례로 근무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역 특례로 입사가 어려운 대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중소기업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거나 내 사업을 해보기도 했고, 최근에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일을 밑바닥에서부터 해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많은 것을 성취하면서 꽤나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남들은 온실 속에서 자라다가 40~5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거친 황야에 버려지는데, 필자는 20대부터 이미 그 거칠고 살아남기 힘든 황야에서 경험치를 쌓아가면 레벨 업을 해 온 셈이다. 그런데 그 높은 자존감이 이번에 독일에서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모두 소진되었으니 꽤나 쉽지 않은 일이었던 셈이다.


8. 필자는 가족이 함께 독일로 이민을 하는 것을 선택했다. 대부분 가정이 그러하듯, 아빠는 한국에 남아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아이들과 집사람만 독일로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든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서 헤쳐나가는 것이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겪어보니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정신적으로 꽤나 힘든 독일에서의 구직 과정을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독일에 와 있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가족 전체가 같이 온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서, 우리가 경험한 것보다 더 힘든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자식들 또한 행복해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러기 아빠보다는 가족이 함께 고생할 것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9. 필자는 1984년에 처음 컴퓨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한번도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손을 놓은 적이 없다. 2010년 이후에는 그전에 비해 다양한 개발 언어와 도구, 기술들을 쓰기 시작했고 덕분에 항상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는 것이 일이었다. 2014년부터 시작한 강의 덕분에 더욱 많은 공부를 해야했는데, 결국 이러한 것들이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독일어와 영어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독일어는 다른 이민자들과 함께 독일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고, 영어는 생전 처음으로 인강을 유료 결재하여 공부하고 있다. 처음 독일어를 배울 때는 안하던 공부를 하려니 머리가 아프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즐겁게 배우고 있다. 영어 또한 왜 진작 이렇게 공부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10. 최소한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서류 관리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전산화 되어 있고, 사업을 하지 않는 한 직접 서류를 작성하거나 관리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독일도 요즘엔 많은 것이 전산화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류를 중심으로 모든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따라서 필요한 서류를 꼼꼼하게 준비하고 작성해야 하며,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고 받는 모든 서류는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내가 쌓아놓은 영수증들을 늘 버렸던 집사람도, 독일에서는 모든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다. 독일 오기 직전 한달 내내 한국에서만 발급이 가능한 독일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떼러 다녔다. 이럴 때는 직접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이 무척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다보면 절대로 한번에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 그런 경험은 독일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 독일 스타트업에 취업한 과정을 계속 연재할 예정이다. 궁금한 부분이 있으신 분들은 댓글이나 메일로 남겨주시면, 좀더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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