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가족과 온지 28개월만에 드디어 독일 영주권을 취득했습니다.
2.5년 전, 독일로 올 것인가 말 것인가를 한창 고민하고 이리 저리 알아보고 있던 시기. 독일 회사에 취업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신 우리에겐 "독일 영주권 취득"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고 내 자신은 물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쉽지 않은 목표였다. 독일어는 물론 영어도 못하는 40대 개발자가 사전에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독일 땅을 밟았다하더라도 한발이라도 삐끗하면 예상치 못한 큰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일에 대한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운 전혀 예측 불가한 "운"도 잘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마냥 낙관할 수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온 가족이 큰 가구들만 세팅되어 있는 베를린의 집에 도착한지 28개월째가 되는 지금, 나는 "영주권 승인"이라는 문구가 담겨있는 문서를 하나 받아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영주권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당연히 "독일 회사에 취업하기"였다. 영어가 발목을 잡는 통에 무려 250통이나 되는 이메일을 보내고 꽤나 많은 인터뷰를 보면서 힘든 구직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무사히 프로베짜이트(수습기간)을 통과하는 것이었고, 영주권 취득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것 또한 중요하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병역특례를 하면서, "짤리면 군대 가야한다"라는 압박감에 3년간 시달려야 했던 것을 20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겪게되니 그야 말로 답답하고 짜증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 생활이 안정화되니, 이제는 21개월만에 영주권 신청을 위한 독일어 B1 증명서 취득을 위한 힘든 과정이 진행되었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하루에 4~5시간, 일주일에 3일을 집중코스에서 수업을 듣는 것도 몸이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고 2번이나 쉽지 않았던 시험을 치르며 결과를 기다리는 것도 꽤나 고통스러웠었다.
3월 중순에 독일 정부가 코로나에 대응하여 강력한 방역 대책을 시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3월14일 토요일 오후에 평소처럼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트레이너가 다가 오더니 토요일 오후에 정부에서 지침이 갑자기 내려와서 긴급 폐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쫒겨난 셈이었는데, (융통성 없는 독일놈들 ㅠㅠ) 이것이 독일 전체의 몇달간 실시된 강력한 셧다운의 시작이었다. 이와 더불어 독일 정부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내놓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Kurzarbeit"라고 해서 50%만 일을 하고 정부 지원금을 보조로 받아서 기존 급여의 80%를 수준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감소하고 자금난을 겪게될 회사들을 상대로 인건비 부담을 덜면서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인 것이다. 취지도 좋고 50% 일을 하고 80% 급여를 받는 것은 대부분의 직원들은 환영을 하는 분위기였는데, 영주권 신청을 앞둔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그래서 변호사를 통해서 확인을 해보니 만일 내가 Kurzarbeit를 하게 되면 이번에 영주권 신청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설마 "코로나"가 나의 영주권 신청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상을 못하고 있던 터라, HR 책임자에게 영주권 취득 전까지는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고 영주권 취득후에 Kurzarbeit를 하면 안되는지 걱정을 하며 이메일로 문의했다. HR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상황이다보니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HR 책임자는 "흔쾌히" 내 가족의 안정적인 거주권 확보가 우선이라면서 그렇게 하라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불안정한 신분 속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내 입장에서 이렇게 신속하게 도움의 손길을 받게 되는 것 만큼 감동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100명 가까운 대부분의 직원들이 Kurzarbeit를 하고 있음에도 예외적으로 원격으로 풀타임 근무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다행히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되었다. 평소에도 항상 회사와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그들이 보내준 굳건한 지지와 응원, 도움 등을 받고 나니 더더욱 감사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나머지는 미리 준비를 해놓은 덕분에, 21개월째가 되자 영주권 신청서를 작성하고 독일 회사에서 21개월 동안 수령한 급여 명세서와 연금 납부 내역, TK 가입 확인서, 킨더겔트 신청 내역 등 필요 서류들을 준비하여 변호사를 통해서 4월말에 이민청에 영주권 신청을 접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코로나 때문에 공공기관의 업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해서 업무가 많이 밀리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초조하게 2개월 넘게 기다린 끝에 겨우 이민청과의 인터뷰 약속이 잡혔다. 신청후 한달 동안은 꽤나 긴장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2번이나 회사에서 짤리는 꿈을 꿀 정도였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회사에서 짤리는 꿈을 꾼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속이 잡히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한달 정도 지나니 조금씩 무덤덤해졌지면서 체념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영주권 인터뷰가 잡혔다는 소식을 받으니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터뷰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독일어 B1 증명서가 있다고 해도 어떤 담당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인터뷰 약속 당일, 잔뜩 긴장한 상태로 입장해서 대기를 했다. 건물 밖에서는 약속 시간 15분 전에서야 입장을 할 수 있도록 통제를 하고 입장 직전에 발열 체크를 하는 등 상당히 방역에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전에 크게 우려를 했던 것과 달리 담당자는 무척 친절하고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해주었고, 모든 과정이 겨우 10분 정도만에 끝났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밀려 있다보니 서류 상으로 문제가 없으면 굳이 딴지를 걸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2년전 처음 블루카드 비자를 받았을 때처럼 너무나 어이없게 간단히 끝났다. 지난 28개월간 독일에 와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오르며, 그동안 그렇게 노력하고 준비한 것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물론, 그동안 우리를 도와준 수많은 이들에게도 너무나 감사한다. 또한 그동안 상당히 순탄하고 깔끔하게 일이 진행되도록 운이 좋았던 부분에도 감사할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거주권에 대한 걱정 없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독일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뿐일 것이다.
"독일 영주권 취득"은 당연하게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기에,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지 즐거운 마음으로 고민해봐야 겠다. 일단 집사람의 희망사항은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고, 나의 다음 목표는 "모터보트나 요트를 가지고 독일 내륙/해안 항해를 할 수 있는 면허증 취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