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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Nov 23. 2018

40대 개발자의 독일 회사 취업기 (4)

제발 연봉 문의는 게시판 따위에서 하지 말자~!

필자는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친한 주변인들에게 조차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누군가 애정어린 조언을 해줄 경우에 열심히 경청을 하는 편이지만, 일부러 쫒아다니면서 조언을 요청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을 한 이후에는 평소 집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상의를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다양한 정보를 직접 수집하고 발로 뛰면서 분위기 파악을 한 다음 스스로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은 항상 자기 자신이 주변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보니, 주변인의 조언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인들의 평가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편향성이 있기 때문에, 회사와의 관계와는 커다란 갭이 존재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한계가 있는 인간인지라 자기 중심적인 의사 결정이 항상 좋을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시행 착오를 직접 겪는 과정을 통해서 계속 다듬어지고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치 RPG 게임을 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레벨이나 경험치가 낮을 때에는 뭘 해도 쉽지 않고 높은 레벨의 몹들을 피해다녀야 하는 신세이지만,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레벨업 과정을 충분히 거치고 나면 일부러 보상치가 높은 상위 레벨의 몹들을 쫒아다니게 되는 것과 같다. 하물며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가족이나 친구, 적지 않은 기간을 함께 일을 한 동료 조차 중요한 의사 결정에 큰 도움이 안되는데, 더군다나 나를 잘 모르는 불특정 제3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개념"이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개발자"들은 자신의 연봉 수준에 대한 문의를 공개된 게시판에서 해왔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뿐더러, 개발자 직군을 제외한 다른 업종의 근로자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다. 요즘은 업무적으로 C/C++ 프로그래밍을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들를일이 없는 "데브피아"라는 개발자 커뮤니티 사이트를 가끔 방문해서 "개발자 고충 상담"이라는 게시판을 재미 삼아 둘러본다. 그러면 가끔씩 연봉 문의를 하는 글들이 올라와있는 것을 볼수 있고, 적지 않은 댓글이 달려있는 것 또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내용은 거의 비슷한데, 성의 있게 댓글을 달아주는 그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답변을 해주기 때문에 대부분 고만고만한 수준이거나 간혹 큰 차이가 있는 내용이 존재한다. 아무튼 이러한 글들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이 받고 있는 급여 수준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도 SI 업체 초봉은 2400만원이었는데, 지금도 2400만원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는 개발자들이 이렇다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샐러리맨의 임금 수준은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설득력을 가진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개발자들만 자신의 연봉을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픈된 공간에서 공개하면서 상담을 하는 것일까? 원래 샐러리맨의 연봉이란 본인과 회사만 아는 기밀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연봉을 공개하면서 비교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아야 된다고 권유를 하거나 자신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고 자랑질을 하는 것일까.


사회 초년생인 1~3년차들이 자신의 연봉 수준에 대한 고민을 올리는 것은 예쁘게 봐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력이 5년 이상인 경력자들 조차 자신의 연봉이 얼마이고 어느 정도를 받을 수 있는지, 어느 정도를 받는 것이 좋을지를 묻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 개발직을 제외한 일반 직종에서 연봉 4천만원~5천만원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급여이다. 그런데 연봉 6천만원~7천만원을 받으려는 경력자가 자신의 연봉 수준에 대한 고민을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공개된 게시판에 올리고 상담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한심하다고 밖에 말을 할 수 없다. 일반 직종 기준에서 연봉 7천만원이라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급여이고, 이 정도를 받으려면 경력이든 실력이든 운빨이든 어느 정도 필요하며 아무나 그러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그런 고소득을 올리는 샐러리맨이 자신의 소득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과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자신은 이만큼 받는다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랑을 하고 다른 이들의 반응을 즐기는 변태인 것인가?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든 샐러리맨들이 자신의 연봉 수준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고 자신의 연봉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하며, 그래서 연봉 비교를 해주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회사를 가던지 해당 회사의 연봉 테이블을 뛰어넘어서 항상 기존 연봉 테이블을 재조정하게 만들었던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모두가 덧없는 짓이다. 내 옆에 사람보다 100만원이나 1000만원을 더 받으면 무슨 소용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꺼이 많은 연봉을 주겠다고 달려드는 회사가 많도록 나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즉, 남들이 얼마를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만큼을 누구에게든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가 더 중요하다.


독일 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는, 즉 비개발자 사이트인 "베를린리포트"에서도 독일 회사에 취업하려는 개발자인데 이 정도 수준의 연봉이면 어떠냐는 문의글이 자주 보인다. 개버릇 남주지 못한다더니, 해외 취업할 때에도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자신의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고 조언을 구한다. 이는 마치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서 초등학생에게 인생 상담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특히 베를린리포트는 개발자보다는 일반인이 훨씬 더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이고 유학생들이나 독일에서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굳이 여기에 찾아가서 중급 개발자가 5만 유로에 잡 오퍼를 받았는데 적절한 것인지를 묻는다던지, 10년차 개발자라면 어느 정도의 연봉 수준이면 좋을지를 묻는다. 5만유로면 우리돈으로 6500만원 정도의 연봉이며, 이는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결코 적은 수준의 연봉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나 뮌휀과 같은 큰 도시는 물가나 거주비가 비싸기 때문에 10년차 이상이라면 7만에서 8만 유로 정도의 연봉이면 적당하다고 떠드는데, 7만유로라면 우리돈으로 거의 1억에 가까운 연봉이다. 1억 연봉을 받아야 하는자가 그보다 낮은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공개 게시판에서 자기 연봉에 대해 문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필자 역시 처음에는 베를린 스타트업에서 필자의 적정 연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입사 지원시 제일 먼저 묻는 것이 희망 연봉 수준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비자 상태, 출근 가능 일자, 희망 연봉과 같은 중요 항목은 아예 Cover Letter에 명시를 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독일 취업을 위해서도 무엇에 포커스를 맞출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저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이 목표인지, 아니면 필자처럼 독일에서 제2의 개발자 인생을 시작하는 것과 아이들 교육을 위해 정착하는 것이 목표인지 정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저 많은 연봉을 받고 싶다면 굳이 독일을 고집하기 보다는 미국을 추천하고 싶다. 필자가 봤을 때 독일의 장점은 높은 수준의 연봉 보다는 고용 안정성과 사회 복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개발자가 40세를 넘으면 실력이 있던 없던 고용 안정성을 기대하기 힘들고, 갈수록 과열되는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교육 시스템 때문에 부모와 아이들 모두 장기간 엄청난 고생을 해야한다. 때문에, 필자의 가장 중요한 2가지 목표는 첫번째 독일 회사에 취업하여 독일 회사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과 두번째로 아이들을 독일 공립학교에 보내서 독일의 교육 시스템 혜택을 받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첫번째 목표도 돈이고 두번째 목표도 돈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구직 활동을 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에 맞춰서 부담없이 적정 수준의 연봉을 찾아서 조정할 수 있었고, 큰 불만 없이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눈 높이를 낮춘다고 해도, 현재 필자의 연봉 수준은 한국의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부담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시작점으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연소득에 비교하면 절반도 안된다는게 함정이다 ㅠㅠ) 필자는 베를린에서 근무하는 다른 한국인들이나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독일인을 비롯한 외국인 동료들이 얼마를 받는지 관심도 없다. 설령 지금 그들이 필자보다 많이 받고 있다면 곧 따라 잡으면 되고, 필자가 이미 더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큰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될 뿐이다. 


필자는 독일에서 약 20년 정도의 커리어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최소 2~3년 이상의 경력을 쌓고 다음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연봉을 크게 높일 예정이다. 2년 후쯤 계획대로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독일에서 집을 구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연봉은 높으면 높을 수록 좋다. 최근에 자신이 다니던 진짜 스타트업으로 복귀한 동료가 필자에게 제시했던 연봉 수준을 보면, 2년 정도 커리어를 잘 쌓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점프 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뭐든 첫 걸음이 힘든 것이지, 어느 정도의 탄성을 받아서 가속도가 붙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된다. 전성기였던 30대에 필자를 만났던 몇몇 회사의 대표님들은 필자가 40대가 되기만을 기다렸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40대의 개발자는 전성기에 비해 몸값이 떨어지고 선택의 여지가 적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보니, 해당 업체의 대표님들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한 조건에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들께는 아쉽게도 필자의 몸값은 계속 올라갔고, 여전히 같이 일을 하기 힘든 상대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 만나서 같이 술 한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함께 일을 하자는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 것을 자주 목격해왔다. 하지만 그런 필자조차도 한국에서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조차 계속 그런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항상 존재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해서 나름 선방을 한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걱정을 하고 대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독일행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협상이 그러하듯, 연봉 "협상"도 아쉽고 급한 자가 지게 되어 있다. 공개된 게시판 따위에 연봉 문의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로는 연봉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가 힘들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자신의 수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상대방(회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협상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더 많은 돈을 가졌거나, 또는 더 좋은 협상 카드를 가지고 있는 자가 당연히 유리하다. 대부분의 샐러리맨이 연봉 협상에서 패배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월급을 많이 받아서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전년도에 비해 연봉을 20% 또는 30% 인상을 하더라도 여러분은 부자가 될 수 없으며, 처음 한 두달만 기분이 좋지 그 다음에는 똑같이 연봉에 불만을 가지게 되고 더 많은 연봉을 원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 같지만, 필자가 늘 하는 말은 이것이다. "월급이란 회사에서 주는 생계비이다" 즉, 여러분의 연봉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그것은 부자가 되라고 주는 돈이 아니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먹고 살 수 있도록 지급하는 생계 유지비라는 것이다. 연봉이 1억이라고 게시판에서 자랑질 하는 것은 자신의 한달 생계 유지비가 남들보다 많다고 자랑하는 것과 동일하다. 연봉 천만원을 받던 사람이 연봉 1억원을 받게 되면, 당연히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돈을 쓰든 안쓰든 인생이 윤택해지지만 생계 유지비를 받는 샐러리맨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소리냐! 내 주위에 높은 연봉 받는 분들 중에 열심히 돈을 모아서 10억을 모은 분도 있다"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분이 있었다. 이는 "부자"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달라서 생기는 견해의 차이라고 보는데, 필자가 생각하는 부자란 당장 아무 일도 안하고 탱자탱자 놀면서 돈을 펑펑 써도 자기 인생 쯤은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열심히 10억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끊기고 모아 둔 돈을 써야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부자"라고 부를 수 없다. 단지, 가용 가능한 현금성 자산이 많은 사람 정도로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따라서,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얼마 되지도 않는 생계 유지비를 비교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어리석은 행위는 자제하자.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의 보잘 것 없는 연봉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연봉이나 연소득을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 한국이든 독일이든, 또는 미국이든 어디에서든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인정 받으면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인생의 우선 순위에 따라 거주하는 지역을 선택하는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전세계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흔히들 "돈이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가 한국이다"라고 하는데, 돈이 많으면 어디든 살기 좋을 수 밖에 없다. 비좁은 나라에 갇혀서 서로 끌어내리려고 아둥바둥 사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수많은 삶의 가치를 찾아서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 않는가. "연봉"이란, 나의 가치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께 따라오는 것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 가치에 대한 평가는 어디에서든 동일하다. 


필자가 독일 회사 동료들에게 농담삼아 던지는 말이 있다.

"I'm a very expensive man, but i'm not a rich"

그렇다, 나는 항상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인재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현재 나의 연봉이 나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에 대한 최종 평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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