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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Oct 31. 2018

독일 회사 동료 이야기 (1)

쿨하고 멋진 이스라엘 남자를 소개합니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 인터뷰를 볼 때, 2명의 엔지니어와 면접을 보았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한명은 지금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영국인 아저씨 (나의 멘토임)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는 이스라엘 친구였다. 당시 필자는 기술 인터뷰가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이었고, 나름 큰 회사라 초긴장을 한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두사람과의 인터뷰는 괜찮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간단한 퀴즈를 낸 것을 화이트보드에 그려가면서 풀었는데, 이 또한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연달아서 지금의 나의 보스와 단독 인터뷰, 그 다음에는 하드웨어 담당인 인도 친구까지 들어와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좋았지만, 보스가 될 사람이 나의 영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고, 2주 간의 기다림 끝에 최종 인터뷰를 하고 잡오퍼를 받게 되었었다.


입사하자마자, 나는 이스라엘 친구 (A군이라 부르겠음)와 함께 짝을 이루어서 A군이 프로토타입을 만들던 것을 실제 서비스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인터뷰할 때부터 내가 한국에서 빅데이터 관련된 경력이 있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꼈었는데, A군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하는 데이터 분석가였기 때문에 절실하게 실무 경험이 있는 시니어 개발자가 필요했던 것 같다. A군은 Python을 이용하여 소켓 통신을 하는 서버와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디바이스에서 수집되는 정보를 서버로 전송한 다음 서버에서 분석한 결과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필자와는 달리 PyCharm을 이용해서 디버깅하면서 꼼꼼하게 코드 중간 중간에 주석을 달아 놓는 성실한 개발자였다. 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그러하듯, 코드도 항상 깔끔하게 정리하고 읽기 쉽도록 리팩토링을 해놓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물론 나중에 새로 입사한 S군(전형적인 독일인)이 등장하면, 그의 성실한 코드도 교과서적으로 리팩토링 되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 각 담당자는 (주니어이든 시니어이든 상관없이)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목표에 맞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직접 구현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기존 프로토타입의 의도를 이해하고 향후에 무엇까지를 원하는지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값비싼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였고, 이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수많은 디바이스로부터 raw data를 수집해서 저장을 하고, 그것을 분석해서 결과를 만드는 것은 필자가 많이 했던 일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었다. 이때 놀란 점은 겨우 소켓 프로그래밍으로 몇대의 클라이언트와 한대의 서버 통신만 구현했던 A군이 큰 막힘 없이 잘따라온다는 것이었다. 보통 엔지니어들은 많건 적건 상관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낯선 기술에 약간의 반발을 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해도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이것이 심한 개발자들 (주로 한 업무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개발자들)은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쉽고 빠르며 강력한 방법이 존재함에도 자신이 오랫동안 썼던 느리고 어렵고 상대적으로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방법을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 내의 컨플루언스에 시스템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에 대한 목표와 개요을 정리해놓았을 뿐인데도 별다른 설명 없이도 쉽게 이해했고, 불필요하게 설명하거나 일일이 가르쳐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알아서 나머지 공부를 열심히하면서 따라오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상당히 수월하게 새로운 시스템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물론, 최근까지도 비동기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가 안되어서 간단한 콜백 함수의 원리도 완벽하게 납득을 못하긴 했지만 그런 것쯤은 곧 해결된 문제이다. 필자는 AWS IoT를 이용하여 raw data와 메시지 송수신 처리를 하도록 했고, 수집된 모든 종류의 raw data와 중간 처리 결과 등은 AWS S3에, 그리고 최종 처리된 결과는 AWS RDS (PostgreSQL)에 저장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2개의 AWS EC2 인스턴스를 할당 받아서 ubuntu를 설치하고, 우리가 만든 여러 개의 Python 프로그램과 데이터 캐싱용 MongoDB, 데이터 모니터링을 위한 InfluxDB와 Grafana 등을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다. 필자의 최근 작업이 궁금하신 분들은 필자의 블로그의 글들을 참고하면 된다.

http://nashorn.tistory.com/category/%EC%84%9C%EB%B2%84%20%ED%94%84%EB%A1%9C%EA%B7%B8%EB%9E%98%EB%B0%8D


독일에서 처음 일하자마자, 업무적으로 환상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동료를 만났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었다. A군 덕분에 회사 생활이나 독일 생활에 쉽게 적응 할 수 있었고,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인 와이프를 위해 이스라엘을 떠나서 독일에서 살고 있는 A군은, 상당히 배려심 많고 사려 깊으며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멋진 남자이다. (이스라엘 국적과 독일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독일에서 일하는게 우리처럼 어렵지 않다) 그는 Meetup 서비스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개발 관련 모임에 수시로 참석하고, 최근에는 머신러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최근 후에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기도 한다. 또한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고, 매주 주말에는 와이프와 함께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 기본이다. (요즘엔 주말에 대학교 과정 숙제를 하느라 월요일 아침에 꽤나 초췌한 모습으로 출근하기는 한다) 너무 활동적인 친구라 같이 어울리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힘들다. 필자는 서양인들은 더치페이가 기본이라 얻어먹지 않으려고 하고, 쏘지도 않는다고 들어서 회사나 학교의 친구나 동료들에게 일부러 많이 사줘봤다. 그런데 대부분 얻어먹기만 하고 나중에 뭔가를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솔직히 쿨하다기 보다는 상당히 쪼잔하게 느껴지는데, A군은 다르다. 알아서 잘 사주기도 하고 내가 사는 것도 잘 얻어먹기도 해서 마치 한국인 친구와 지내는 것 같다. A군을 비롯해서 20살짜리 젋은 독일 친구(인턴쉽), 27살짜리 루마니아 친구와 알바니아 친구 정도만이 받은 것을 잊지않고 되갚는 예의를 가졌고 대부분은 얻어먹고 입을 싹 닫는다. 더치페이는 개뿔.


예전에 일본 이야기를 하다가 A군이 자신은 일본에 안 갈꺼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유가 아주 멋지다. 일본인들이 보호해야 할 고래를 여전히 남획하기 때문에, 자신은 일본 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그의 와이프와 1주일 넘게 알바니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단풍 풍경이 아주 좋은 산으로 트래킹을 다녀왔는데 내년 1월에는 스웨덴 여행을 갈 예정이라며 스웨덴의 오로라 사진을 보여주면 신나게 자랑질을 했다. 한국에서는 그의 나이(30대 초반? 그러고 보니 나이도 정확히 모름) 라면 사회 생활에 찌들고 돈 때문에 한창 고생을 할 나이인데, 그에게서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정말 멋지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또 몇주전에는 밥 먹으면서 같은 이스라엘인인 "유발 하라리"의 신작을 읽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A군이 자신은 유발 하라리가 "데마고그(demagogue)"라고 생각한다고 혹평을 했다. 필자는 유발 하라리를 통찰력이 뛰어난 역사학자라고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편으로는 유발 하라리를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신선했던 것은,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은 필자 인생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회사내 막강한 권력(!?)을 가진 IT 담당자가 항상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 같아서, A군에게 물어 본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 "그런 것을 따지면 쿨하지 않은 것이니 그런 이야기 하지마" 필자는 한국에서도 팀원들의 출퇴근 시간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았던 나름 "쿨"한 사람이라고 지금껏 생각을 했었는데, 졸지에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여기서는 남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A군과 같이 일을 하거나 밥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영어로 하게 되는데, 필자의 짧은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들어주고 교정해줘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대부분의 직원들의 영어를 듣는게 쉽지 않은데, 똑같은 영어라도 영국 사람이 쓰는 영어나 독일 사람이 쓰는 영어, 인도 사람이 쓰는 영어가 다 억양이 달라서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A군의 영어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A군과는 회사 업무 마치고 따로 술을 마시러 간다던지, 한국 식당을 간다던지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지난번에는 금요일 저녁에 A군과 와이프를 데리고 필자가 아는 한국 식당에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 한국 식당의 분위기와 음식이 마음에 들어서 그의 와이프는 나중에 자신의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찾아갔다고 한다. A군 부부와 함께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다행히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감사해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 역시 무척 기뻤다. 두사람은 채식 주의자라 야채 김밥을 에피타이저로 주문해서 먹고, A군은 두부 덮밥을, A군의 와이프는 비빔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A군이 한국 맥주를 먹고 싶다고 해서 카스를 주문했는데, 마셔보더니 맥주라기보다는 물에 가깝다는 평가를 했다. (필자는 분명히 말렸지만 그가 선택한 것이다. 독일에서 한국 맥주 따위를 마시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독일 사람들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음식을 항상 싹싹 비울 정도로 식사량이 많은 편이고 생각보다 빨리 먹는다.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빨리 먹는 필자가 여기에서는 느린 축에 속할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날도 A군 부부는 그릇을 싹싹 비웠는데, A군의 와이프가 나중에서야 따로 나온 고추장을 발견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느라 모두가 고추장을 보지 못했고, 결국 그녀는 고추장이 없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은 것이다. 


몇주전 A군은 어렵게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는 이전에 진짜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일을 했었는데,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한명 빼고 A군을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퇴사를 했었단다. 남은 한명이 무임금으로 계속 일을 해서 결국에는 2년 동안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을 투자를 받았는데, 다시 그곳에 합류할까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이미 다시 돌아갈 마음이 80% 이상 될 것이기 때문일 것이라, 네 가슴을 따라 가라 했다. 곧 그는 그의 보스 (회사의 CTO를 말하며, 나에게는 보스의 보스임)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이직할 준비를 했다. 이 때 A군이 필자도 같이 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내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지만, 솔직히 꽤나 고민이 된 것은 사실이다. 돈도 돈이지만, A군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은 무척 즐겁고 많은 자극이 되는 좋은 파트너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었고 만일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아마도 바로 따라 갔을 것이다. 그러나, 힘겹게 취업 과정을 거쳐서 입사한 회사이고 회사의 비전도 상당히 좋은 편에다가 스타트업 치고는 큰 기업이라 일이 바쁜 편이지만 스트레스가 적고 상대적으로도 안정적인 회사이다보니 섣불리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일에서의 첫번째 회사이다 보니 경력 관리 차원에서도 최소 1~2년 이상은 다니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랬는데도, 나중에 A군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면 언제든지 자신의 회사로 오라는 고마운 말을 해주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케미스트리가 잘 맞는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다른 시니어 개발자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봐 걱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필자를 좋게 평가해주었다는 점이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고, 독일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게 되었다.


이번주 금요일이면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동안 같이 하던 업무를 같이 마무리하면서 아무일 없는 것처럼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섭섭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20년간 일을 하면서 이런 기분을 느꼈던 동료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처럼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다. 물론 A군 외에도 회사 내에 좋은 동료들이 많다보니 일하는 것이야 문제 없겠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고민할만한 동료는 A군밖에 없었으니 아쉬움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희망은 앞으로도 계속 A군과의 인연을 맺고 싶은데,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매일 같이 일을 하는 상황이 아니면 조금씩 서로 소홀해지고 예전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오늘 퇴근할 즈음에, A군이 이번주 금요일에 자신의 집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그리고 자신과 필자가 함께 스시 (독일에서 스시란 캘리포니안 롤이나 김밥 같은 것을 의미한다)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는 기꺼이 초대에 응했고, 괜찮은 와인이라도 한병 준비할 생각이다. 


친구여, 항상 감사하고 고맙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내가 자네의 친구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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