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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Feb 04. 2019

독일 이민자 청년의 이야기

독일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 청년들의 삶에 대한 단상

https://brunch.co.kr/@nashorn74/22

필자는 올해 만으로 17살과 12살이 되는 두아이의 아빠이고, 오랫동안 한국의 청년들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온 사람이다. IMF 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첫직장을 다니긴 했지만, 솔직히 IMF로 인한 직접적인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생을 적게한 사람이다. 게다가 학창 시절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거나 프로그래밍을 했는데도, 운이 좋게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커리어도 관리해올 수 있던 사람었을 뿐이다. 필자는 20대부터 회사를 운영하며 젊은 직원들을 고용하여 일을 하거나 30대 이후에는 팀장으로 많은 젊은 팀원들과 함께 일을 해왔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그들의 삶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40대 이후에는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현업 개발자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그들의 커리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위한 일을 해왔기에 그들이 처한 현실에 좀더 다가가볼 수 있었다. 그런 필자가 보기에도 한국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청년들에게 힘든 삶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필자가 아이들을 독일에서 교육을 시키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대책 없이 무한 경쟁을 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 보다도 그들이 학업을 마치고 들어서게 될 한국 사회의 현실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필자는 독일에 와서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친구를 만들고 사귀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사람만을 사귈 수 밖에 없었지만, 여기에서는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VHS(시민학교)의 독일어 강의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중초반까지의 나이대인데, 한국 같으면 이러한 나이대인 사람을 "친구"로 사귄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20살인 인턴부터 나보다 나이 많은 동료가 있는게 자연스럽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게 된다. 지난 1월만 해도 이란인 동료와 여자친구 저녁 식사 초대, 알바니아 친구 생일 파티, 터키 부부 집에 초대 받아 가기, 루마니아 친구와 불가리아 친구 부부 술자리, 인턴쉽 마치는 독일인 동료 환송회, 이스라엘 베프와 저녁 약속, 아들 선생님 부부 (한인 2세 음악선생님과 독일인 첼니스트 남편)와 저녁 식사 초대 등등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저녁에 약속을 잡아야 했다. 일주일에 3일은 퇴근후 4시간씩 독일어를 배우고, 남은 2일은 퇴근후 저녁 식사나 술자리를 가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게다가 저질 체력인 우리 부부와 달리 이들은 젊고 체력도 좋아서 늦은 시간까지 같이 노는 것도 꽤나 힘든 일이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독일에 사는 이민자 청년들의 삶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필자가 모든 이민자들의 삶을 보고 들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나의 친구들 케이스를 통해서 독일에서의 이민자, 특히 젊은이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게된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사랑하는 루마니아 청년인 A군 (28세)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친구는 독일어 클라스에서 만났는데,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서 자신도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 경험이 있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준비하고 말하는 것을 계기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며 월 1200 유로를 벌면서 독일어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자신을 위해 여유 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 일을 덜하면서 (때문에 300유로 정도 덜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독일 레스토랑으로 옮겨서 월 900유로를 번다고 한다. 그는 일하는 시간과 독일어 수업 시간 이외에는 하루에 3~4시간씩 짐에서 운동을 하는데, 짐 이용료는 한달에 20유로라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A군의 뇌는 머슬로 만들어졌다는 농담을 한다) A군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어머님도 일을 하시는 듯 늦게까지 일을 하실때에는 A군이 도와드리는 것 같다. 또한 이 친구는 삼성 제품을 무척 좋아해서 최근에 삼성 갤럭시 s9+를 구입해서 자랑을 하고 있으며, 아이폰을 사용하는 필자를 마치 한국인처럼 비난한다. ㅎㅎ 최근에 A군 아버님이 A군의 노트북을 망가뜨리셔서 최신 노트북을 사야한다는데, 최고 사양의 게이밍 노트북을 사고 싶단다. 필자의 아들 또한 삼성 갤럭시를 너무 좋아해서 작년에 갤럭시 s8을 사줬고, 역시 가성비 높은 HP 게이밍 노트북을 사줬는데 A군과 필자의 아들 성향이 너무 똑같아서 재미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한달에 120만원정도 버는 사람이 비싼 갤럭시와 고사양의 게이밍 노트북을 산다고 뭐라고 하겠지만, 필자는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그의 삶을 존중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술한잔 사야할 차례가 되면 거침없이 쏘는 멋진 친구이다. 그에게 얻어마시는 5유로짜리 기네스 생맥주 그로스 한잔은 정말로 맛이 좋다.


처음에는 독일어 수업을 집사람과 같이 들었기 때문에, 집사람 친구가 곧 필자의 친구인 경우가 있다. A군도 마찬가지이고 알바니아인인 V양도 우리 부부의 친구이다. V양과 A군은 필자와 죽이 맞아서 맥주 클럽을 만들고 자주 술을 마시는 사이인데, 알바니아인인 그녀의 언니 부부는 포츠담 근처에서 "그리스 식당"을 하고 있다. 한번은 우리에게 얻어 먹기만 한다고 느꼈는지, 언니 가게로 초대하여 푸짐한 그리스 음식을 대접했던 경험이 있다. V양은 알바니아에서 대학을 마쳤지만 딱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언니가 있는 독일로 온 경우로 여기에서도 아직 직장은 구하지 못하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이웃이나 가족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용돈을 벌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집에 초대 되었을 때에는 꼭 오고 싶어서 돌보고 있는 언니 아들까지 데리고 왔다) 언어에 센스가 있어서인지 영어나 독일어도 친구들 중에 제일 잘하고 성격도 좋고 밝은 편이지만, 본의 아니게 독일에서 살고 있다보니 대부분의 가족이나 친한 친구는 알바니아에 있어서 상당히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해도 언니는 자신의 가족과 식당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함께할 시간이 적고, 여기서 친한 친구가 있다고 해도 고향 친구처럼 살갑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친구와도 헤어져서 자주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서, 가끔 술자리에서 외롭다고 눈물을 보인다. 자기는 가끔 술을 마시고 싶은데 부를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을 해서 우리 부부와 친구들은 그럴 때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위로해주었다. 필자가 V양에게 감동을 받은 것은 그녀의 생일 파티때였다. 7명이 모인 자리에서 다들 실컷 먹고 마신 덕분에 200유로가 넘게 나왔는데 그녀는 자신의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10유로 짜리와 20유로 짜리를 꺼내서 계산을 했다.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모은 돈이라는 걸을 알기에 정말로 고맙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세번째는 역시 독일어 클래스에서 만난 불가리아인 J양과 그 남편 이야기이다. J양의 남편은 이전에 일식집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 나중에 일본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때는 무조건 첫번째 단골 멤버가 되겠다고 예약을 해두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ㅎㅎ J양은 A군과 V양처럼 자주 우리와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남편이 항상 따라오기 때문에 늦게까지 함께 있지는 못한다. J양의 남편은 차량으로 배달 업무를 하기 때문에 매일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가 그 남편하고도 잘 어울리는 덕에 J양이 우리 모임에 올 수 있는 것이니, 약간은 허세가 있는 그 남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편이다. 독일에 온 이민자 중에는 운전면허가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처럼 자국의 운전면허증을 독일 면허증으로 교환해주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몇개월이라는 시간을 소요해서 독일 운전면허증을 따야한다. 그런면에서 J양의 남편은 운전면허증을 가진 몇안되는 친구 중에 하나이다. 그는 한달에 세후로 1700유로 정도를 번다고 하는데, 잡센터를 통해 직접을 구한탓인지 급여에서 50유로 정도를 잡센터에 지불한다고 한다. 내가 아는 독일에 사는 친구들 중에 가장 독일을 싫어하기에(!?) 여러가지 불만을 터뜨리는데, 개인적으로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독일 사회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독일 인구 8천만 중에 약 20%가 외국인이라고 주장을 하며, (얼마전에 필자가 올린 다른 글에는 10% 미만 정도가 외국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독일 정부는 많은 외국인들을 저임금 노동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저렴한 물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저임금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이라는 점은 일부 동감하지만, 독일인조차 미니잡이라는 형태의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외국인 노동자들의 몫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계속 화두가 되고 있고, 커다란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대우 차이나 정규직-비정규직 대우 차이는 한국 사회에 상당하게 고착화 되어 양질의 일자리는 계속 줄고 좋지 않은 근무 여건의 일자리만 계속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이 문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서로 얽혀있는 상황이라서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독일 또한 우리나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어떤 부분은 더욱 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최저 임금 관련 논의를 하면서 1시간 일해서 햄버거 하나도 못사먹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독일은 1시간 일해서 교통비를 내지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독일의 대중교통 이용료가 우리나라 대중교통 이용료보다 비싸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독일로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왔던 분들의 경험담을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미니잡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사례를 수도 없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에 비해 교육열이 낮을 것처럼 보이는 독일인들도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 이유는 대졸자의 급여 수준이 그렇지 않을 경우와 차이가 있고 임금 상승률이 높지 않은 독일의 특성상 초봉 수준이 퇴직시까지 거의 유지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전에 그룬트슐레 6학년인 아들이 지원할 김나지움 오픈데이 때 방문을 했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방문한 것을 보고 솔직히 꽤나 놀랐다. 우리는 이 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6380.html


이렇게 되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실업률이 낮다는 독일의 고용 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환상을 깰 필요가 있다. 독일 역시 한국 못지 않게 저임금 노동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것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대학 교육을 마치기 위해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수천만원의 빚을 얻는 것으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청년들에 비해, 일단 대학교에 입학을 한 이후 학생 신분을 가지면 비용 부담 없이 많은 혜택을 받는 독일은 시작부터 차이가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독일 정부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꼭 필요한 인재가 아니라면, 이민자인 경우 청년이든 중년이든 일정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직장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설령 취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급여 수준에 차이가 클 수 있다. 30대 초반인 이스라엘 베프의 독일인 여자친구는 "아키텍트"이며 최근 독일에서 최고의 건축회사로 이직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정말 행복해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업무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단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전자급의 일류 회사로 이직한 셈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아키텍트라는 직업은 연봉이 그다지 세지 않는 것이 문제다. 업계 최고의 회사에 들어갔지만 급여는 크게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독일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IT 분야는 상당히 혜택을 받는 분야라고 할 수 있으며 경력에 비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며칠전에 뉴스타파에서 청년실업과 관련된 영상이 올라왔다. 평소 한국의 청년 실업과 관련된 영상과 뉴스들을 일부러 찾아서 열심히 보고, 거기에 달린 댓글도 열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이런 컨텐츠의 댓글에는 청년들의 현실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도움이 된다) 해당 영상에는 30대 중반 남성이 뒤늦게 시작해도 비교적 취업이 용이하다는 IT 분야로의 전직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몇백만원이 넘는 학원 수강료가 부담이 되어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무료 수강 과정을 듣고 싶어하지만 자격이 미달되어 힘들어하는 모습도 나온다. 그런 과정의 강사로서 취준생들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 말을 하자면, 일단 그러한 교육을 받더라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육 이수만으로는 취업이 보장되지 않으며, 나름 기술 직종이기 때문에 최소한 적성이나 성향이 맞아야 어떻게든 버틸수 있는 분야이다. 또한 그나마 다른 분야에 비해 희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IT 업계 역시 어떤 분야의 일을 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나이는 많은데 신입이라면 선택의 폭이 많지 않으며, 그렇게 시작한 일이라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일정 부분 포기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영상에서는 9년차 웹디자이너의 암울한 이직 과정을 상세히 다루었는데, 그녀가 지금껏 경험한 것이 바로 한국의 IT 업계의 현실이다. 고용 불안에 늘 시달려야 하고 낮은 연봉에 경력에 도움이 안되는 쓸데 없는 일까지 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희망을 보았는데, 최근에는 스타트업에 취업해서 제대로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설픈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괜찮은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심금을 울린다. "이 회사(스타트업)가 최소한 일년은 버텨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약간의 경력이라도 있고 영어가 가능하다면 독일로 이민을 권하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에 링크된 트윗은 필자가 예전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올린 것이었다. 본 채용으로 입사할 경우 2년 미만의 경력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라니... 미친거 아냐? 취업이 안되어서 1~2년의 어설픈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신입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거대한 기업이 대놓고 저런 구인공고를 올린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일단 적던 많던 경력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할 자격이 있다. 2년 미만의 경력 따위는 무시될만큼 그들의 인생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필자가 20년간 한국 IT 업계에서 일을 했던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한국 기업 정서는 직원을 소모품으로 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외국계 한국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똑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법이나 사회 규범 등 보다 더 큰 문제가 먼저 자리를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배워왔고 (학교나 직장, 사회에서)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뿌리 깊숙히 들어있는 정서라서 쉽게 바뀔 수 없다. 한 예를 들자면, 앞서 언급한 필자의 친구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저임금 노동자"이다. 그러나 이 친구들의 급여는 적을 지언정 자신의 인격을 무시당하면서 온갖 수치를 참아가며 일을 하지는 않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수치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스라엘 베프와 여자 친구는 둘다 직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빠듯한 살림을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주말마다 많은 곳을 찾아서 여행을 다니는 것을 즐기며 행복을 쌓아가고 있다. 한국에는 그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매일매일 각종 스트레스를 받으며 힐링을 외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더 나은 "삶"이란 말인가.

https://twitter.com/nashorn74/status/711172326209884161


물론, 모두에게 독일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다음의 코트라 뉴스 내용은 상당히 잘 정리되어 있어서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하는 부분이 "취업 후 어려움"이라는 항목의 첫번째는 바로 "외로움"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이민자가 겪게 될 가장 큰 어려움은 차별도 아니고 급여가 적은 것도 아니고 바로 "외로움"이다. V양이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베를린리포트 게시판을 보면 우울증이 오는 사람이나 외로움을 겪고 있는 유학생의 이야기를 찾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30~40대의 이민을 권장한다. 아이들만 오거나 남편만 와서 생활을 하는 경우,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다. 가족과 왔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한 많은 친구를 만드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필자 부부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초대 하거나 초대를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여기서는 집으로 초대하는 것도 조금씩 시도해보고 있다. 몸도 고달프고, 쓰는 돈도 적지 않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먼 타향에서 외로움을 달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언어나 문화를 배우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 때에는 별로 관심없었던 유럽 지리와 역사에 대해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수 있게 된다. 집사람은 독일어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같이 차를 마시거나 집에서 같이 숙제를 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도 하기 때문에 바쁘게 살고 있고, 필자 역시 회사 생활과 독일어 수업,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느라 주중에는 녹초가 되며 주말에는 엑스박스나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는 덕분에 아이들보다 빨리 독일 생활에 적응을 한 것 같다.

http://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7/globalBbsDataView.do?setIdx=245&dataIdx=171796


독일에 온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도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마트에서 줄을 서면 캐셔가 세월아 네월아하면서 느긋하게 계산을 하는 통에 줄이 엄청 길어져서 복장이 터질때가 있다고. 우리나라 같았으면 난리가 날 상황인데도 이들은 나름의 호흡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필자는 반대로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든다. 시간에 쫒기듯, 누군가에게 쪼이듯 항상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하면서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한국보다, 상대방이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모든 이가 자신의 컨디션에 맞춰서 존중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독일이 백만배쯤은 낫다. 한국에서는 누구든 기회만 되면 서로에게 "갑질"을 하면서 서로를 힘들게 하려고 하지만, (필자는 갑질이 결코 부자나 대기업에서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여기서는 얼마의 급여를 받든지 상관없이 최소한 상대방을 존중하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필자가 A군에게 한국에서는 음식점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니, 택도 없는 소리라면서 딱 이 한마디를 했다. "만일 나처럼 그곳에서 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어떻게 할려고?"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일요일에 모든 가게가 닫혀있는 것이 무척 불편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오히려 일요일에 대형 쇼핑몰이 열려있으면 놀라게 된다. 내가 편하면 누군가는 불편하고 힘든 것이고, 반대로 내가 조금 불편해지면 다른 누군가는 편하게 쉴 수 있다. 필자가 독일에 와서 깨우친 간단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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