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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Nov 09. 2022

행복은 혼자서 이뤄낼수 없다

한국에서는 평생 느끼지 못했지만, 독일에서는 금방 깨닫게 된 간단한 사실

독일 이민 오기 전에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뿐만 아니라, 미국/캐나다 이민에 대해서도 나름 알아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에 와서 겪고 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몇차례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인터뷰를 보면서 미국/캐나다 진출 역시 시도를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미국 스타트업의 나쁘지 않은 조건의 계약서를 받아들고 일주일간 숙고를 한 끝에 거절을 하면서 나 스스로 꽤나 놀랐었다. 한때는 그렇게 얻고자 했던 기회였는데 발로 차버렸으니 놀랍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의 미국과 한국의 취업 시장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당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어서 오히려 기분이 묘하다.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의 대량 해고 사태, 그리고 페이스북 역시 대규모 해고 예정이고 애플이나 아마존은 신규 고용을 중단하는 등 예상했던 상황이 벌어지면서, 고용 불안이 심한 미국과 한국 업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와중에도 아마존의 리쿠르터가 내게 컨택을 해온 것이다. 올해 봄에 컨택해왔던 아마존 리쿠르터에게 몇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더니 연락이 끊겼었는데, 동일한 질문들을 던졌는데도 나름 성실하게 답변을 해오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나름 괜찮은 리쿠르터라고 생각이 들어 간만에 시간 내어 한번 참여를 해볼까 고민을 해보고 있었다. 며칠뒤에 같은 리쿠르터가 똑같이 복붙한 내용의 메일을 기계적으로 다시 보내오는 것을 보고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더이상 아마존의 하이어링 프로세스는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아마존의 이직률이 높아서 항상 대규모의 개발자를 채용하는 편이고 이것이 일종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지금 나의 소득 수준이나 복지 수준, 삶의 질 등을 제대로 맞춰주지도 못할 기회에 나의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작된 나의 재택 근무는 2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업무를 진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고, 굳이 출퇴근 때문에 시간이나 체력을 낭비하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이며, 회사 동료들을 만나러 가끔 회사 사무실에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1~2주에 한번 얼굴을 보는 회사 동료들과는 매번 마주칠 때마다 진한 허그를 나누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같이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다보면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지금 회사에 벌써 4년 넘게 다니고 있는데, 매일 출퇴근을 했던 것은 겨우 1년반에 불과하고 더 많은 2년반 동안은 재택으로 일해왔으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마주치는 일부 회사 동료들은 농담으로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독일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니었더라면 위기감을 느껴야 할 반응이다. 가끔 우리 부부가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기 위해 토요일 오전에 찾아가는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에서 가을 정취를 느끼며 산책을 하던 와이프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니 더 실감났다. 와이프는 내가 한국에서부터 25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해왔던 것을 바로 옆에서 계속 지켜봐왔기에 냉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한국 회사 같았다면 벌써 짤렸을 것이고, 회사에서 짤리지 않았더라도 주위의 동료들이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부부의 가족이자 친구이기 때문에, 독일에 온지 5년이 되었고 이제는 나름 자리를 잡은 우리 가족의 지금 상황에 대한 가족과 친구들의 평가와 생각을 알고 싶지 않아도 결국엔 다 알게 된다. 우리 부부 또래의 친적들이나 친구들의 한국에서의 삶이란 꽤나 비슷비슷하다. 적든 많든 가정 형편에 비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쓰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커리어를 시작했더라도 결국 40대 후반, 50대에 들어서면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야하는 시기가 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도전과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했느냐 못했느냐, 좋은 대학에 갔느냐 못갔느냐 등으로 서로에 대한 비교가 시작되고, 안타깝게도 여기서부터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 친구들은 연락이 끊기기 시작한다. 가족들이야 이 때문에 인연이 끊기지는 않겠지만 눈에 안보이는 자존심 싸움은 시작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힘든 삶을 살면서, 자신들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치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고, 대학가면 취업하면 결혼하면 나중에는 가능할 것이라 희망을 가지지만 죽을때까지 그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남들처럼 좋은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고 좋은 차도 타야 하며,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서 좋은 직장을 가지게도 해줘야 한다. 때 되면 힐링하러 캠핑도 가야하고, 해외여행이나 골프 치러 필드도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품도 적당히 들고 다녀야 하니 써야하는 돈은 적지 않은데 벌어들이는 수입은 뻔하다. 다행히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 재산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는데, 물려 받은 재산 없이 자기가 번 돈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면 꽤나 만만치 않게 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들에게, 머나 먼 독일에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것보다 훨씬 쉬워보이고 돈도 적게 드는 방법으로 대학을 보내고 김나지움에서 공부를 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육체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면서 맨날 이나라 저나라로 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그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거나 억울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불합리한 사회와 시스템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월 1200유로 정도를 버는 루마니아 친구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월 800유로만 벌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얼마전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독일인 동료가 자신이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서 80%만 일을 하기로 마음 먹고 매주 월요일에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전에도 육아 휴직도 아닌데, 자기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역시 일주일에 하루이틀만 일을 하는 다른 독일인 동료를 본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이들의 여유롭게 삶을 대하는 모습이 겹쳐지니 솔직히 슬픈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에게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자신을 위해 80%만 일한다는 독일인 동료가 만들어준 라떼를 같이 마시며, 최근에 자기가 만든 비건 김치와 김치 찌게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봤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들은 자신이 마시기 위해 만드는 커피 한잔에도 진심을 담는다. 회사 사무실 갈때마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는 나의 베프는 최근에 여자친구와 로마에 다녀왔는데, 자기가 만든 여행용 크로스 백을 테스트해봤다며 보여주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가 몇개월전에 영국산 소가죽으로 만든 브리프케이스를 내게 선물로 줬던터라, 이번에는 내가 돈을 주고 구입할테니 나를 위해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했다. 취미로 가죽 제품을 만드는 이 친구의 정식 고객이 되어 준것이다. 베프는 나중에 가게를 하나 빌려서 가죽 공방 같은 곳으로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홈페이지와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들을 열심히 만드는 중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의 베프는 이란에서 7년전에 독일로 정치적 망명을 했었고 최근에 정식 독일 비자를 취득한 난민이며, 같은 회사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며칠전 나는 집주인 회사로부터 월세와 관리비를 약 10% 정도 인상한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최근에 독일 임대 회사였던 집주인이 (돈 밝히는) 네덜란드 임대 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름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큰 데미지는 없었다. 그리고 관리비는 연단위로 정산을 해서 덜쓴만큼 돌려주는 돈이기 때문에 올리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이전의 독일 임대 회사가 몇년간 월세를 거의 올리지 않았던터라 어떻게 보면 이제 겨우 정상화되는 셈일 수도 있다. (물론 요즘 신규 월세 가격은 훨씬 더 비싸게 올랐음)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독일 정부가 12월 전기세는 정부에서 부담해주고 얼마전에 한번 했던것처럼 연료비 300유로를 더 지원해주겠다고 발표를 했다. 그리고, 몇개월전 3개월간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9유로 티켓의 평가가 좋아서 내년부터는 아예 전국에서 사용 가능한 월 49유로짜리 티켓을 시행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보다 약 2배 정도 더 비싼 대중교통비가 앞으로는 한국보다 훨씬 더 싸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1년 내내 무료 베를린AB 교통권을 사용하는 아들내미와 학기중에 베를린ABC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딸내미는 별도. 15세 아들내미 뿐만 아니라 딸내미도 25세까지 학업을 하는 경우라면 월 30만원씩 정부에서 받는 킨더겔트까지 있다. 독일에서의 "복지"는 복지 후진국인 한국과는 달리 정부가 알아서 먼저 챙겨주기 때문에 솔직히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값 상승 등으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듣기로는 독일 정부가 열심히 챙겨놓은 천연가스값이 떨어져서 오히려 문제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리들, 네토, 알디 같은 저렴한 대형마트들에는 오른 물가 때문에 물건 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독일 역시 최근에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는데, 여전히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된다는 사실. 익히 알려진대로 대학생인 딸내미의 한학기 등록금은 300유로에 불과한 것도 가계 경제에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


독일에서 구입했던 아들내미의 첼로는 오래된 중고 첼로라 수리가 필요해서, 학교 첼로 레슨 선생님의 소개로 악기 공방이지만 수리도 한다는 곳을 방문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키 크고 마른 분이 문을 열어주셨는데, 능숙하게 악기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모습이 꽤나 믿음직했다. 한국 같으면 이런 일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독일에서는 어느 분야든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내미도 자기가 나중에 해볼 수 있는게 너무 많아서 무엇을 할까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 딸내미가 다니는 미술대학의 학과는 기업들의 기부가 많아서 다른 과에 비해 좋은 건물과 시설에서 공부할 수 있고, 나중에 취업도 꽤나 잘된다고 한다. 두아이 모두 독일에 처음 와서 독일어 때문에 공교육에 적응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4~5년간 독일 친구들과 공립학교를 다녔던 딸내미의 경우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들보다 독일어를 잘하기 때문에 대학교 생활이 어렵지 않고 즐거운 모양이다. (내가 굳이 국제학교를 보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들내미의 경우, 아직 독일어에 대한 자신감은 부족하지만 과외 선생님들 덕분에 수학과 영어는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고 있어서 독일어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된다. 얼마전에 나흐힐페 (방과후 보충수업) 담당 하시는 선생님께서 찾아오셔서 아들내미가 라틴어 수업을 안듣는다는 것을 아신다며, 그 시간에 같이 독일어를 공부하자고 하셨단다. ㅎㅎ


며칠 전 페이스북에 7년전에 와이프와 동네의 단골 이자카야에서 관자볶음과 누룽지탕을 안주삼아 따듯한 도쿠리를 나눠 마시던 사진이 떴다. 당시 딸내미는 예원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고 와이프는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애견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빡세게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었는데,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항상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때 저녁 식사(술은 덤)하러 자주 들렀던 단골 이자카야는 물론 동네 초밥집, 갈매기살 고깃집, 곱창집 등과 그 가게들의 주인분들과 음식, 술이 그립기는 하지만 그 시절은 절대로 그립지 않다.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확실하게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열심히 버는 만큼 아낌없이 가족들과의 의미 있는 "경험"에 돈을 쓰면서 매 순간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나는 "개인의 혼자 노력으로만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허상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회, 문화, 시스템과 제도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개인은 물론 모든 사회 구성원들과 정부가 함께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대의 한국인 35%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는 개인의 행복은 결코 개인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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