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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Dec 27. 2022

독일의 12월은 축제 기간

크리스마스 마켓을 시작으로 한달간의 축제가 시작됩니다

11월 초중반부터 우리집 앞의 커다란 공터에 놀이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놀이 기구들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착착 완성되더니 12월이 되기 전부터 오픈해서 매일 성황리에 운영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저녁때마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창밖으로 들리는게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보다는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관공서(Bürgeramt) 앞에 설치되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역시 11월부터 오픈해서 새해 초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집 앞의 쇼핑몰 역시 매년 해왔던 것처럼 크리스마스 장식을 화려하게 설치함으로써 한달간의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한국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일부러 어딘가로 찾아가서 즐겨야 했지만, 독일에서는 동네마다 크고 작게 이런 마켓이 열리기 때문에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굳이 차를 몰고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되고,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 없이 가족들과 손잡고 걸어가서 축제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옥토버 페스트 말고도 이렇게 집근처에 자주 뭔가가 뚝딱거리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수 있는 즐길거리가 있는 편이다.



올해는 월드컵 시즌이 겹치는 바람에 월드컵 축제도 같이 즐길수 있게 되었다. 독일 살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동료들과 일하면서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때이다. 본선 진출 국가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축구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한국이나 독일은 물론 잉글랜드, 프랑스, 아르헨티나, 이란, 포르투칼, 스페인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온 동료나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경기 결과 나오면 축하 메시지를 보내거나 해야하기 때문이다. 비단 월드컵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세계 어디선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하면 최소한 한두명의 친구나 동료들이 온 나라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항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프랑스-잉글랜드 경기가 있었는데, 나의 술친구들이 프랑스인, 영국인이기 때문에 경기를 같이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결국 프랑스 동료는 자기 친구들과 프랑스 응원하러 가고, 나는 영국인 동료와 함게 스포츠바에서 경기를 관람하기로 했다. 미테에 사는 영국 동료는 집근처의 왠만한 크라프트 비어 펍의 단골이라, 스포츠바에 가기 전에 그중 한곳에 들러서 프루티한 것과 3배 스트롱한 것을 한잔씩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혼자 와서 맥주를 시켜놓고 신문을 보는 것이 취미라니 나름 멋지다.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경기 시작 한시간반전에 스포츠바로 가서 좋은 자리에 앉았다. 맥주 시켜놓고 경기 시작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는데, 그다지 크지 않은 스포츠바에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나중에는 움직이기 힘들정도로 꽉차게 되었다. 역시 단골인 영국 동료의 전략이 성공한 셈.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앉아서 경기를 즐겁게 관람할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경기는 프랑스의 승리. 그래도 독일인, 영국인, 프랑스인이 뒤섞여서 즐겁게 경기를 즐길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12월 중순이 되자 회사의 이벤트들이 줄줄이 진행되었는데, 12월의 남은 2주 동안 대부분 휴가를 가기 때문에 그전에 약속들을 잡았기 때문이다. 연말 직전까지 모두 출근을 하는 한국 회사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 현재 속한 팀의 팀원들과 팀이벤트가 잡혔는데, 볼링을 칠건지 게임센터에 갈 것인지 투표 결과 포츠다머플라츠에 있는 게임센터가 결정되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임센터"는 아니겠지 했는데, 넓직한 공간에 역시나 다양한 게임기들이 놓여있고 2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즐긴 다음 스코어가 높으면 상품을 받아갈수 있는 게임 센터였다. 처음엔 유치하게 뭘 이런데 굳이 돈내고 오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회사 동료들과 이것 저것 같이 즐기다보니 나중에는 지칠 정도가 되었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비틀즈 음악을 들으며 즐길 수 있었던 핀볼 게임이었다. ㅎㅎㅎ



게임센터에서 신나게 논 다음에는, 근처에 있는 소니 센터 내의 레스토랑으로 몰려가서 예약된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했다. 12명 모두에게 음료수, 에피타이저 그리고 메인 순으로 일일히 주문을 받는데 다들 뭐가 그리 복잡하게 주문들을 하는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1인당 50유로의 예산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나름 고심하면서 메뉴를 선택한 듯. 나는 게임센터에서부터 배고프고 목이 말랐기에 바이젠비어가 나오자마자 단순에 들이켜야 했다. 역시 맥주는 독일 맥주! ㅎㅎ 에피타이저는 공용으로 여러개 주문해서 나눠먹었는데 다들 나처럼 배가 고팠는지 금새 사라져버렸다. 나는 메인으로 무난하게 "투움바 칠리 더블 버거"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다른 동료 중에는 크로커다일 고기나 캥거루 고기를 주문한 친구들이 있었다. 크로커다일 고기는 물고기와 맛이 비슷하고 (물속의 치킨 맛이라고도 함) 캥거루 고기는 비프와 비슷한 맛이라고 한다. 음식을 먹고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후식까지 시켜서 챙겨 먹고 독일인 동료 한명이 마지막 잔을 한잔씩 돌리며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다들 전철 타러 각자의 길을 나선다. 참으로 건전하고 적당한 회식이다.



연일 파티와 미팅으로 지친 와중에도, 4년 넘게 산업용 3D 프린터 개발에 참여했음에도 한번도 스스로 3D 프린팅을 해본적이 없는 나처럼 3D 프린팅 경험이 없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대상으로한 후처리 워크샵이 열렸다. 이를 위해 다른 동료들이 며칠동안 후처리할 3D 프린팅을 해야 했는데, 영국인 동료는 나를 위해 이순신 장군 피규어를 프린팅 해주었다. 원래는 서포트를 제거한 다음 색칠까지 하는 코스였는데, 감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빠지게 되어 나는 서포트 제거만 하고 마무리했다. 소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워크샵임에도 안전을 위해 안전모와 장갑을 꼼꼼하게 착용하고 진행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이탈리아 동료들이 추천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피자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나는 일부러 스파이시 피자를 주문해보았다. 아주 매운 맛은 아니었지만, 제대로된 이탈리아 스타일의 약간 매운 피자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서툴러서 투구의 뿔은 부러트려 먹었지만, 그럴듯하게 다듬어서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독일인 동료 하나는 나보다 훨씬 큰 프린팅 결과물을 후처리하고 열심히 색칠까지 하느라 난리였다. 아무리 연말이라고 해도 업무 시간 (거의 한나절)을 빼서 이렇게 다같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워크샵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은 독일 회사 답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달전부터 열심히 공지했던 멕시칸 크리스마스 파티가 회사 사무실에서 열렸다. 현재는 멕시코 동료들은 예전에 퇴사한 상태라 회사 내에는 멕시코인이 없지만, 미국인인 HR 책임자가 감수한다며 테마를 이렇게 잡은 것이다. 아무도 왜 굳이 멕시칸 파티인지 모르지만 (여름 파티는 인디안 서머 파티였는데, 역시 인도인 동료들이 지금은 몇안되는 것으로 기억함) 특별히 주문한 타코는 꽤나 맛이 좋았고, 홈메이드 마가리타와 애플와인 등 맥주를 벗어난 다양한 음료들이 제공되었다. 타코 코스튬을 입은 선물 교환 이벤트의 진행자가 진행하는 선물 교환도 재미있었는데, 서로가 가져온 선물들을 쌓아놓고 랜덤하게 배포된 번호표 순서대로 선물을 하나씩 골라서 포장을 풀었다. 이미 개봉된 하나의 선물은 최대 2번까지 자기 차례인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룰이 있어서, 좋은 선물은 빼앗고 뺏기는 재미가 있었다. 나도 와플 메이커를 다른 동료에게 빼앗아왔지만, 다른 동료에게 빼앗기게 되어 결국 이탤리언 샴페인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는 피곤해서 5시간 정도 놀다가 오후 10시쯤 우버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간 동료들은 오전 2~3시까지 놀다가 가거나 아예 전철이 다니는 오전 4~5시까지 버티다가 집에 간 동료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ㅎㅎ 이렇게 사무실에서 파티를 해서 어지럽혀진 것은 다음날 아침 자원한 회사 동료들이 모여서 치우는 대신, 맛있는 브런치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해결한다. 어쩌다 유럽에 잠깐 놀러와서 구경 한번 해놓고, 유럽은 밤새 놀수 있는 방법이 없고 교통이 불편해서 서울에서 살던 사람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는 소리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유럽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베를린에서 밤새 먹고 노는 것은 서울 못지 않다. 오히려 한밤중에 택시 잡기 힘든 서울에 비해 1분이면 콜한 우버가 도착하는 베를린이 오히려 부담없이 놀기엔 더 좋다는.



한국 식당에 자주 같이 다니는 매운 음식 잘 먹는 친한 독일인 동료가 어느날 자기는 왜 우리집에 초대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다. 생각해보니 다른 회사 동료들은 우리집에 초대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를 비롯해서 사무실에서 같이 어울려다니는 다른 동료 중에도 아직 초대를 안한 친구들이 있어서 12월 중순 일요일 저녁에 다같이 초대를 했다. 매운 음식을 잘먹는 동료도 있지만 베지테리안인 동료도 있고 매운 것을 못먹는 회사 동료 와이프도 있어서, 이전과 달리 다양하게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단 에피타이저는 김밥, 김치만두, 매운양념치킨, 야채샐러드로 시작하고 메인은 제육볶음, 마파두부 또는 비빔밥으로 하기로 했다. 이중 제육볶음과 마파두부는 이번에 처음해보는 음식들이라 미리 만들어보고 테스트를 해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각자 맥주를 가져와서 소주나 위스키와 섞어서 한국식 폭탄주를 말아마시기로 규칙을 정했다. 예전에도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마시는 방법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서 마시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내어온 음식들을 잘들 먹어주어 다행이었고, 자기들이 들고온 맥주는 물론 우리집에 있는 맥주들까지 모두 탈탈 털어서 마시며 6시간 넘게 놀았다. 익숙해지기는 했어도 이렇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파티를 하는 것은 언제나 돈이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드는 일이지만, 함께 외식을 하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온 가족이 쇼핑을 하러 쿠담 거리로 나섰다. 먼저, 지난 10월에 한국 면세점에서 구입했다가 430유로 밖에 안되는 독일 입국시 면세품 제한 때문에 환불했던 와이프 선물부터 사기 위해 에르메스와 프라다를 방문했다. 유독 쿠담 거리의 에르메스에는 평소에도 손님들이 붐비는 편인데 이날도 손님이 많아서 대기했다가 입장해야 했는데, 아쉽게도 와이프가 원하는 상품이 없어서 프라다에서 구입해야 했다. 참고로 동일한 브랜드의 동일한 제품에 대해서 한국 면세점 가격이 독일에서 19%에 이르는 부가세를 내고 사는 가격보다 훨씬 비싸다. 그리고 올해부터 나의 단골이 된 이탈리아 브랜드 매장에 가서 겨울 바지 두벌을 구입했다. 한국에서는 옷에 사람이 맞춰야했는데, 여기서는 사람에 옷이 딱 맞춰지기 때문에 쇼핑이 더욱 즐겁다. 물론 가격도 한국에 비하면 꽤나 양반이고. 그 다음에는 URBAN OUTFITTERS와 H&M을 차례로 방문해서 딸내미와 아들내미가 열심히 쇼핑을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쿠담 거리의 모든 나무에 조명 장식을 하는데, 어두워진 저녁에 환하게 켜지는 조명들은 언제봐도 예쁘다. 쿠담 거리의 길이 꽤나 길고 넓어서 다같이 걸어다니며 쇼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다음날 병이 날 정도였다. ㅎㅎ 



지난 7월 아헨에 사는 와이프의 절친을 만나러 600km 넘는 장거리 운전을 했던 적이 있었다. 주말에 함께 아헨과 주변 지역에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때 크리스마스 때 베를린에서 다시 보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키고자 와이프 친구가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부터 회사 동료에게 3000유로에 구입한 수동 자동차를 몰고 600km 넘게 운전해서 베를린으로 왔다. 반나절 넘게 운전을 하고 와서 피곤할텐데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당일에 부랴부랴 잡은 예약이라 3명을 위해 급조된 테이블인듯 했으나, 친절하고 유쾌한 웨이터들의 서비스와 맛있는 음식과 와인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웨이터 추천으로 주문한 와인도 좋았고, 치즈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나 메인으로 나온 양고기 스테이크도 맛있었을 뿐만 아니라 디저트를 주문하려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디저트는 우리에게 맡겨라"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웨이터도 너무 좋았다. 꽤나 넓은 식당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시끄러웠지만 세사람 모두 더이상 못먹을 정도로 배터지게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다음날 저녁에는 와이프 친구가 우리집으로 와서 하룻밤 머물며 저녁 식사와 위스키 반병을 나눠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독일에서는 휴일이었던 26일 월요일에 다시 아헨으로 장거리 운전을 해야했기에 아쉬운 이별을 해야했지만, 내년 가을에는 일주일 정도 같이 터키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독일에 와서 연말은 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이번처럼 크리스마스를 친구들과 보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이런저런 파티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도 끝이 났고, 2022년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작년 연말 덴마크 여행 갔다가, 시내에 있는 좋은 호텔에서 새해 이브 디너를 예약했다가 시스템 오류로 오버 부킹이 되어 강제 취소된 적이 있다. 나름 꽤나 기대를 했던터라 아쉬웠기에 올해는 베를린의 호텔에서 새해 이브 디너를 예약하려고 했었는데, 다행히 포츠다머 플라츠 바로 앞에 있는 리츠 칼튼 베를린 호텔에 새해 이브 디너를 예약할 수 있었다. 더불어서 같은 호텔에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좋은 방도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나름 낭만적인 호캉스를 즐길 예정이다. 이번 연말에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멋진 추억을 만들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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