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50만원 감면 기념으로 올리는 글
며칠전에 집주인 회사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다. 하나는 2019년도 관리비 정산 결과였는데, 선지불한 관리비에서 40만원을 돌려준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매월 내는 월세(밤미테)에는 기본 월세(칼트미테) 외에 관리비와 난방비, 수도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추가로 내는 비용이 월 300유로 정도 되는데, 한달분의 관리비를 돌려주는 셈이다. 언제나 이렇게 돌려받는 돈은 액수와 상관없이 기분이 좋다. 두번째는 조금 더 복잡한 내용의 우편물이었는데, 번역기를 돌려보아도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통역사분께 확인을 요청드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11월 23일부터 "베를린 월세 제한법"이 적용됨에 따라서, 베를린에서 지정한 1제곱미터당 월세 상한선에 맞춰서 월세(칼트미테)를 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의 월세는 누가 들어도 놀라고 비싸다고 했던만큼 다소 비싼편이었다. 하지만, 독일에 오기전에 어렵게 구한 집이고 다행히도 집 자체도 마음에 들어서 얼마 더 내는 것쯤은 기꺼운 마음으로 감수를 하고 있었다. 바로 앞이 강이라 경관도 좋고 (오랜기간의 재택근무가 힘들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이다) 멋진 산책로가 옆에 있으며, U-Bahn,S-Bahn 역이 5분 거리이고 그 바로 앞에 대형쇼핑몰과 피트니스 센터가 있다. 그 맞은편에는 시청과 VHS(시민학교), 도서관이 위치한 구 중심가가 있어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딸내미는 10분만 걸어가면 되는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들내미도 버스정거장으로 2~3정거장 정도에 있는 김나지움에 다니고 있어서 여러모로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집주인이 베를린내에 다수 건물을 가지고 세를 주는 회사인 덕분에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투명하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서 마음에 들기도 했다.
집주인에게 월세 조정이 된다는 우편물을 받았고, 통역사분께 확인까지 받았지만 그래도 믿겨지지 않아서 확인차 집주인 회사에 메일을 보냈었고, 오늘 아침 답장을 받았다. "다음 월세부터는 (무려 50만원이!!) 감면된 월세로 송금하면되고, 즐거운 하루되길 바란다."라는 간결한 내용이었지만, 아주 기분이 좋은 답장이었다. 그래서 당장 은행 앱을 실행하여, 매달 말에 자동 이체하도록 되어 있는 월세 금액을 얼른 바꿨다. 우리가 이 집에서 산지 1년쯤 되었을때도 월세 인상 안내 우편물이 왔는데, 1만원인가 2만원이 올랐다고 했을때 믿겨지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매월 50만원씩 월세가 줄어든다고 하니 더더욱 믿겨지지가 않는다. 독일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사회주의적인 개념의 사회보장 제도가 잘되어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월세"와 같은 개인간의 계약 내용에 대해서도 공익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직접 개입하여 조정을 한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그동안 살다보니 독일에서 회사를 설립해서 사업을 하는 것은 (한국에 비해서) 내키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독일에서 세를 놓는 집주인이 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닌듯 보인다.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내 경우에는 "영주권 취득"을 위해서 결국 이용을 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독일 정부는 코로나로 사업 여건이 어려워진 회사들이 고용 유지를 할수 있도록 "Kurz Arbeit"(단축 근무) 제도를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마자 시행했고, 많은 회사들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전직원에게 Kurz Arbeit를 시행하도록 했다. 다만, 나는 영주권 신청을 위해서는 Kurz Arbeit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회사 HR의 도움을 받아서 해당 기간동안 풀타임 근무를 했었다. 다른 동료들의 경우에는 업무상 필요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50%만 근무하고 원래 급여의 약 80% 정도를 받았는데, 다들 만족도가 너무 좋았다. 생각해보라, 일은 절반만 하는데 일한 것보다 더 받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50% 근무를 할 경우 회사에서는 50%의 급여만 지급하면 되지만, 정부가 나머지 50%에 대해서 60%를 별도로 지급을 해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80% 정도의 급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회사에서 신청만 하면 신속하게 처리되어 지급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신용" 기반으로 운영되다보니 한국보다 프로세스가 빠른 편이다)
내 이웃 사촌인 터키인 아이폰 개발자의 경우에는, 내년 초까지 전직원 대상으로 Kurz Arbeit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친구는 일을 아예 안해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60%만 받고 있다고 한다. 회사는 수익이 없어서 업무를 아예 안시키니 0%이고, 나머지 100%의 60%를 정부가 지급해주니 결과적으로는 고용은 유지 되면서 일은 안하지만 원 급여 60%의 수준 소득이 생기는 셈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는 상황일까. 그래서인지 본의아니게 Kurz Arbeit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게 억울하기는 하다. ㅎㅎ
또한, 회사 내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직접 접촉자 뿐만 아니라 감염이 우려되는 직원들도 스스로 격리 조치를 할 수 있다. 직접 접촉자는 코로나 테스트 결과가 나올때까지 격리가 의무이고, 그렇지 않아도 감염이 의심되어 자기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면 되는 것이다. (접촉으로부터 2주간) 내 경우에는 지난 3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재택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7월 이후부터는 일주일에 1회 이내로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해왔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한 각자가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점 또한 그저 훌륭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회사 HR팀에서는 이것 말고도 Corona-Warn앱을 모두 설치해서, 해당 앱이 감염 위험도가 높다고 경고를 하면 무조건 격리를 하라고 공지하고 있다. 연일 한국에 비해 많은 수의 확진자가 나오는 독일에 살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최대한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잘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감기 기운이 있어서 하루 병가를 내서 쉬고 있는데, 회사 동료들이 DM으로 "코로나 걸린거냐?"고 심각하게 물어본다. 아니라고 이놈들아. 그만좀 물어봐. ㅎㅎㅎ
아들내미가 드디어 2년간의 빌코멘 클라스를 졸업하고, 김나지움 정규 과정에 들어갔을때 학교 선생님들이 회의를 열었단다. 그리고는 앞으로 6개월간 우리 아들내미의 성적 중에 "독일어"와 연관된 과목의 점수는 반영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했다고 한다. 빌코멘 클라스를 2년 넘게 다녔고, 독일어 과외 선생님하고도 2년 가까이 수업을 해왔다고 해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독일어 실력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나름 학생에게 "공평한 조치"를 한 것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우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땡큐 베리 머치"였다. 독일에 오래 사신 분들께서 김나지움 정규과정에 들어가면 아마 처음 6개월간은 적응하는데 힘들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그랬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와서 갑자기 독일 중등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일단 독일어가 안되는 것도 문제지만 공부하는 방법도 틀리고 숙제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기초 체력이 약한 아들내미가 체육시간이 있는 날에는 초죽음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좋은 딸내미도 힘들긴 마찬가지인데, 독일 학교는 체육시간에 엄청나게 빡세게 운동을 시킨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우리 부부가 독일에 살면서 가장 놀란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일인들의 체력이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체력은 국력이다.
처음에는 아들내미의 독일어 숙제를 온가족이 다달라붙어서 도와줬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서술식 수학 문제를 이해하는것을 힘들어해서 얼른 독일 김나지움을 나온 한국 유학생 선생님을 찾아서 붙여주었다. 게다가 독일어만 배워도 힘든데, 영어는 물론 라틴어까지 해야되서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었다. 그렇게 한두달이 지나니 수학 과외 선생님 덕분에 수학 점수가 확 올라가고, 원래 소질이 있는 미술, 음악으로 학교에서 두드러지면서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제는 우리에게 쫓아와서 시험 점수 자랑하고 학교 숙제쯤은 혼자서 잘해가는 듯하다. 김나지움으로 와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키는 음악가분들에게 다시 첼로를 배우는 것이 좋은지, 5살때부터 지금까지 첼로를 배우면서 스스로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는 낯설은 모습이다. 아들내미가 힘들어할까봐 여전히 걱정이 많으신 빌코멘 클래스 선생님이 한국어 자격증을 취득해서 라틴어를 필수로 안하는 방법도 알려주셨기 때문에, 이 또한 지켜보다가 필요하면 시도를 해볼 계획이다. 참고로 김나지움의 수업량이나 숙제는 확실히 많은 편이며, 수시로 시험을 치르면서 평가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주2회 독일어 과외와 주1회 수학 과외만 하는데도 숙제하고 첼로 연습하는 시간이 빡빡할 정도이다.
딸내미는 아비투어 없이 미술대학 지원을 하고 있는데, 몇달전부터 독일어 자격증을 위해 훔볼트 어학원에서 토요일마다 온라인으로 독일어 공부를 따로 하고 있다. 다행히 교육 과정 스타일이 딸내미에게 잘 맞는 듯, 기대보다 열심히 독일어 공부를 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B1.1와 B1.2 과정을 수강해서 다음 과정인 B2.1 과정을 신청해야 하는데, B1.1 과정에 처음 신청할 때처럼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수강이 가능하다고 했다. 교과 운영자가 만일 그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다시 B1.2를 들어야 한다고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내년초에 대입을 위해 B2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라서 같은 과목을 다시 들을 시간은 없고, 만일 떨어진다면 다른 B2 교육 과정을 찾아야 한다고 솔직하게 답장을 보냈다. 지난 토요일에 딸내미는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해서 B1 테스트를 온라인으로 치뤘고, 이번 월요일에 결과가 나왔다. 아쉽게도 문법 점수 때문에 테스트에는 떨어졌지만, 과정 담당자하고 상의한 끝에 B2.1 과정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딸내미가 열심히 수업에 참석했던 점도 있고, 내년 입시 준비 이야기를 해서 나름 정상 참작을 해준 것 같지만 이또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 아이들의 킨더겔트로 월 50만원을 독일 정부로부터 받고 있었는데, 지난 9월에는 이와는 별도로도 애들 1명당 200유로씩 추가로, 10월에는 1명당 100유로씩 추가로 지급되었다. 그래서 9월에는 총 100만원을, 10월에는 총 75만원을 받은 셈이다. 코로나때문에 킨더겔트를 받는 가정에 추가 지원을 해준다더니 2달간 킨더겔트와는 별도로 아이들 1명당 300유로씩 지급해준 것이다. 1인당 월 5만원 정도했던 학생용 정기 교통권도 필요없게 1년전부터는 두아이의 학생용 교통카드로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 외에도, 한국에 비하면 독일어나 수학 과외비, 어학원 독일어 수업료가 저렴하고 마페 수업료도 절반도 안되기 때문에 교육비 부담이 훨씬 적다. 김나지움에서 음악가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악기 레슨을 받는 것도 월 30유로인데, 이것은 악기가 없는 아이들에 해당되며 자신의 악기를 들고 다니는 아들내미는 이보다 훨씬 적게 낸다. 한국에서 아이들 교육에 월 수백만원씩 지출을 하던 우리 부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국이라고 할수 밖에 없다.
전세계가 코로나로 수많은 위기를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시기에, "세입자/근로자/아이들"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이 되는 집주인,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는 회사,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학교. 여기에 뭘 더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