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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Mar 06. 2022

수능이나 아비없이 독일 대학 가기

드디어 딸내미가 베를린 국립미술대학에 합격한 기념으로 쓰는 글

정확히 4년전, 우리 가족은 급하게 독일 이민 준비에 바빴었다. 특히 우리 부부는 생전 처음 독일, 베를린을 방문하여 에이전트가 미리 컨택해놓은 집들을 보고 있었다. 집구하기가 직장 구하기보다 어렵다는 베를린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길에 에이전트로부터 제일 마지막에 보았던 집을 계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4년 동안 살고 있다.


딸내미가 초등학교 4학년때 미술을 전공을 하고 싶다고 해서 미술 입시의 길로 들어선지 벌써 10년째가 되었다. 어찌 보면 예원 입시를 준비하던 처음 3년이 가장 힘들기도 했지만, 딸내미에게 많은 성취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운좋게도 예원에 합격해서도 3년간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학업 스트레스 없이 다양한 미술 전공 활동을 하면서 나름 중학교 생활을 잘 즐겼던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입시 성적에 목매다는 학교 선생들이 늘 그렇듯이,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기보다는 쓸데없는 성적 때문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 아이들을 차별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게 한 덕분에 딸내미가 서울예고 입시에 일찌감치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학교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준 적이 없고,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꾸준히 찾아보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 있게 해왔었기에, 멍청한 선생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화가 나지만 차라리 일찌감치 그런 환경과 선생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탈출 시킬 수 있었다는데 의의를 둔다.


서울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딸내미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부부는 뭔가 대안을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을 할수 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예고 입시를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에 비하면 우리 딸내미는 여전히 공부에는 별다른 흥미나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기에 만일 이대로 예고에 입시에 합격을 하게 된다면, 그야 말로 진짜 불공평한 결과라고 나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술만은 여전히 열심히 해서 2학년 2학기, 3학년 1학기엔 미술과 내에서 미술 성적이 우수해서 상까지 받은 것이 위안이었다. 우리 부부 예상대로 예고 입시를 실패했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에게 남은 옵션은 많지 않았다. 애초에 공부엔 관심이 없기에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옵션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고졸 검정고시"를 본 다음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하나는 예고 입시에서 떨어진 다음 울고 있는 딸내미를 안아주면서 내가 "네가 원하는 건 모든 것을 다해줄께, 걱정하지마라"라고 약속했던 것처럼, 딸내미가 원하는 독일 유학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검정고시 학원을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독일 유학원, 마페 학원 등을 찾아다니며 어떤 방향이 맞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검정고시 학원은 우리 딸내미가 잘 적응할지 미지수였고, (딸내미는 학원 보다는 일대일 과외를 선호함, 하지만 효과는 별로임) 독일 유학원이나 마페 학원은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기에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보였다. 게다가 독일 교육 과정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을 찾아볼만한 것이 없어서 현장에서 부딪치며 알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어 보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 이전부터 독일에 블루카드를 이용하여 취업하고 영주권을 취득한 개발자분들의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독일로 가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회사 취업을 같이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했던 것처럼 평생 영어를 심각하게 공부해본적이 없는 중년 개발자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결국 아이들 교육을 위해 독일로 가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나서는, 신속하게 한국 자산을 처분하고 독일 이민을 위해 필요한 서류 준비에만 거의 한달을 꼬박 써야 했다. 어느날 갑자기 온가족이 독일로 간다는 소식에 양가 부모님은 물론 주위에 모든 분들이 당황해하는 사이, 낯선 독일을 향해 달랑 옷가지(지금 와서 보면 가져올 필요 없었던)와 맨몸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탑승을 했었다.


독일에 오고 싶다던 딸내미 뿐만 아니라,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독일로 끌려오게 된 아들내미에게 첫번째 해의 독일 학교 생활은 예상보다도 힘들었다. 둘다 독일어 기초만 간단히 배우고 온 터라, 독일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오로지 눈치만으로 학교 생활을 해야했고 한동안은 방황을 해야했다. 내가 독일 회사에 취업을 하고 영어/독일어를 배우며 독일 생활에 적응을 해야했던 것처럼, 아이들 역시 낯선 언어와 환경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에 적응을 해야했던 것이다. 그나마 빌코멘 클래스 2년 동안은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다닐수 있었지만, 빌코멘 클래스를 마치고 독일 정규 공교육 과정에 들어가서는 더 큰 도전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딸내미는 좋은 독일인 친구를 사귀게 되어 독일어는 물론 영어까지도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덕분에 우리 예상보다 빠르게 독일어 실력이 느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미술대학 입시를 위해서 훔볼트 온라인 과정을 수강하면서 TELC 독일어 B1, B2 시험 준비를 따로 했고, TELC 시험을 준비하면서 문법적인 부분에 대한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서 한국인 독일어 선생님에게 별도로 문법 과외를 받아 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빌코멘클래스 2년 + (독일 공교육 정규 과정 + 보충 수업) 2년을 통해서, 공식적으론 B2 수준이지만 대학교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독일어를 끌어올린 것 같다.


또다른 문제는 딸내미가 한국 입시 미술에만 익숙하다보니, 독일 미술대학에서 요구하는 스타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입시 미술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입시에만 사용되는 스타일과 공식이 있고, 자기의 개성을 담아서 표현하기보다는 주어진 과제를 정해진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다보니 스스로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익숙하다보니, 정작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을 해본적이 없던 것이다. 뒤돌아보면 한국에서 참으로 쓸데가 없는 교육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 희생을 한 것 같아서 허탈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딸내미에게는 독일어보다도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으리라고 본다. 독일에서 미술활동을 하는 마페선생님을 모셔서 2년반 정도 딸내미가 기존 스타일을 벗어나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보고자 노력을 했다. 선생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딸내미가 보고 느끼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려고 노력을 하셨지만, 그것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기도 하고 딸내미 역시 크게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무엇인가 가시적인 목표라도 있어야 집중을 할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을 해서 좋아하는 게임을 못하게 난생처음 노트북을 압수했고, 실패를 하더라도 상관없으니 계속 독일 입시에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5월 정도까지 영재 전형으로 지원이 가능한 독일의 대학들에 응시하고 마페를 접수하였다. 지난 2년 동안 계속 그려 온 그림들로 마페를 만들고, 각 대학에 지원하는 과정을 마페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딸내미가 직접 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조금은 본인도 배운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첫번째 입시에서는 한번도 마페 통과를 하지 못했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독일 입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의 대학 입시처럼 뭔가 일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대학마다 다른 스케쥴과 다른 전형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어떻게 준비를 해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를 않았는데 한번 경험해보니 어떻게 해야할지가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딸내미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시간도 생겼다. 함부르크 미대의 경우, 마페를 우편으로 보내서 접수하고 입시가 끝나면 다시 받아와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 나와 딸내미가 차를 타고 왕복 4시간 걸려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가진적이 없었는데, 운전하는 내내 딸내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왜 예고입시에 흥미를 잃었는지에 대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거지같은 선생들)



첫번째 입시를 마쳤고, 다시 몇개월간 다음 입시를 준비해야 했다. 이전 입시의 경험을 통해서 기존 마페선생님이 좋은 분이고 많은 도움을 주시기는 했지만, 독일 미대 입시에는 우리 부부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가 없는 점이 아쉬었다. 그래서 선생님께는 양해를 드리고 다음 입시를 위한 새로운 마페선생님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여러 마페선생님들과 첫번째 입시에서 만든 마페를 가지고 베라퉁을 하면서 가장 괜찮은 선생님을 찾아보았는데, 당연하게도 우리가 마음에 드는 선생님들과 딸내미가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 달랐다. 첫번째 입시에서 고생을 한만큼 당분간은 마음에 드는 선생님과 편하게 준비하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마음에 드는 선생님 대신 딸내미가 원하는 선생과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인터뷰때부터 와이프가 뭔가 4차원같다고 이야기했던 그 선생들은 우리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를 야기했고, 4~5개월간의 준비 상황을 체크하는 자리에서 의견 충돌(내가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음)이 있자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딸내미를 버리고 도망가버렸다. ㅎㅎㅎ 그동안 "독일 입시는 예술이다"면서 우리 딸내미를 엄청 위하는 듯 굴어놓고 말이다. 결국, 이전에 베라퉁을 했던 (우리 부부가 마음에 들었던) 선생님들께 다시 연락을 드려야 했고, 그 중에 한분의 선생님께서 다시 받아주기로 해서 뒤늦게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게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번 두번째 입시도 힘들겠구나 하고 큰 기대 없이 새로운 선생님과 입시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타이트하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예상보다 딸내미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극성스럽고 집요한 아빠 때문에 독일 공교육 과정을 진행하면서 TELC 독일어 시험도 준비하고, 동시에 미대 입시 준비까지 같이 해야하는 상황임에도 아주 잘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년말과 얼마전까지는 각각 3~4주 정도되는 프락티쿰까지 하는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었다. 지난 4년간 힘든 과정을 겪어왔던 만큼 지금쯤은 아주 작은 성취라도 있어야 딸내미 입장에서도 힘이 날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을것이라, 걱정이 많았었는데 그러한 피드백을 받으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렇게 충실하게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능 점수나 아비투어 없이 우리처럼 "영재전형"으로 지원을 하는 경우에는, 일반 지원이라면 70점만 넘어도 되는 것을 90점 이상을 훌쩍 넘어야 합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알고 있다. 그래서 이후에는 선생님과 딸내미에게 맡기고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2월말, 지난해 12월에 지원했던 베를린 국립미술대학에서 마페 통과 연락을 받았다! 우리 모두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딸내미가 신나서 그 소식을 전해주니 너무나 기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꼬박 1일간의 2차 시험을 치뤘고, 다음날 해당 학과 교수님과 30분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동안은 마페선생님과 온라인으로 수업을 했었는데, 이번 1일간의 숙제는 꽤나 빡센 것이라 베를린 반대쪽에 있는 선생님 화실에서 밤새 작업을 하고 새벽에 첫 에스반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인터뷰 시간이 4시반이었는데 새벽에 집에 돌아와서 4시쯤까지 잠을 잤고, 인터뷰 시간 내내 할아버지 교수님이 원래 보내준 질문지보다 더 많은 질문을 깊이 있게 질문해서 답하느라 힘들었단다. 겨우 2차 시험과 인터뷰를 한번 본 정도인데 내가 독일에서 회사 취업을 하던 것보다 더 힘들다보니, 앞으로 이것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할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마페선생님이 넌즈시 말씀하시길, 결과물이 잘나왔고 야식을 너무 잘먹어서 놀랐단다. ㅎㅎㅎ 그래도 선생님과 우리 부부는 결과 나올때까지 잊고 다음 준비를 계속 진행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 후 약 2~3주 후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불과 일주일이 지난 다음, 학교에 간 딸내미로 부터 카톡이 왔다.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4년전 이맘때쯤부터 우리 가족이 급하게 독일로 이민을 오게 된 목적이 드디어 달성이 된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소식이었는데, 막상 합격을 했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최소한 한두해는 더 입시를 치뤄야 할 것이라고 각오를 했던터라 한편으론 허탈하기까지 했다. 정신이 조금 들자, 얼른 양가 부모님께 카톡을 날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질을 했다. 드디어 우리 딸내미가 베를린의 국립미술대학에 합격했다고 말이다. 딸내미가 받은 합격 이메일을 보니, 특히 평가에 대한 문장이 눈에 들어 왔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Das Gesamturteil lautet: Besonders geeignet


지금 딸내미는 압수 당했던 노트북을 다시 돌려받고, 기존에 하던 게임들을 모두 업데이트하고 이전에 같이 게임을 즐기던 친구들과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다. 지난 4년간 함께 고생한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사하고, 본인이 원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쉽지 않았던 낯선 곳에서의 큰 도전을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해온 딸내미에게 감사한다. 애초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훌륭하게 해왔고, 그 사이에 부쩍 성장한 너의 모습이 무척 자랑스럽다. 앞으론 아빠와 쇼핑이나 신나게 다니자꾸나. 올 여름에는 엄마와 둘이 한국에 다녀올 수 있도록 비행기표도 예약해주마. 누나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15세 김나지움 8학년인 아들내미 왈.

"다음은 내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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