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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다임 May 15. 2023

고통 속 몸부림, 중환자실 탈출기

생명수 배달 완료

고통 속 몸부림, 중환자실 탈출기

24시간이 48시간이 되는 말 한마디



재수술 전화를 받고 다시 가던 택시 안,

또다시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나이스한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냉기가 감도는 집도의 선생님과는 사뭇 다른 따뜻한 의사 선생님이다.)


의사)

" 보호자님, 병원 안 오셔도 돼요. 걱정 많으셨죠? 극적으로 출혈 멈췄어요! "


" 그럼 수술 다시 안 하는 거 맞나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


" 보통 심장 수술 후 출혈확인을 위해 하는 재수술은 심장을 다시 꺼내는 수술이 아니니까 위험한 건 아니에요 아무튼 출혈이 어느 정도 잡히고 있으니 집에서 대기하세요 "


"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





일산으로 가던 택시를 다시 돌려 집으로 갔다.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며 죄송합니다 사과의 말씀을 드리니 통화내용을 들으셨던 건지 정말 따뜻하게 괜찮다며 말씀해 주셨다. 평소라면 별거 아닌 말 한마디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다시 재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꽤 긍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던 모양이다.


이렇게 어쨌든 1월 26일 수술은 종료되었다. 


그렇지만 보호자인 나와 모든 가족들은 중환자실에서 또 전화가 걸려올까 두려움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 간밤에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1월 27일 오전 11시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간호사)

" 보호자님~ 환자분 의식 돌아오셔서 깨어나셨어요. 보호자님이랑 통화하고 싶으시다는데 바꿔드릴까요? "


나: " 네!! 바꿔주세요!! "


남편: " 나 목말라.. 토레타 먹고 싶어 "


나: " 응? 토레타? 음료수???? "


남편: " 등이 너무 아파 "





호흡기를 떼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개미 목소리 같아 대화가 잘 되진 않았지만 선명하게 반복하며 말한 게 토레타 음료수를 먹고 싶다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의식이 돌아오고 흰 죽과 토레타 음료수가 한병나왔는데 너무 목이 마른 상태에서 마신 저 토레타 음료수가 생명수 같았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토레타 많이 사 오라며 노래 불렀던 남편


통화를 끝내고 마트에서 토레타를 10병 정도 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 매점에도 파는 걸 굳이 1시간 거리의 집에서부터 싸들고 갔다. 

다시 태어난 축하 선물로 토레타 10병이라니 소소하지만 그에겐 엄청 귀한 생명수와 같으니 만족했을 것이다.



당연히 중환자실에서 하루가 지나면 일반병동으로 옮기는 줄 알았다. 

의식이 돌아왔으니 당연히 거기 있을 필요가 있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더 있어야 했다.


" 수술 때 나타난 부정맥과 심장 기능 확인을 위해 중환자실에서 하루정도 더 있다가 옮기시죠 "


수술 중 생겼던 위험한 상황들 때문에 의사 선생님도 불안하셨던지 하루 더 지켜보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수술 전 24시간이었던 중환자실 생활이 48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남편은 또다시 전화를 걸어와 나에게 말했다.


" 일반병동으로 빨리 가고 싶어 "


중환자실은 워낙 응급환자들이 많다 보니 환자 하나하나 케어를 해줄 수 없는 환경이다.

따라서 목이 무척 마르고 등이 너무 아프지만 남편을 도와줄 수 있는 간호사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침대의 등받이 조절하는 것 마저 어렵게 요청했는데 간호사의 신경질적인 응대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술 후 고통이 더 크기에 감정의 표출은 그저 사치일 뿐.. 생명을 살려주는 고마운 분들이니 아무 말 못 했다고 한다.



중환자실과 연락했던 나의 통화기록들



1월 28일 오전에는 드디어 중환자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컨펌을 받았다.

아침 일찍 사두었던 토레타와 캐리어를 끌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동으로 옮기는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빨리 나오고 싶다는 남편의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혹 보호자인 내가 조금이라도 재촉하면 1분이라도 빨리 옮겨주진 않을까 싶어 그냥 빨리 갔다. 


조금 기대하긴 했지만 현실은 역시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고 무한 대기했다.

의사 선생님이 마지막 체크하고 오케이 해야 옮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간호사들도 기다리던 나를 안쓰럽게 힐끗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환자실 문 앞에서 어슬렁 거리며 두 손 모아 남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간호사들 입장에서는 참 유난 떠는 보호자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렇게 할 것 같다. 

그 상황에서 간절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드디어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그가 나왔다. 탈출 성공!

그는 침대에 눕지 못하고 앉아서 나왔다. 등이 너무 아파 누울 수 없다고 했다.

의식이 돌아오고 밤새 앉아 있었다고 했다. 당연히 먹지도 못하고 잠을 자지도 못 한 상태였다. 



그렇게 그는 8개의 링거, 3개의 배액관을 달고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일반병동으로 옮기는 순간, 나는 보호자로 24시간 그를 간호하는 간병인이 되었다.




다음편)

내가 할 수 있는 것 [1편] - 보호자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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