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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May 04. 2022

노란 프리지아와 빨간 장미와 하얀 안개꽃다발 3

20220504 세가지 이야기 중 마지막 이야기

친구가 죽은 것도, 친구의 장례식을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대학 동기 오빠를 잃은 일은 두 차례 있었지만 한 번은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여서 친구들이 한참 뒤에 소식을 알려주었고 한 번은 장례 없이 보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그저께는 친구의 아버지 영정사진이 있던 자리에 놓인 친구의 얼굴을 보는데 마음이 낯설었다. 옆에 선 친구가 울기 시작했는데 나는 슬픈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상황과 주변의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묵념한 뒤 사진 속 ㅇ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국화꽃이 가득 놓인 단상 위에 어젯밤 캐비닛 안에서 찾은 ㅇ의 사진 두 장을 올려놓았다. 같이 찍혀있는 친구의 얘기론 해병대에 면회 갔을 때 찍은 사진이라는데 간 적 없는 내가 왜 가지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ㅇ과 깊게 친했던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 중에 고르라면 나는 후자였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고 놀라 어색한 사이 정도는 아니었고 친한 친구가 겹쳐서 소식을 자주 전해 듣기도 몇 년 전에 통화를 하며 다 함께 만나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실감이 나지 않는 걸까. 늘 전해 듣는 소식 속에 있던 친구라서. 언젠가 또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대학 동기 몇몇이 모여 앉아 ㅇ의 이야기를 하다가 오랜만에 보는 동기가 오면 같은 얘기를 또 하고 또 다른 동기가 와서 앉으면 같은 얘기를 또 했다. 같은 얘기를 하다 보면 새로운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ㅇ의 얘기인가 하면 다른 이야기였고 다른 얘기인가 하면 ㅇ의 이야기로 종결되기도 했다.

“아, 그 새끼-”로 시작되는 동기들의 안타까움과 애달픔과 먼저 가버린 것에 대한 원망이 뒤섞인 이야기들 속에 내가 있기도, 없기도 했다. 아마도 한동안 ㅇ의 얘기를 안부처럼 묻게 되겠지. 그리고 우리는 지난 추억 속에서 또 다른 얘기를 꺼내어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할 것이다. 그 사이 장례식장 식당의 테이블 옆에 세워놓은 모니터에서 ㅇ의 사진이 반복재생 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ㅇ을 매개로 우리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쏟아냈던 것 같다. 각자 가족이 생기고 일이 바쁘고 멀리 이사를 하고 역병이 돌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혹은 그 친구들과 함께했던 이십 대 시절이 꽤 그리웠는지도.          


사진 속 친구에게 잘가라고 그 곳에선 아프지 말고 더 신나게 살라고 뻔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여전히 저 단상 위에 놓인 친구의 사진이 낯설어서 다른 마땅한 작별 인삿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틀 후, 경찰관으로부터 뺑소니 가해자로 추정되는 몇몇 차량의 신원을 확보했다는 연락이 왔다.

경찰은 나에게 관리사무소에 방문해서 씨씨티비 화면을 확인하고 몇몇 중 확실한 가해자를 가려보라고 요구했는데 관리사무소에서는 개인정보법을 운운하며 경찰이 입회하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경찰과 관리사무소 사이에 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커피셔틀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관리사무소 아저씨들께서 씨씨티비 화면을 보며 확실한 가해자를 가리는 동안 경찰이 다시 왔다. 관리사무소의 빡빡함에 대해 불평하고 법적으로 되는 건데 왜 그러러는 거냐, 서럽다, 힘들다 등을 하소연하는 경찰에게 스타벅스에서 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려드렸다. 경찰은 받으면 안 되는데 라고 하며 본인이 다시 왔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계시라고 했다. 아시겠지만, 뺑소니 사고의 피해자는 나다.     


몇 시간 후 결국 관리사무소 아저씨들이 가려낸 가해자의 남편 연락처를 경찰로부터 건네받았다. 이제 자기 일은 끝났으니 두 분이 합의하시고 결과만 알려 달라고 하며 커피값을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커피를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가해자가 아니라 남편이랑 연락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다음 날 오전에 가해자의 남편에게 전화했다.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한가지 변명을 하자면 와이프의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와이프가 정신이 없었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짜증나고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해결하며 사과를 받고 싶지도 가해자와 통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온갖 말이 맴돌았다.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보험처리를 하기로 하고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돌아왔는데 가해자의 남편으로부터 사고 일시를 묻는 문자가 왔다.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사고를 낸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난 왜 이런 사람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 왜 배려했지? 하는 생각에 속이 부글거려서 긴 답문을 보냈다.     


사고일시는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경찰에게 전해 듣지 못했어요.

사모님께 여쭤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똑같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었던 시간에

저는 제가 내지도 않은 사고로

평생 갈 일 없어야 할 경찰서 뺑소니전담반에 가서

소리지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조서를 쓰고 주차장 그림을 그렸어요.

경찰서에서 오는 전화를 십여통 받으며

바쁘게 관리사무실을 들락거렸고요.

그 사이 저희 아이는 집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전화 한 통이었으면

이 모든 귀찮고 괴롭고 번거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안타깝네요.

구차하여 드리지 않으려던 얘기였는데

사고경위에 대한 말씀을 듣고 나니 더 속이 상해서 말씀드립니다.

사모님께 전달 부탁 드려요.     


곧바로 가해자의 남편에게 답문이 왔다.     


네, 안일한 대처로 불편함 드려 죄송하고 전달하겠습니다.     


끝.


안일하다니, 불법을 저질러놓고 그저 안일했다니.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싸울 의지도 사그라들었다. 어떤 일 앞에서 사람이 무력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됐다. 끝. 치우자.


이렇게 마음 먹고 핸드폰을 내려 놓자 울고 싶어 졌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행복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전혀 즐겁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서 마음이 답답한데 그래서 울고 싶었는데 울어지지가 않았다. 혼자 있는데 슬플 때 힘들 때 어떻게 우는 거더라?



나를 울게 한 건, 친구의 영정사진도 다른 이들의 눈물도 다독임도 위로도 따듯한 눈빛도 아니고 몇 달째 일이 바빠 일주일에 하루 겨우 집에 들어와 쪽잠만 자고 나가던 남편의 다 끝났다는 말이었다. 끝나지 않았는데 정말 다 끝난 거 같았다. 나는 전화기 너머 남편에게 내가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말하면서 울었다. 그동안 화낼 사람이 없어서 분풀이할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던 것처럼. 미친년처럼 남편에게 쏟아내고도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울었다. 이렇게 서럽게 운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친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고, 떠나간 모두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차는 아직 공장에 있다. 하지만 차는 곧 돌아온다. 남편 역시 오랫동안 준비해오던 일을 마무리했지만, 오늘은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 하지만 내일이면 돌아올 것이다.


일주일이 흘렀다. 일주일 안에 소화하기 어려웠던 여러 일들과 맞닥뜨렸지만, 남편의 말처럼 끝나간다. 그리고 블랙홀처럼 내 모든 것을 빨아들였던 이 시간도 흘러가 버릴 것이다.     


길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글을 썼다.

이렇게 긴 글을 쓴 것도 오랜만이고, 쓴 글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공개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냥 어떤 말이든 누구에게든 쏟아내고 싶었던 거 같다. 힘들어 죽을 뻔했으니까 알아줘도 아니고 그냥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는데 이런 일이랑 저런 일이 같이 생기기도 하더라. 그런데 그냥 살아져.

글을 쓰고 공개하기 위해 용기를 낼 필요도 없었던 건, 그냥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금방 잊혀지고 흘러갈 글이다. 그러니까 엉망진창이어도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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