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아직 몰랐으면 하는
제육볶음을 먹었다. 술 없이.
신김치를 썰어 참기름에 볶다가 돼지 목심살을 넣어 볶은 돼지김치볶음을 저녁 반찬으로 먹었다. 반주 한 잔 없이.
재작년에 담가 먹기 알맞게 묵은 신김치를 쫑쫑 썰어 국산 참깨를 전통방식으로 짜낸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넓은 사육공간에서 우리 보리를 먹여 키운 돼지 목심살을 한 입 크기로 잘라 넣고 김치 양념이 쏙 배어들도록 팬을 흔들며 볶아 만든 돼지목살묵은지볶음을 잡곡밥과 함께 상추에 싸서 저녁식사로 먹었다. 맥주도 소주도 와인도 막걸리도 꺼내지 않았다.
당연하다. 난 무려 일 년 하고 삼 개월 하고도 이십칠 일 전에 술을 끊었으니까.
일 년 삼 개월 이십팔 일 전에 마신 술을 기억한다.
라 띠따 라는 이름의 캔와인이었다. 정확한 풀네임은 라 띠따 띤또 데 베라노 레몬(LA TITA WINE COCKTAILS TINTO DE VERANO LIMON).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네 캔에 만원을 주고 산 와인이었다. 적당히 달고 꽤나 청량하고 와인이 마시고 싶은데 병을 오픈하기엔 부담스러울 때 가볍게 마시기에 좋아서 종종 사 마셨다. 아이를 재우고 밤 열 시 넘어 미드 하우스의 시즌 8에 5화를 보며 들이킨 라 띠따가 금주 전 나의 마지막 술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날 밤에 본 하우스가 떠올랐다. 퍼킹 브래스트 캔서.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나는 이제 마트 카트에 맥주를 담는 대신 쿠팡으로 플레인 탄산수 20병 들이 한 상자를 주문한다.
믿을 수 없었던 암 진단은 어느새 재작년의 일이 되었다.
9월에 진단을 받고 10월에 수술을 하고 12월에는 스물 한 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최소 5년간 복용해야 하는 항암제를 먹기 시작했고 한 달에 한 번은 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는다.
꽤 긴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일 년. 앞으로 사 년이라는 치료기간이 남아 있다.
사 년 뒤에는 완치 판정을 받고 찬바람 부는 날에는 감자탕에 소주를, 더운 여름날 밤에는 목구멍 따갑게 시원한 맥주를, 비 오는 날에는 지지미에 막걸리를, 가을밤에는 와인을 마실 수 있을까?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퇴원 후 외래 진료 때 만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알콜 맥주요? 당연히 드셔도 되죠. 실컷 드세요. 술도 너무 마시고 싶어서 괴로우면 어쩌다 한 번 한 잔 정도는 괜찮아요. 그런데 이런 질문하시는 환자 분들은 대부분 한 잔으로 못 끝내시더라고요. 그리고 질병에 대한 예의라는 게 있으니까. 2년 정도는 좀 참아봐요.
질병에 대한 예의라니.
지는 나한테 무슨 예의를 갖췄다고 내가 암세포 따위에게 예의까지 갖춰야 하나. 교수님은 무슨 임성한 작가 친구라도 되는가. 속으로 삐딱한 생각을 했지만 교수님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바뀌면 조용히 일어나 잠든 아이 방 문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야채칸 뒤쪽에 깊숙이 있는 맥주를 잡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 대파와 상추와 브로콜리를 정글 헤치듯 지났다. 냉기를 가득 머금은 맥주가 손 끝에 닿자 손가락 끝부터 등줄기까지 순식간에 섬찟해졌다. 아이 방문에서 최대한 멀어져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섰다. 우리 집과 기역 자로 붙은 옆 동 거실에서 틀어놓은 티비의 파란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 거실 가구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난파선 실루엣처럼 보였다. 음소거를 유지하기 위해 손가락에 힘주어 천천히 손잡이를 들어 올렸지만 적막을 깨며 캔을 따는 소리는 통쾌했고 갓 공기와 만난 기포들이 터지는 소리는 화려했다.
시원한 목 넘김과 그 후에 찾아오던 해방감.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금주를 한 지 일 년이 넘었다.
나는 아직도 밤에 마시는 한 잔 술을 대체할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너는 내일 지구가 망해서 오늘 마지막 만찬을 먹어야 한다면 뭘 먹을래?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시원한 생맥주를 벌컥벌컥 마실 거야.
바야흐로 상실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