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식 Jan 20. 2024

긴 행군의 서막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무서운

혹시 이건 고기 냄새인가? 누가 고기를 구웠는가?     


저녁 반찬으로 삼겹살을 굽고 있는데 궁예가, 아니 궁예 흉내를 내는 아이가 다가온다.

기름 튀어서 위험하니까 오지 말라고 하는데 굳이 옆에 붙어서는

근데 엄마 그저께 삼겹살 먹었는데 또 먹어도 되나? 좀 걱정되는데? 하길래,

채소를 잔뜩 꺼내서 같이 볶아 줬다.     


사실 아이가 먼저 저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채소를 볶을 참이었는데, 먼저 말해줘서 땡큐는 무슨 그냥 주는 대로 먹었으면 좋겠다.

나물밥 주면 왜 고기는 없냐고 하고, 고기 적당히 주면 왜 이렇게 고기가 적냐고 하고, 만날 고기 타령을 하는 육식주의자께서 맥락 없이 건강 걱정이라니. 언제부턴가 밥 할 때마다 옆에 와서 슬그머니 들여다보고 메뉴 선정에 참견하는데, 영 부담스럽다.

     

2주간 진행된 아이의 겨울 캠프가 끝났다. 다음 주부터는 진짜 6주간의 방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돌면 밥, 돌면 밥, 돌면 밥의 행진이다.     


내내 긴 행군이 될 겨울방학을 위한 보상을 선 적립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던 추억의 식당에서 냉면을 먹고,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보고, 궁금했던 카페도 가보고, 혼자 서점도 가고, 마음의 고향 대학로에서 소울푸드 떡볶이까지 야무지게 먹고 귀가했다. 그런데 하루치 보상이 반나절 만에 소멸하다니, 이상하지? 아무래도 내일은 내일 치 보상이 필요할 것 같다.


수다쟁이 어린이가 딱 붙어 있는 게 문제긴 한데.


작가의 이전글 굳이 숨길 것도 떠벌일 것도 아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