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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Jan 16. 2024

세스

전분물 풀다 이건 아니지 않니

아이를 언제까지나 내 품 안에서 키울 수는 없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아이일 수는 없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는 빠르게 자라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될 테고 호기심을 가질 테고 탐구할 테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언제까지나 내 아이일 것이다.

그 중심에 내가 있지 않더라도.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엄마 세스가 뭐야? 하고 물었다.

세스? 하고 되묻는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과 대답이 스쳐갔다.



- 응. 세스. 6학년 누나가 이상한 얘기 한다고 형이 얘기하는 게 옆에서 들렸는데 나한테는 무슨 뜻인지 안 가르쳐줘. 나중에 보건실에서 배울 거래!

- 네가 생각하기엔 뭔 거 같은데?

- 잘 모르겠는데 형이 내가 말한 건 아니래.

- 뭐라고 말했는데?

- 약간 남성 여성 그런 성 같은 거 같아서 남의 몸 막 만지고 그런 거냐고 물어봤더니 그런 거 아니래. 그게 뭐야, 엄마?



그게 뭔지 아는데,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형누나들이랑 섞여 있는 곳에 보내지 말 걸 생각했다.


세스? 그게 뭔데? 엄마도 모르는 말인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세스라는 잘못된 뉘앙스만으로도 그 단어가 가진 묘한 느낌을 아는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신기하게도 어른들이 감추려고 할수록 더 커지는 궁금증으로 국민학교 때 국어사전으로 섹스라는 단어를  찾아본 적이 있는 나는 비로소 그 단어에 대해 아이에게 털어놓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 누나 있는 곳에 보내지 말 걸 하고 생각해 봐야, 형누나가 있어서 또래보다 습득이 빠른 친구한테 듣게 될 수도 있는 일이고, 형누나한테 잘못된 경로나 설명으로 알게 되는 것보다야, 엄마아빠에게 배우는 것이 당연히 훨씬 낫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곧 이런 날이 올 줄도 알았다. 다만, 오늘 이 시간, 탕수육 반죽을 하고 전분물을 만들다가 섹스를 설명하게 될 줄 몰랐을 뿐. 닭안심에 전분반죽을 고루 입히던 위생장갑을 벗고 어색한 티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말했다.



- 세스가 아니고 섹스 말하는 것 같은데?

- 섹스? 섹스가 뭔데?

- 음. 쉽게 말해서 어른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서 하는 짝짓기 같은 거야.



짝짓기라니! 짝짓기라니! 나야, 그게 최선이었니? 이런 날을 대비해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 강의도 듣고 스웨덴 유치원 성교육 책도 읽고 유튜브 동영상도 봤는데! 이 날을 위해 준비했던 온갖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는데 내가 고른 게 결국 ‘짝짓기’라니!



- 에에? 짝짓기? 근데 그게 왜 이상한 거야? 그럼 엄마랑 아빠도 섹스해서 나를 낳은 거잖아!



아이가 내가 고르고 고른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하고, 조금도 틀림이 없는 정답을 얘기하는데, 그 말소리의 파동으로 뇌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맞긴 맞는데, 아닌 거 아닌데, 이게 맞는 건가. 갑자기 남편이 보고 싶었다.



- 맞지. 그 형이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섹스는 이상한 게 아니야, 절대로. 하지만 반드시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거야. 아기가 생길 수도 있는 큰 책임이 따르거든. 엄마는 어린이들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이상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좀 위험한 거 같아.



두루뭉술하게 얘기해 버렸다. 대충 뭉개어서 알맹이는 빼고 얘기해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호기심이 충족되었는지 별 것도 아니었다는 듯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혼돈에 휩싸인 건, 탕수육을 만들다가 만 나뿐이었다.


이게 끝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짝짓기를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는 설명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을 위해 남자가 챙겨 다녀야 할 것을 쥐어줘야 하는 날도 오겠지. 나는 그날을 위해 또 강의를 듣고 책을 읽겠지만, 오늘처럼 렉 걸린 로봇 같을 지도 모른다.


다만 그 시간을 전분물 풀다 맞이하게 되지는 않기를.

부디 그날에는 남편이 집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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