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식 Feb 09. 2024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어쩌다 우울을 조금 털고 일어나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내가 조금 대견해져서

다음에도 나의 대견함을 스스로 느껴보고자 기록해 본다.

물론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반은 벗어난 거나 다름없다.

보통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니까.


1. 씻기: 옷 벗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지만.

2. 침대에서 벗어나기: 이불 밖은 너무 춥고 위험하지만.

3. 책 5페이지 이상 읽기: 5페이지나 읽을 수 있는 재미를 못 느끼지만.

4. 나가서 걷기: 신발장이 너무 멀리 있지만.

5. 커피 마시기: 충분히 맛있는 커피를 찾을 수 없지만.

6. 친구 만나기: 시간 맞는 친구 찾기가 너무 번거롭지만.

7. 맛있고 건강한 식사 하기: 내가 차려야 하지만.

8. 글 쓰기: 만족하기 어렵지만.

9. 정해놓은 하루 루틴을 모두 마치기: 내 맘대로 되지는 않지만.

- 영어공부, 식단 기록, 독서, 일기 작성, 플랭크.

10. 운동하기: 헬스장 문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지만. 운동복이 어딨 더라.

11. 우울하다고 말하기: 목구멍에 걸린, 순서를 잃은 말들은 나올 생각을 않지만.

12. 여행 가기: 못 가는 현실을 자각하면 더 우울해지지만.

마지막.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기억하기: 숨 쉬는 만큼 잊는 속도도 빠르지만.


내겐 언제나 나에게 받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주는 소중한 아이가 있고, 내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고, 오랫동안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멋진 친구들과  멀리서 소식 없음으로 응원을 전하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병을 얻기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고,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란 기대도 하지 않지만, 우울에서는 벗어나면 조금은 더 사는 게 즐거워질 수도.

작가의 이전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