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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심플 Jul 05. 2021

등산의 맛

정상에서의 아이스크림


회사를 다니며 웬만한 일들은 묵묵히 하는 편이지만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빼려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등산이다.


단합이랑 등산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헉헉 대기도 바쁜데 속도를 맞춰야 하질 않나,

그 와중에 중간중간 대화도 해야 하지 않나,

끝나고 난 뒤 회식으로 마무리를 하는 등

싫어하는 요건은 다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지금 회사는 9시~6시를 지켜야 하는 서비스업이라 등산을 가는 일은 드물지만 그래도 종종 단합을 위한 체육시간이 주어지면 농담으로라도 등산이 나와 필사적으로 정색하곤 했다.


이처럼 등산을 워낙 싫어하는 터라

남은 평생 내가 자의적으로 등산을 하는 날이 있겠나 싶었는데,

세상에나, 그날이 정말 와버렸다.




때는 6월 즈음,

한창 따릉이에 빠져 열심히 타던 나는

운동을 하는 스스로에 취해버리고야 말았다.


'크- 이거 완전 생활체육인 아닌가?'


마침 한사랑산악회라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보던 나는 문득 스스로를 과대평가해버린다.


'나도 등산 잘할 것 같은데?'


그렇게 등산할 산을 찾다 해발 293m가량의 낮은 대모산을 선택했다.


'뒷산 가는 건데 등산화랑 등산복은 오버 아닌가?'


이렇게 또다시 큰 착각을 한 나는 일반 티셔츠에 운동화, 심지어 바지는 슬랙스를 입고 산에 오르기 되는데....



등산이 거의 처음이었던 터라 길을 찾는 법도 몰랐기에, 무작정 발자국 나있는 데로 걷다가 길을 잃어 GPS를 이용해 정상으로 가다 보니 너무 가팔라 마지막엔 정말 네 발로 산을 올랐다.


더워서 옷은 옷대로 땀에 젖고, 전날 비가 온 터라 신발도 진흙에 엉망이 되는 등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같이 갔던 친구는 힘들어도 자연풍경을 보니 힐링된다고 했지만 자연이고 나발이고 숨 고르기에 바쁘던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겨우겨우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뿌듯함도 잠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였다.



당시의 마음 같아서는 1개에 3천 원이었어도 사 먹었겠지만,

1,500원을 지불하고 멜론맛을 집었다.


정상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이란!

무거운데 들고 올라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아이스크림 아저씨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맛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당 충전 후 하산하여 막걸리와 편육으로 마무리한 뒤, '다음에는 청계산 가자!'라고 약속했만...

나도 친구도 먼저 말은 꺼내지 않고 있다.


2번째 등산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등산(아이스크림 미포함 시) 재미 ⭐

등산(아이스크림 포함 시) 재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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