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하면서 책 보지 말랬지? 너 엄마가 아침마다 똑같은 얘기를 몇 번을 해야 들을 건데?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칫솔을 물고 있지 말고, 이를 닦으라고~ 칫솔을 그렇게 씹어대면 이가 상한다니까!"
매일 똑같은 잔소리 지겨울 법도 한데 어쩐 일인지 아들은 AI처럼 매일 같은 행동으로 나에게 혼이 난다. 등교하기 전에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고 잔소리도 하고 싶지 않은데...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이빨로 입술을 깨물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누그려뜨린다.
아침에 눈뜨면 책상 앞에 서서 책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아들이 처음에는 대견하고 기특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씻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뒷전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넋 놓고 세상 일에 전혀 관심 없는 한량 같은 모습에 내 속은 점점 뒤집어졌다.
"야~ 너는 별 걱정을 다 한다. 책을 읽기만 한다면야 뭐가 걱정이라고, 안 읽는 게 문제지." 친구나 언니들은 하나같이 무슨 걱정이냐며 부럽다고 하는데,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책을 보는 아들이 대견했다.
아들이 5학년이 되어 신학기에 아들의 담임과 상담 전화를 했을 때였다. 선생님은 아들이 학교에서도 책을 참 많이 읽는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도 늘 책을 읽고 있어서 독서 습관이 좋다며 칭찬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어도 그걸 잘 모른다거나,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책에 빠져있어서 선생님이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학교생활에도 문제가 없고 친구들과도 문제는 전혀 없다고 했다. 되려 운동도 좋아하고 친구도 많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 인형은 마음속에서 점점 더 크기를 불려갔다.
남편에게 아들의 담임과 상담한 내용을 얘기했더니 남편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깔깔깔 웃어댔다.
"야, 네 아들이 누굴 닮았겠냐? 딱~ 너네. 너 집에서 그렇잖아. 방에 들어가면 대체 뭘 하는지 꼼짝도 안 하고 너 할 일만 하지. 누가 부르기 전까지는 주변에 관심도 없지. 모전자전이지 뭐야."
"테레비 그만 보고 학교 가!"
8살의 나는 책가방을 메고 마당에 서서 방에 켜진 tv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내게 부엌에서 엄마가 또다시 소리쳤다.
"너 그러다 학교 늦는다고야. 빨리 학교 안 가냐!"
[뽀뽀뽀]가 끝나면 [딩동댕 유치원]까지 다 챙겨 보고 나서야 겨우 학교로 발길을 돌렸던 나였다. 엄마는 매일 아침 나에게 똑같은 잔소리를 해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로 엄마에게 혼이 났다.
그게 나였다.
그리고 나는 나와 똑같은 아들을 낳았다.
왜 몰랐을까?
나를 참 많이도 닮아버린 아들을.
어쩌면 아들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을까? 세상 누구도 아들을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이해해 줬어야 했다.
아들의 모습에서 30년 전 나를 본다. 과거의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잔소리를 이제 내가 나의 아들에게 한다.
인생은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