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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솔 Nov 08. 2021

형식을 챙기는 일

어쩌다가 형식을 챙기는 일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법인을 설립하는 일(주식회사, 사단법인,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의 경영공시를 하는 일(간단한 건이기는 했다), 기부금지정단체를 등록하는 일, 사단법인의 총회를 열고 진행하는 일, 무슨 인증을 받는 일 등등.


시작은 2017년 정도였다. 형식을 챙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아마 많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부류와, 손대지 않고 싶어하는 부류가 있지 않으려나 생각하다가,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이 뒷받침되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부류도 있겠다.


형식을 챙기는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거나 피곤해진다. 그래서 제일 좋은 건, 해야 하는 바로 그 때에 제대로 해두는 것이다. 다만 그 “제대로”라는 것을 정하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한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피곤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히스토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슈를 아는 사람과,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뀔 수 있다. 복잡한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이 해둘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히스토리를 문서로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무고개 하듯, 탐정놀이 하는 작업을 여러 명이 여러 번에 걸쳐서 하게 된다. 알아내려고 하더라도 부분만 알아내고 전체를 모르면,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모를 수 있다.


형식에 관하여는, 왠만한 경우에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끈질기게, 그리고 충실하게 챙기면, 그래도 마무리가 된다. 우직함이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형식을 챙기는 일을 여러 번 하면서, 나에게서 소같은 우직함 같은 걸 발견했다.


이번에 챙기게 된 형식은, 소같이 우직한 나에게도 참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여러 사람이 얽혀있고, 규정의 층위가 병렬되어 있고, 시간의 요인까지 복잡하다. 나의 결정 권한의 범위도 고려해야 한다. 잘 처리할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려운 케이스다.


형식을 챙기는 일에 있어서, 심적으로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그 일이 별로 가치있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일을 했다고 뭔가 성취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잘못 처리됐을 때, 누가 잘못 처리했다는 오명만 남는다. 가치있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유약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잘 처리해보려고 노력할 생각인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형식을 챙기는 일을 하다보면, 쌓이는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경우에 대한 질문을 미리 던지게 되는 것 같다. 정보에 대한 민감성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특정 정보(예를 들면 인감증명서의 발급일자)에 따라서 한 사람이 서류를 떼러 어디를 다시 다녀와야 하는 여파가 생기고, 그 사람에게 그 서류를 떼어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어떤 경우에는, 그 서류를 떼어달라고, 누구를 통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령도 생긴다. 누가 움직이게 하려면 누가 이야기하면 좋다…는 류의 정보가 요긴하다는 류의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얽히고 얽혀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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