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너를 만난 날
찰리: 브라운 컬러의 카바푸(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 + 푸들), 9.5kg, 두 번 파양 된 아픈 상처가 있다.
나: 찰리 보호자, 30대 여성, 잡지사 에디터, 독립한 지 10개월 차 1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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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구 쵸코)는 내가 세 번째 주인이다. 만 2세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보호자가 세 번이나 바뀐 사연 많은 강아지다. 찰리의 첫 번째 주인은 사업을 하느라 바빠 찰리가 6개월 됐을 때 파양했다고 한다. 두 번째 주인은 아들과 함께 찰리를 키우고 있던 40대(?) 여성인데 아들이 군대를 가야 하고 혼자서는 찰리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어 파양 한다고 했다. 그렇게 찰리는 내게 왔다.
찰리를 보러 가기로 한 날, 두 번째 주인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전 11시 약속이었지만 하루전날 내가 연락을 하지 않아 약속이 취소된 줄 알았다고 한다. 수십 통의 전화 끝에 연결이 되었다. 미안하다며 11시 45분쯤 약속장소에 찰리와 함께 나타났다.
나는 예전부터 중형견 사이즈의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너무 작고 어린 강아지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찰리를 보는 순간 첫 이미지는 '와, 크다'였다. 얼굴은 푸들인데 덩치는 웰시코기 만하고, 그런데 또 다리는 길쭉했다. 찰리는 나를 보자마자 두 발로 일어서더니 냄새를 맡고 금세 산책을 가자고 자신의 주인에게 낑낑댔다.
찰리를 만나기 전에도 몇몇 후보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의 가족이 될 강아지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찰리를 본 순간, 그냥 우리 집에 같이 가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첫 만남에 찰리의 입양날짜를 정했다.
일주일 후, 찰리는 우리 집에 왔다. 자신을 1년 넘게 돌보던 사람들이 어느 날 자기를 버리고 간 거다. 찰리의 리드줄을 건네받고 동네 산책을 했다. 9월이었지만 힘이 센 찰리 때문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자신의 이름은 쵸코인데 처음 듣는 이름을 부르며 자꾸 '안돼, 하지 마'라고 하는 누나를 만났다. 잠시 자신을 산책시키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집에 자신을 데리고 들어간다.
찰리는 우리 집에 와서도 한동안 내가 미리 사둔 장난감을 갖고 신나게 놀았다. 집에 데리고 왔을 때 그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조용한 1인가구에 식구가 늘어났다. 찰리도 나도 서로 당황했다. 우선 배변패드를 깔고 찰리의 물그릇과 밥그릇 자리를 세팅했다. 찰리가 노는 것을 구경했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찰리를 소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찰리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것 같다.
잘 시간이 되었는데 찰리가 침실로 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아 나가보니 거실 창문을 바라보며 자신을 버리고 간 주인이 떠난 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저 어린 강아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내가 괜한 짓을 한 걸까? 찰리에게 너무 미안했다.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렸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거실에 나가보니 응가냄새로 가득했다. 배변을 가릴 줄 안다고 했는데 러그 한가운데에는 엄청난 양의 응가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도 혼내지 않았다. 다만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아끼는 것들이 전부 응가밭이 되는 걸까? 난 이제 어떡하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오만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새벽 4시, 찰리가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 밑에 누웠다. 그렇게 우리의 첫날밤이 끝났다. 낯설고 서툴렀지만, 찰리는 결국 내 곁으로 왔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나를 바라보며 찰리는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또 자신을 버릴까 봐 두려움 때문인지 길을 막아섰다. 찰리를 데리고 오기 전부터 다짐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하루에 산책 두 번은 무조건 시켜야지.' 첫날부터 제대로 성공이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안양천으로 나선다. 한 시간 넘게 찰리와 산책한다. 풀 냄새 맡고 처음 보는 강아지 친구들과 인사하며 찰리에게 안양천을 소개한다. 사실 찰리가 오기 전 나 홀로 걷는 일은 없었다. 헬스장 러닝머신을 제외한다면 출퇴근 외에는 굳이 걷지 않는다. 그런 내가 찰리와 새벽공기를 맡으며 안양천을 걷고 있으니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찰리를 나의 오른쪽 옆으로 걷는 연습을 시켰다. 산책은 보호자와 강아지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라고도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은 없었다. 서로 자기 주장하기 바빴나 보다. 신나게 산책하고 집에 오면 오전 7시 30분이 넘는다. 찰리 발을 씻기고 아침밥을 챙겨준다. 터그놀이도 잠깐 해준다. 반면에 나의 시간은 최대한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 출근 준비도 빠르게, 아침밥은 사치, 엄마가 알면 서글픈 일이다.
퇴근하고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찰리가 오기 전 싱글라이프를 즐기겠다고 서점, 카페, 친구와의 약속 등 최대한 집에 늦게 들어갔다. 대학원을 갓 졸업해 더 이상 산더미 같은 과제도 없고 이직한 직장도 야근이 많지 않아 저녁시간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찰리가 오고 나서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바뀌었다.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찰리가 보고 싶고 걱정되어서 달려간다. 어느 날 버스에서 하차 후 '재택근무하고 싶다'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뛰어가는데 웃음이 났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