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싱글라이프에서 반려견 보호자로

by 찰리누나

영상으로, 글로 공부했지만… 실전은 달랐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곧 '아이'를 키우는 것과 맞먹는 노동과 정성, 희생, 사랑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집안 환경이 바뀌듯 나 역시 반려견 보호자로서 집안 곳곳의 변화가 필요했다.


찰리의 슬개골 보호를 위해 러그와 미끄럼방지 패드를 준비했다.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싶은데 바닥이 미끄러워 자꾸 엎어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거실 끝부터 현관 입구까지 길게 패드를 깔고 찰리가 집 안에서도 공놀이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나의 높은 침대를 저상형 퀸사이즈 침대로 바꿨다. 기존에 사용하던 침대는 슈퍼싱글 사이즈로 높이가 꽤 높은 미국식 스타일의 침대였다. 그런데 찰리가 오고 나서 혹여나 침대에서 뛰어내릴까 봐 걱정이 되어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집 꾸미기가 뭐죠?' 원래 싱글라이프는 집 꾸미기부터 시작 아닌가? 거실 티테이블은 찰리의 장난감 거치대로 바뀌었다. 찰리 물그릇은 침실과 거실에 하나씩 둬야 하고 현관에는 찰리 개모차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다. 집안의 모든 전구는 플리커 현상 없는 전등으로 교체됐으며 램프 하나를 구매할 때에도 찰리 눈이 아플까 봐 꼼꼼히 체크한다. 바닥에 전선은 없어야 하고, 찰리가 두 발로 섰을 때 물고 갈만한 모든 것들은 꺼내 놓지 않는다. 한 번은 귀걸이, 립밤이 찰리가 갖고 노는 장난감 속에서 발견되었다. 먹지 않아 다행이다. 결론적으로 집을 예쁘게 꾸미기는 어렵고 청소와 정리만 하다가 하루가 간다. 게다가 향을 좋아하던 내가 향초, 인센스 스틱, 룸스프레이는 꿈도 못 꾼다.


환경도 바뀌었지만 나라는 사람도 달라졌다. 산책을 하다 보니 동네 지리가 아주 빠삭해졌다. 지금 사는 동네에 꽤 오랜 시간 지냈는데 관심도 없었고 무엇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산책을 나가니 좁은 골목길과 어디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스몰토크도 늘어났다. 전에는 마주치는 이웃과 고개만 살짝 기울이는 짧은 인사가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옆집, 앞집, 아랫집 모두와 인사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안양천 산책 중에도 다른 강아지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모르는 분들이 찰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접근하면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한다. 좋게 말하면 넉살 좋게? 바뀌었다. 나의 주변 몇몇은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도 한다. (제가요? 엣헴) 그리고 찰리는 내가 낳은 아기도 아닌데, 누군가가 찰리를 칭찬하면 그렇게 어깨가 올라갈 수 없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웃긴다.

또한 나는 집순이가 아닌데 집순이가 되었다. 약속을 굳이 잡지 않고 주말에는 찰리랑 놀아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마치 맞벌이 부부가 주말에 아이랑 붙어 있듯? 그런데 찰리가 집에 오고 몇 달 동안 산책을 열정적으로 했더니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 비극엔딩이었다. 대상포진에 걸려버린 것이다. 물론 회사 업무도 많았지만 정말 찰리에게 진심이었다. 장기 전인데 너무 불나방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지금은 겨울이기도 하고 짧게 짧게 여러 번 산책을 하지만 당시에는 찰리도 나도 산책에 진심이었다. 아침에 1시간 저녁에 1시간 30분. 동물 학대는 아니었나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미안해 찰리야.)


찰리를 키우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내가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결벽증이 치료 됐다는 것이다. 나는 표현에 서툴고 다정하게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따뜻하게 말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이상하게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웃을 일이 크게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찰리와 함께하면서 내가 변했다. 찰리야 사랑해, 잘했어, 고마워, 미안해 이런 말을 강아지에게 한다. 희한하게 개도 다 알아듣는다. 찰리야 잘 자, 잘 잤어? 배고프지? 거의 아이를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개도 표정이 있는데 그건 주인의 표정을 보고 따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찰리랑 눈이 마주치면 습관적으로 웃는다. 덕분에 웃상이 되어가고 있다. 찰리도 산책을 하면서 중간중간 내 표정을 확인하고 웃는다. 무표정도 귀엽지만 웃을 때는 진짜 사람 아이 같다.


결벽증도 할 말이 많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이었다. 고등학생 때 동생이 교복을 입고 내 침대에 올라갔다고 아주 쥐 잡듯이 동생을 잡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적이 있다. 어떻게 밖에서 입는 옷을 입고 침대에 올라갈 수 있냐고 그 먼지 어떻게 하냐고 소리쳤다. 샤워를 한 후에는 손으로 수건을 못 만졌다. 바람에 자연 건조 시킨다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손이 마르길 한참을 기다렸다. 혹여나 수건에 묻은 세균이 화장품 바르는 손에 묻어나 얼굴에 그대로 붙을까 봐 걱정했다. 손가락 1개 만으로 크림을 바르던 시절이 10년이 넘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박에 가까운 습관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찰리는 네발로 바깥을 누비고 풀밭을 뒹굴고 집에 온다. 하루에 산책을 여러 번 하기 때문에 매번 물로 발을 씻기지는 않는다. 반려견 전용 물티슈와 발세정제를 이용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처럼 깨끗이 씻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발로 또다시 집구석구석을 훑고 다니며 내가 잠자는 침대 위까지 거리낌 없이 올라간다. 침대 스프레드와 베개, 소파, 모든 곳에서 찰리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가 잠을 잔다. 불과 1년 전의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친한 친구는 아직도 내가 찰리 응가를 치우는 모습이 이상하다고 한다. 어색한 수준이 아니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찰리야, 여러모로 고맙다. 네 덕분에 나는 강박 증세도 고쳐졌고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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