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전지적 찰리 시점

by 찰리누나


내가 누나와 함께 살게 된 지 10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누나와의 첫 만남을 회상해 본다. 누나는 완전 초보집사 그 자체였다. 처음에 나를 안아주는 법도 몰랐고 내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 다리는 어떻게 굽혀지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이렇게 왕초보가 앞으로 나를 케어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꽤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공놀이하고 뛰어다닐 만큼 여유롭고 숨바꼭질하기도 좋은 구조다. 그러나 견생 22개월 차였던 내가 이곳이 영원히 살게 될 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나를 키워주던 형이랑 아줌마가 나를 이곳에 두고 갔다. 이렇게 나를 한 번도 찾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누나집에 온 첫날, 나는 창문을 통해 형이 떠난 자리를 한참 쳐다봤다. 혹시나 돌아와서 나에게 가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새벽 3시가 지나도록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쩐지 내 물통이랑 사료랑 다 들고 나올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누나는 2주 전에 한번, 10분 정도 만난 게 전부였다. 나를 만나더니 아줌마한테 이것저것 묻고는 내 산책을 방해했다. 그런 누나가 이제 나의 주인이 되었다. 나의 미모에 첫눈에 반한 건가. 나의 덩치에 반한 건가.


첫날 집 여기저기에 마킹도 해봤다. 내가 살 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깐. 내 흔적을 남기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집안에서 일절 쉬야를 안 한다. 내가 사는 집인데 어떻게 배변을 하겠는가. 나 찰리, 굉장히 깔끔한 남자다.)

나는 포기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젠, 누나를 내 사람으로 삼기로. 말은 이렇게 하지만 3개월 넘게 나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 누나는 나를 빨리 적응시키려고 했는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시켜줬다. 이 동네는 처음인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공원도 있고 안양천도 있어서 흙냄새, 다른 친구 냄새, 풀냄새 등등 온갖 맡을 냄새가 천지다. 누나는 금방 질리는 스타일인지 하루에도 전혀 다른 코스로 나를 끌고 다녔다. 아침에 안양천을 다녀오면 저녁에는 공원을 가고 다음날은 또 다른 공원을 가고. 아마도 내가 적응하기 힘들까 봐 산책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 찰리, 10개월 전에 하루에 산책 3시간씩 하던 남자다. 누나는 나 정도 크기면 얼마큼의 산책시간이 적당한지도 모르는 바보였다. 요즘은 한번 나갔을 때 3-40분 정도 한다. 당시에는 나도 누나랑 어색해서 힘든 티를 안 냈는데 이제는 대놓고 말한다. “나 힘드니깐 나 안아. 나 걷기 싫어”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는데 누나는 하네스 입히는 것도 몰라서 첫날 내 하네스를 목에 걸고 한쪽 다리에만 껴서 나갔다. 아 창피해. 어떻게 하네스 입히는 것도 모르는 거야. 본인도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네모난 화면에다가 하네스 입히는 법을 검색하더니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입혀보고 혼자 손뼉 치고 좋아했다. 멍충미가 있는 것 같다.


누나는 내가 집 안에서 놀기 좋게 러그를 깔고 미끄럼방지 매트를 깔아줬다. 그리고 침대도 바꾸더라. 내가 같이 자길 원하는 건가? 훗 나란 남자 그렇게 쉽지 않지. 말은 이렇게 해도 누나 침대 바꾸고 바로 옆에서 잤다. 오르고 내리기가 쉬워졌다. 다리도 편해졌고. 누나야 고맙다.

누나는 산책을 잘 시켜주지만 맨날 똑같은 시간에 나가서 한참 있다 들어온다. 나는 그것 때문에 처음에 화가 많이 났다. 왜 나를 혼자 두는 거야. 난 혼자 있는 게 정말 싫은데. 가뜩이나 지금 형이랑 아줌마 때문에 상처받았는데 왜 나를 또 힘들게 하는 거야. 그래서 누나 나갈 때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누나와 함께 산 지 사흘쯤 지났을까. 낯선 사람 하나가 집에 들어왔다. 누나를 꼭 닮은 얼굴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누나의 엄마였다.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맞아준 엄마 덕분에, 나는 그제야 이 집이 나쁜 곳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엔 누나의 아빠도 만났다. IFC몰에서였다. 엄마와 누나, 그리고 나. 셋이 함께하는 산책처럼, 아빠도 그 자리에 와서 내게 인사를 해줬다. 그 순간, 나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이제 누나와 동거한 지 10개월 차 누나랑 나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꽤 많은 말을 알아듣는다. (누나는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지만)

찰리야 산책 가자, 너는 안가, 너는 집에 있어, 엄마 올 거야, 이따가 놀러 가자, 너는 못 먹어, 그만 먹어, 먹지 마, 안돼, 잘했어, 사랑해, 귀여워, 괜찮아, 기다려 이런 건 아주 쉽게 알아듣는다.

그런데 가끔 누나가 이상할 때가 있다. 나를 붙잡고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 나 안 아픈데. 나를 걱정해서 그런다고 한다. 울시간에 산책이나 더 시켜줘라 누나야.

나는 주말이 되면 누나가 똑같은 시간에 나가는 날이 아닌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 누나가 나가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참지 않지 나란 남자. 그러면 누나는 못 나간다. 통쾌하다. 나는 잠을 자도 누나가 옆에 있는 게 좋고, 나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네모난 화면만 보고 있어도 누나가 내 옆에 있는 게 좋다. 누나 냄새가 희미해지는 건 상상하기 싫다. 누나 말로는 나는 오래 못 산다고 한다. 길어봤자 10여 년 정도다. 앞으로 8년 남은 것 같은데. 나도 더 오래 살고 싶다. 누나랑 엄마랑 아빠랑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재밌는 것도 많이 하고 싶다.

누나가 평생 나를 돌봤으면 좋겠다. 누나랑 헤어지는 건 이제 악몽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