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윤 Sep 14. 2022

아, 아말피! 구불구불 해안도로, 시타 버스를 타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아말피, 버스 타다 먼저 죽겠다

아말피를 지나는 시타 버스는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다.


어제저녁 잠들기 전 분명히 11월 1일부터 바뀐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가? 11월 이른 아침부터 땀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30분 정도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정류장으로 오른다. 정류장까지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 올라가, 바다 풍경도 보고, 신선한 아침 바닷바람도 즐기고, 세넴과 여유 있게 인사도 하고 그렇게 우아하게 버스에 오르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올라가야  비탈길이 한참인데 벌써 멀리 산모퉁이 너머 경적 소리가 들린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해안 도로, 멀리 코너에서 파란 버스가 언듯 보인다. "이런!" 세넴은 버스의 정체를 알아보러 먼저 냅다 뛰기 시작한다. "Madonna~ per salerno? già? 마돈나~ 뻬르 살레르노?( 성모님! 살레르노행이라고요? 벌써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는데 쏜살같이 세넴이 뛰어와 돕는다. 작은 삼손 세넴.


세넴은 버스 기사에게 양해를 구했고, 친절한 기사는 잠시 아말피 해안길에 파란 버스를 멈춰 세웠다. 좁아터진 구불구불한 길, 더구나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에 덩치 큰 시타 버스가 정차 중이니 그 뒤 차들은 빵빵거리고 난리도 아니다. 성질 급한 차들은 마주오는 차를 아슬하게 피해 추월해서 가버린다.


마음이 급해져 정신없이 짐을 올렸다. 세넴과 제대로 포옹할 시간도 없어 볼키스만 겨우 나눴다. 짧은 인사가 끝나자 버스는 바로 출발한다.


이미 땀범벅이다. 이러지 않으려고 일찍 나섰던 건데....... "잠깐 여기 앉아도 돼요?" 친절한 기사에게 다시 양해를 구한다. 뒤는 이미 한 치 앞도 움직일 수 없이 만원. 앞문 발판에 앉아 숨을 돌린다.


아말피로 해안으로 여행 오려면 수준급 운전 실력을 갖추는 게 낫다. 렌트하는 차는 작을수록 좋다. 중앙선 없는 좁은 쌍방통행 급커브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름철, 차들이 꽉 들어찬 실지렁이처럼 좁아터진 굽은 길에는 군데군데 차들이 주정차를 해놓기 일쑤다. 진땀 흘리는 묘기 운전을 하지 않으려면 작은 차가 마음 편하다. 아! 도난 방지용 쇳덩어리 핸들커버도 잊지 말고 부탁하자.

 

아주 좁은 급커브 길에서 묘기를 부리듯 급커브길을 구불구불 도는 버스 안. 큰 마을을 몇 개 지나자 버스 안에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천천히 뒤로 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휴......" 이제야 긴장이 풀린다. 구불구불 굽은 길을 버스는 빵빵거리며 잘도 달린다.


"저 여자애는 우리 내릴 때 저 짐 치워준대?" "아이쿠, 아마 그럴 걸" 내 이야긴가보다. 자리는 하나고 캐리어는 놓을 자리가 없어 복도 신세였던 거다. "어디 내리세요? 내리실 때 짐 치워 드릴게요" 이태리 말로 묻자 괜히 멋쩍어진 둘은 환히 웃는다. "하하, 아직은 괜찮아요." 둘은 갑자기 알아듣기 힘든 나폴리 방언을 쓰기 시작했다.


기나긴 구불구불 고행의 길이 끝나고, 살레르노 기차역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살레르노에 오면 언제나 들르는 가게에서 물과 선물용 돌치를 샀다. 그리고 아침을 하러 카페 뿌로 (Caffe Puro)에 들렀다. 카푸치노와 브리오쉬 하나에 삼 유로를 냈다. 뜨내기 많은 역 앞 가격이다.


이태리에서 물가를 따질 때는 커피 한 잔 가격을 말한다. 예전에 살던 집 정원사 아저씨는 사르데냐 출신이었다. "사르데냐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응, 근데 관광지에 가면 뭐든 비싸. 커피 한 잔이 삼 유로나 한다구!" 커피 한 잔이 삼 유로면... 사르데냐에 놀러 가면 외식은 삼가야겠다. 보통은 바에서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일 유로다. 싸면 0.9 간혹 0.8. 비싸야 1.2 하는 커피가 3유로라니 이탈리아 사람을 위한 가격은 아니다. 하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 근처 카페 플로리안에서는 커피 한 잔을 육, 칠 유로에 팔기도 한다. 주머니 두둑한 관광객용 커피. 플로리안 앞을 지나가거나 들여다보는 데는 왜 돈을 안 받나 모르겠다.


여덟 시 삼십 분. 나폴리행 레지오날레가 도착했다. 객실이 세 칸뿐인데 이미 기차는 만원이다. 문 세 개 앞에 사람들은 다닥다닥 몰려 있는데 기차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시타 버스처럼 만석이라 그냥 가 버리는 건가? 이 기차를 못 타면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찰나 문이 열린다.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레르노에 내린다. 그리고 문 앞에 우~ 모여있던 승객들과 함께 나도 파도에 떠밀리듯 기차에 올랐다. '아! 만원 출근 기차구나! 짐도 무거운데......' 싶은 찰나 빈자리 하나 눈에 띈다. 아, 그러서였군. 앉고 보니 화장실 앞 간이 의자다. 옆의 아줌마랑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어깨를 들썩이며 '에!'를 내뱉는다. '어쩌겠어?' 하는 의성어다.


 09. Novembre. 2015 08:59

작가의 이전글 기차 시간 급한데 표도 못 샀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