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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Sep 30. 2022

님아, 제발 그 옷을 벗지 마오.

이탈리아 사람들의 소심한 마늘 사랑, 셔츠 입은 마늘과 바냐 카우다

마늘 좋아하세요? 한국인의 밥상에서 마늘은 빼놓기 어려운 중요한 식재료지요. 한국에서는 사랑받는 마늘이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에서는 여간 조심스럽게 요리되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요? 이탈리아 북서부 사람들의 '사랑하기엔 너무 먼 그대'같은 소심한 마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마늘 좋아하시나요? 한국 요리에는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한국인들의 마늘 사랑은 각별합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갖가지 김치는 물론 불고기, 각종 나물 요리, 칼칼한 생선 조림, 각종 찌개, 시원한 국물 요리, 호호 불며 먹는 맛있는 고기만두에도 곱게 다진 마늘이 꼭 들어갑니다. 고기를 구워 크게 한 쌈 싸서 먹을 때도 구운 마늘은 물론 편으로 썰거나 통 생마늘도 쌈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단골손님이지요. 한국 요리의 감칠맛을 돋우고, 혈액 순환도 돕고 염증도 줄여 준다고 하니 고마운 마늘을 멀리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마늘이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에 오면 그 대접이 달라집니다. 어찌 된 일인지 마늘을 아예 못 먹거나 질색을 하며 멀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피에몬테 요리에서 마늘은 아주 성가신 식재료로 취급받는다고나 할까요?


그렇다면 피에몬테에서는 마늘을 어떻게 이용하나요? 한국처럼 다져서 사용한다면 아마 큰일이 날 겝니다. 마늘을 요리에 사용한다고 해도 소심하게 아주 살짝 향을 내는 정도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요리에 사용하는 마늘의 양이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아주 커다란 냄비나 프라이팬에 다른 재료들이 가득 들어간다면 마늘은 겨우 한쪽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더구나 다지기는커녕 속껍질도 벗기지 않고 그대~~~ 로 마늘 한쪽이 퐁당 요리에 들어갔다가 잠깐 샤워만 하고 급히 퇴장합니다.

이렇게 속껍질을 벗기지 않고 얌전히 옷을 입힌 마늘을 'aglio in camicia(셔츠 입은 마늘)'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마늘 속껍질은 하얀색이 많고, 얇고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하얀 셔츠를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할 테지요.


"셔츠 입은 마늘이요?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그런데 뭐라구요? 겨우 마늘 한쪽을 사용한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마늘 한 통이 아니라 마늘 한쪽입니다. 한국에서는 워낙 마늘을 많이 사용하니 마늘을 세는 단위도 통이 크지요. 마늘 머리 100개는 한 접, 50개는 반 접, 1개는 한 통, 마늘 머리를 쪼갠 낱개는 한쪽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도 마늘 하나를 낱개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탈리아 북서부에서는 마늘 머리 하나, 즉 마늘 한 통을 아무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늘 머리를 쪼갠 마늘 한쪽을 사겠다고 나서면 빈축을 살 수 있으니 삼가해 주세요. "마늘 한쪽 주세요." 하면 기가 찬 표정을 짓거나, 가게에 들어가면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셨다면 마음씨 좋은 채소 가게 주인은 그냥 하나를 선물로 주실 겝니다.


이렇게 마늘이라면 겁을 내는 피에몬테 사람들도 마늘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계절이 있습니다. 바로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입니다. 바로 피에몬테 전통 요리 'Bagna Càuda(바냐 카우다)' 때문이지요. 바냐 카우다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역사가 깊은 피에몬테 주의 전통 요리입니다.



바로 이 바냐 카우다 안에 엄청난 양의 마늘이 들어갑니다. 피에몬테 주에서 나고 자란 친구 어머니는 바냐 카우다에는 한 사람 당 마늘 한 통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한 번의 식사 자리에서 먹는 마늘의 양이 한 사람 당 마늘 한 통이라니, 마늘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도 손을 내저을 정도지요?


바냐 카우다를 만들 때만큼은 'aglio in camicia', 셔츠 입은 마늘도 항복을 하고 순순히 누드가 된답니다. 마늘 속껍질만 까고 나면 바냐 카우다 만들 준비가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속껍질을 잘 깐 마늘 알을 날이 잘 선 작은 칼로 반을 잘라냅니다. 그리고 뾰족한 칼끝을 이용해 마늘 속에 숨겨진 마늘 싹을 파내야 하지요.  "엥? 마늘 싹을 파내요?" 마늘 싹을 굳이 파내야 한다니 처음엔 저도 고개가 갸웃거려졌어요. 제 고향 부산에서는 입맛 달아나는 무더운 여름이면 일부러 마늘 싹을 키워 올려 그 새파란 줄기를 먹었거든요. 줄기가 연하고 보드라울 때 마른 새우나 생새우를 넣고 볶아 먹거나 메추리알과 함께 간장 졸임을 해서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주에서는 굳이 마늘 속의 그 작은 싹을 일일이 파내서 요리를 한다고 하니 참 유난스럽다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피에몬테 사람들 중에는 마늘 싹을 소화 못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마늘은 물론 양파며 샬롯 등 백합과 식물을 전혀 못 먹는 사람도 많으니 마늘 싹을 못 먹는 경우라면 애교 정도로 봐줘야겠지요.



저는 오랜 기간 피에몬테 주에서 살아서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모두 바냐 카우다를 아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남부 아말피 해안가 친구네에 놀러 가 바냐 카우다 이야기를 꺼냈더니 모두 그 맛을 궁금해하더군요. 이탈리아 친구들 앞에서 외국인인 제가 이탈리아 다른 주의 요리를 설명하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요리'라는 개념이 허상이다 싶을 정도로 각 주마다, 각 마을마다 고유의 요리와 레시피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말을 역으로 하면 다른 주나 다른 마을의 전통 요리는 그 지역을 여행하지 않는 이상 굳이 요리해서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피에몬테 주에서는 으슬으슬 추워지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바냐 카우다를 즐겨 먹어. 주 재료는 마늘, 앤쵸비, 올리브 오일이야." 남부 친구들이 좋아하는 재료가 한가득이니 친구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네? 남부 이탈리아 인들은 피에몬테 사람들과 달리 마늘을 좋아하나요?" 그러게요. 그렇습디다. 피에몬테 사람들이 마늘이라면 질색하는 경우가 많아, 저는 남부 사람들도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무더운 여름, 남부 아말피 해안가 앤쵸비로 유명한 체따라(Cetara) 바닷가 피잣집에서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피자를 먹을 때였죠. 자신이 시킨 음식만 먹는 깍쟁이 같은 북부 친구들과는 달리 남부 친구들은 피자도 여러 종류를 시켜 놓고 다 함께 여러 가지 맛을 나누어 먹는 걸 좋아하더군요. '내가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그런가? 난 남부 정서가 잘 맞는 것 같아.' 생각하던 차에 제 눈앞에 놀라운 피자가 하나 등장했습니다. 바로 'pizza marinara(피자 마리나라)'였습니다. 빨간 토마토소스 위에 오리가노와 얇게 편으로 썬 생마늘이 올라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놀란 저는 "생마늘을 먹어도 돼?"하고 물었습니다. "그럼 생마늘이 먹으라고 있는 거지"하고 남부 친구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마리나라 피자를 먹기 시작했죠. 마늘 냄새에 극도로 민감한 북부 친구들과 달리, 남부 친구들은 뜨근한 피자 도우 열기에 자극을 받아 더욱더 강렬하게 풍기는 생마늘 향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습니다.


아, 그렇지요. 다시 바냐 카우다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주재료는 마늘, 앤쵸비, 올리브 오일이지만 마지막에 생크림을 조금 넣어서 맛을 부드럽게 잡을 수도 있어." "뭐? 생크림???" 마늘, 앤쵸비, 올리브 오일에는 격한 공감을 하던 남부 친구들이 거기에 생크림을 섞는다고 하니 못 들을 이야기를 들은 듯 오만상을 찌푸립니다. "그럼 너희를 위해서 만들 땐 생크림을 안 넣을 게."


그리하여 남부 이탈리아 친구들 앞에서 외국인 제가 북부 이탈리아 요리로 주름을 잡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부 이탈리아 친구들은 제가 만든 바냐 카우다를 좋아했을까요? 결론은? 흠흠...... 남부 친구들 반응이 이랬습니다. "우린  확실한 마늘 맛을 원했다구! 아니, 마늘이 많이 들어간다더니 어째 마늘 맛이랑 향이 이렇게   수가 있어?  사람  마늘  통이라며? 마늘  넣은  아니야?"


요리에 진심인 이탈리아 친구들은 급기야 제게 레시피 전체에 대한 설명을 듣겠다고 나섰지요. "우선 마늘 속껍질을 벗기고 마늘 싹을 파내서..." "아니, 마늘 싹은 왜 파내는 거야? 거기서 향이 많이 나는데!" 북부 이탈리아 친구들은 소화를 못 시키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말하자 남부 친구들은 처음 바냐 카우다를  배울 때의 저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죠. "마늘 싹을 모두 파내고 나면, 우선 찬 우유나 찬물에 마늘을 넣고 살짝 끓어오를 때까지만 불에 올렸다가 다시 찬 우유나 찬물에 담가서 끓여내기를 반복해. 최소한 세네 번, 많을 땐 일고 여덟 번 정도." "뭐????" 남부 친구들은 큰 소리로 합창을 하듯 "cosa????"를 외쳤죠. 제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냐구요. 전 배운 대로 설명을 했죠. 마늘 특유의 강한 향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구요. 남부 친구들은 피에몬테 전통 레시피를 도무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군요. 다음엔 마늘 싹도 파내지 말고, 찬물이나 우유에 끓여내 향도 죽이지 말고 마늘 향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바냐 카우다를 함께 만들자고 제게 다짐을 받아 냈습니다.   


마늘이나 앤초비 향에 이렇게 관대한 남부 친구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요리에 대범하게 마음에 문을 열어 줄까요? 또 그렇진 않습니다. 피에몬테 친구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가리지 않고 즐겨 먹는 대표적인 안티파스토, 피에몬테 주에서 나고 자란 하얀 암소 파쏘나 품종으로 만든 육질이 부드러운 암소 육회 'Battuta di Fassona(바뚜따 디 파쏘나)'이야기를 했더니 이번엔 남부 친구들이 질색팔색을 하더군요.


"바냐 카우다는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나 가족끼리만 함께 먹는 음식이야.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주중에는 먹으면 안 돼. 일이 끝나고 금요일 저녁에 먹어야 딱 맞아. 그래야 토요일 일요일 주말 이틀 동안 마늘 냄새를 씻어내고 월요일에 출근을 하지."


바냐 카우다 그릇은 한 사람 당 하나씩이 제격입니다. 아주 작은 화덕 모양의 바냐 카우다 도자기 그릇은 밑에는 불을 붙인 작은 꼬마 초를 놓고, 위에는 뜨거운 바냐 카우다 소스를 듬뿍 올려 갖가지 종류의 생채소와 익힌 채소를 바냐 카우다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강렬한 마늘 냄새 덕분에 레스토랑에서는 '바냐 카우다 데이'를 지정해서 요리하기도 하지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린쟈네 카불 고성에서 일할 때 '바냐 카우다 데이'로 백 명이 넘는 손님을 모신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요? "다시는 바냐 카우다 데이 하지 맙시다!" 홀 서버들의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냥 하룻 저녁 바냐 카우다가 가득한 홀에서 서빙을 했을 뿐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늘 냄새가 다 스며들었다나요?


강렬한 마늘향도 사랑하는 남부 사람들과 마늘 냄새라면 화들짝 놀라지만 그 강한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는 못 하는 피에몬테 사람들. 남부에서는 아직도 바다 수영을 한다는데, 이곳 북부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살살 불어와 며칠 전부터 벽난로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불 때면 작은 식당에 모여 앉아 하하호호 마늘과 앤쵸비 냄새를 풍기며 바냐 카우다를 먹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고약한 마늘 냄새가 좀 나면 어때? 친한 우리 사이에. 대신 며칠 동안 바냐 카우다 안 먹은 사람하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건 조심하자구! 우리가 입을 열면 불쌍한 상대방은 코를 감싸고 줄행랑을 칠지 모르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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