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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06. 2022

그리스 친구가 들려주는 문어 이야기

지중해 바람 따라 더 깊어지는 맛, 그리스 문어 이야기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온 그리스 사람들은 해산물 요리를 사랑합니다. 그중에서도 문어의 인기는 단연 최고지요.  지중해의 햇살과 바람이 가득한 그리스 사람들의 식탁을 잠시 들여다볼까요?


(그리스 친구 타니아 렘파추 TANIA REMPATSIOU와의 인터뷰를 이야기 형식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Ya sas Koreàtes fíloi! 안녕하세요, 한국 친구들. 저는 그리스 바닷가 근처 리토초로LITOCHORO에서 나고 자란 타니아 렘파추라고 해요. 제 고향은 자동차를 타고 10분이면 해변에 닿는 곳이니 저는 참 행운이지 뭐에요. 그리스 하면 푸른 바다, 멋진 해변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오늘은 그 푸른 바다에서 나는 문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문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해산물 중 하나거든요.  그리스에서 제일 비싼 해산물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문어를 특별한 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답니다.


문어가 비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리스에서는 부활절 40일 전에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 그래서 그때 가 되면 문어 인기가 더욱 치솟지요.

문어를 잡는데도 공이 많이 들어요. 문어가 바닷속 바위 사이를 여유롭게 느릿느릿 걸어다닐 때, 다이버들이 포세이돈처럼 삼지창을 들고 기다리다가 순식간에 창을 찔러 문어를 낚아채 잡는답니다.


문어 하면 역시 바닷바람에 살짝 말린 문어지요. 통째로 말리기도 하고, 머리는 떼 버리고 다리만 말리기도 해요. 다리를 아예 두 세 개씩 잘라서 쇠꼬챙이에 걸어 말리기도 하고요. 건조대 위에 마치 값비싼 코트처럼 주름이 가지 않게 잘 펴서 말리기도 하지요. 단, 문어 다리가 서로 붙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요. 문어 다리가 붙으면 값비싼 문어가 상해버리기 쉬우니까 요.

그래서 질 좋은 말린 문어가 되려면 햇살도 중요하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필수랍니다. 잘 말린 문어는 그 비싼 몸값에 맞게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문어 하면 타베르나 TAVERNA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타베르나는 그리스식 대중식당이라고 보시면 돼요. 스페인에 타파스가 있다면 그리스 대중식당 타베르나에서는 메제 MEZE라는, 작은 접시에 담긴 음식들이 나온답니다. 정오만 지나면 언제든지 타베르나에 가서 술과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 메제를 즐길 수 있답니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해 질 녘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야외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고 상상해보세요.  타베르나 앞 해변에는 건조대에 빨래처럼 죽 널어놓은 문어 다리가 바람에 흔들리지요. 그 바람 따라 옷자락도 머리칼 도기분 좋게 흩날리고 좋은 사람과 마주 앉은 날은 마음도 바람 따라 일렁일렁할 거예요.


한국에도 1차, 2차 술 문화가 있다지요? 그리스 타베르나에서는 술자리를 옮기지 않고 앉은 그 자리에서 1라운드, 2라운드가 넘어간답니다. 일단 타베르나에 가면 1인당 1병을 시킵니다. 취푸로 TSIPOURO라는 40도 정도의 독한 술이 아주 작은 병에 나와요. 에스프레소 잔에 채우면 한 잔이 될 정도의 적은 양이지만 40도나 되는 독한 녀석이니 첫 라운드부터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려면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도수가 높은 만큼 치푸로는 아주아주 차게 즐기는 술이랍니다. 조금 큰 잔에 얼음을 넣어 희석시켜 드셔도 좋아요. 작은 잔이지만 러시아처럼 원샷을 하지는 않아요. 아주 천천히 취하지 않도록 치푸로와 함께 나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좋은 사람들과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지요.


치푸로를 시키면 함께 나오는 메제는 따로 추가 비용을 내서 시키기도 하지만 보통은 시크릿 메뉴예요. 주방장 선택대로 몇 개의 작은 접시가 한꺼번에 나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어를 맛보려면 적어도 3 라운드는 가야 해요. 1 라운드, 일인당 치푸로 한 병을 시키면 튀긴 야채, 감자 구이, 그리스식 요거트 차치키 TZATZIKI와 빵 정도를 맛볼 수 있어요.

2 라운드, 1인당 치푸로 2병째가 되면 드디어 슬슬 해산물을 만날 수 있어요. 게살 샐러드나 새우 정도가 나와요. 저는 술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3라운 드는 가야 제 사랑 문어 구이를 만날 수 있으니 치푸로 3병 까지는 기본이지요. 바닷바람에 잘 말려서 석쇠 위에서 겉을 바삭바삭하게 구운 문어 다리를 상상하면 벌써 침이 고이네요.


제가 8살이 되었을 때 같아요. 온 가족이 함께 타베르나에 제 생일파티를 하러 갔어요. 원래는 4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여러 개 붙여 아주 길고 커다란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 온 가 족이 모여 치푸로와 메제를 즐겼어요. 제 생일인 만큼 아버지가 제게도 치푸로를 맛 보여주셨지요. 새끼손가락에 치푸로를 살짝 담가서요. 제 표정이 상상이 되시나요? 정말로 끔찍한 맛이었어요. 아버지는 제게 치푸로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어요. 18살이 되자마자 처음으로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고 친구들과 타베르나를 갔지요. 제가 사랑하는 바삭한 문어 구이를 먹은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느릿느릿 문어 걸음으로 집까지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하하하.


한국 친구들도 금요일 저녁 좋은 사람들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1인 1 문어 다리 해보세요.


여러분을 위해 그리스 문어 다리 구이 레시피를 남겨요. 안녕, 한국 친구들.



살캉살캉 부드러운 식감의 그리스식 문어 요리


따스한 햇살과 바닷바람을 가득 머금은 그리스식 문어 요리를 소개합니다. 양념을 최소한으로 사용해서 문어 그대로의 풍미를 느낄 수 있어요.


재료

중간 크기의 문어, 레드 와인 1/3컵, 발사믹 식초, 살짝 부순 통후추, 말린 오레가노 꽃(꽃이 없으면 잎도 좋아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소금, 레몬


만드는 법

 1) 냄비의 물이 끓을 때 손질한 문어를 물에 잠기게 넣고 뚜껑을 닫고 8분 정도 끓여 주세요.

8분 후, 문어가 물에 잘 잠겼나 확인한 후 약불로 45분 정도 익혀주세요.

포크로 찔러서 푹 들어갈 정도로 부드럽게 익었나 확인해주세요.

2) 문어 살이 부드럽게 익었다면 불에서 냄비를 내리고 분량의 발사믹 식초, 와인, 오레가노를 넣고 식혀주세요. 냉장고 속이나 서늘한 곳에서 하룻밤 동안 숙성시켜주세요.

3) 이제 그릴 구이 준비를 할게요. 숯불이나 오븐 그릴을 미리 뜨겁게 달궈주세요.

4) 문어를 마리네이드 한 물속에서 꺼내 주세요.(말린 문어라면 지금부터 과정이 같아요.) 굽기 좋은 크기로 미리 잘라주세요. 문어에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 말린 오레가노, 거칠게 부순 후추와 천일염을 아주 살짝 더해주세요.

5)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익을 수 있도록 석쇠 앞뒷면당 2-3분을 익혀주세요. 먹기 직전 재빨리 접시 위에 문어를 올리고 올리브 오일, 갓 짠 신선한 레몬즙, 필요하다면 다시 후추와 천일염을 살짝 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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