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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18. 2022

젤라또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이탈리아 셰프들의 젤라또 이야기

“젤라또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나라라면 젤라토의 고향 이탈리아겠지요.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질 좋은 우유와 크림이 나는 곳, 젤라토를 즐기기에 최적의 주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젤라또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알따 랑가(Alta Langa)에서 나고 자란 마우라 챤드라(Maura Ciandra)와의 젤라또 이야기 잘 읽으셨나요?


이번엔 이탈리아 미슐랭 레스토랑 구이도 (Guido Ristorante) 셰프 우고 알차티(Ugo Alciati)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 선정 뜨라또리아  코치넬라(Trattoria La coccinella) 셰프 마시모 델라페레라(Massimo Dellaferrera) 만나 인터뷰  그들의 젤라또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갓 내린 눈처럼 부드러운 우유 젤라토"

원스타 미슐랭 레스토랑 구이도 (Guido Ristorante)의 셰프 우고 알차띠(Ugo Alciati)가 들려주는 젤라또 이야기

셰프 우고 알챠티 Ugo Alciati

젤라또 이야기를 하려면 제 할머니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는 경제 사정이 아주 열악했어요. 동네에 레스토랑 같은 건 전혀 없었죠. 손맛이 좋았던 할머니는 당시 결혼식이나 큰 행사가 있으면 동네에 솜씨 좋은 사람들을 모아 요리를 했대요.

결국 할머니는 마흔 다섯이 될 무렵 동네 요리사가 되셨어요.

요즘 한국에서는 조기 퇴직이 유행이라지요? 지금 세대들은 빠른 퇴직을 고민할 나이 마흔 중반에, 전쟁 직후 40대 중반의 여성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셨던 거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배짱과 에너지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소박하게 시작하신 할머니에 이어 어머니가 레스토랑을 물려받았고,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미슐랭 투스타를 따내셨지요.  

한때 왕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아름다운 구이도 레스토랑 내부

현재 구이도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로 있는 저를 만든 분이 할머니라고 생각해요. 주저하는 아홉살 손주의 손을 할머니가 주방으로 이끄셨지요. 네, 저는 아홉 살 무렵무터 주방 출입을 시작했어요. 다른 형제보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했는데, 이를 눈여겨보신 할머니의 조언 덕분이었죠. 아홉 살에 아무것도 모르고 주방에 뛰어든 제가 어느새 할머니에 이어 요리하는 사람이 됐네요.


할머니는 정말 부드럽고 맛있는 커스터드 크림 젤라토를 만드는 법을 알고 계셨어요. 지금 제 레스토랑에서도 젤라토는 없어서는 안 될 디저트에요. 다만 저는 계란을 넣지 않은 우유 젤라토를 만들어요. 피에몬테의 깨끗한 산에서 키운 하얀 소 파쏘나에서 난 아주 특별한 우유와 크림을 사용하거든요. 계란을 넣으면 그 특별한 맛을 가리게 되는 게 아쉬워서 저는 우유와 크림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계란을 빼고 레시피를 바꿨어요. 레스토랑에서 만든 젤라또 베이스는 손님이 주문하는 즉시 기계에 들어가 젤라또로 만들어지지요. 냉동고에서 보관되는 다른 젤라또와는 달리 최고의 부드러움을 맛보실 수 있어요. 그래서 즉석에서 만든 젤라또는 사계절 내내 많은 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즉석에서 만들어져 손님 앞에 오르는 젤라또, 구이도 레스토랑에서 플린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시그너쳐 디쉬다.

젤라또는 사계절 내내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저는 특히 겨울에 먹는 젤라또를 좋아해요. 한국에도 눈 내리는 12월의 젤라또를 즐기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추운 겨울에 젤라토를 즐기려면, 저는 역시 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가운 젤라토를 먹은 후 다시 눈 내리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벽난로에 나무를 넉넉하게 넣고 그 앞 소파에 느긋하게 둘러앉아요. 가족이든 친구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젤라토가 훨씬 달콤하게 느껴질 거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겨울에는 젤라토에 견과류나 건포도를 곁들이는 걸 좋아해요. 크리스마스 무렵 가족과 다 함께 나누어 먹는 빠네또네(Panettone)를 떠오르게 하거든요. 날씨가 추워질수록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게 마련이죠. 차가운 저녁 무렵 온기가 가득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젤라토와 함박웃음으로 식사를 마무리하세요.



"미소를 짓게 하는 달콤함, 꿀 젤라토"

뜨라또리아 라 코치넬라(Trattoria La coccinella) 셰프 마시모 델라페레라(Massimo Dellaferrera)와의 인터뷰

마씨모, 티찌아노, 알레산드로 삼형제가 힘을 모아 알따 랑가에 뜨라또리아를 열었습니다. 이탈리아 미식 가이드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에서 해마다 언급하는 곳이지요.

저는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주방 일을 시작했어요. 그게 벌써 35년 전의 일이니 제가 14살, 15살 무렵이었네요. 그 당시에는 이탈리아에 미슐랭 레스토랑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제가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들어간 레스토랑은 이 지역에서 미슐랭 스타로 유명했던 몽포르떼(Monforte)의 펠리친(Felicin)이었어요.


레스토랑 펠리친 주방 한 구석에는 아주 커다랗고 낡은 젤라토 기계가 있었어요. 젤라토를 만든 후 젤라토 기계 청소는 막내인 제 차지였죠. 처음 젤라또 기계를 청소하던 날이 기억 나네요. 젤라토 머신에 조금 남은 녹은 젤라토를 몰래 검지 끝에 찍어 맛을 봤지요. 아! 진한 아카시아 꿀향에 저는 바로 반해버렸어요. 후일 내 레스토랑을 열면 꼭 꿀 젤라토를 만들리라 결심했죠.

가정집같은 편안함을 주는 뜨라또리아 코치넬라 (Trattoria La Coccinella) 홀의 모습

지금 제 레스토랑에서 꿀 젤라토는 빠지지 않는 메뉴예요. 무더운 여름 젤라또를 더 많이 찾게 되지만, 저는 겨울 젤라또를 즐깁니다. 겨울에 어울리는 젤라토라면, 저는 역시 꿀 젤라토라고 생각해요. 추운 겨울 목이 아프거나 감기에 걸리면 어머니는 뜨거운 우유에 꿀을 타서 주시곤 했어요. 뜨거운 꿀우유 한 잔이면 목의 통증이 사라지곤 했죠. 그래서 꿀을 넣은 젤라토는 개인적으로 제게는 겨울이면 찾게 되는 맛입니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식사를 하고 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입가심으로 젤라토를 찾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눈이 펄펄 내리는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긴다지요? 그렇다면 제 이야기에 동감하실 수 있겠군요.


한국인은 단짠의 조화를 좋아한다지요? 저는 차갑고 뜨거운 음식의 재미있는 하모니를 입 안에서 즐기는 걸 좋아해요. 추운 겨울이라면 저는 차가운 젤라또에 오븐에서 갓 꺼낸 뜨거운 초콜릿 케이크 토르티노 알 초콜라토(Tortino al cioccolato)를 함께 먹는 걸 좋아해요. 뜨거운 초콜릿 케이크와 차가운 젤라토가 주는 맛과 온도의 하모니에 무릎을 탁 하고 치시게 될 겁니다.

아! 계란 노른자에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를 넣고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휘저어 만드는 뜨거운 모스카토 크림 쟈바요네(Zabaione)도 빠질 수 없죠. 달콤하고 차가운 젤라또와 부드럽고 뜨거운 자바요네가 만나니 입 안에서 살살 녹지 않을 수가 있나요? 한 숟갈을 입 안에 넣으면 바로 "음~"하는 탄성이 나오고 맛을 음미하느라 눈이 저절로 감기지요.


인생은 꿀처럼, 초콜릿처럼 언제나 달달하지만은 않죠. 하지만 그렇게 달달한 순간도 언젠가 찾아오게 마련이지 않나요? 고된 하루 끝, 꿀 젤라또로 미소를 되찾아보세요.




 젤라또와 뜨거운 쟈바요네(Gelato con Zabaione caldo)

<재료>

계란 노른자 2개, 계란 껍질 반 개에 2번 채운 양의 모스카토 다스티, 설탕 2 티스푼


<만들기>

1) 커다란 냄비에 중탕할 뜨거운 물을 준비해주세요. 물이 끓기 직전의 온도면 좋습니다.

2) 냄비에 걸칠 깊고 둥그런 스테인리스 볼을 준비해주세요.

3) 뜨거운 중탕 냄비에 걸치기 전에 스테인리스 볼 안에 계란 노른자와 2티스푼의 설탕을 넣자마자 휘핑기로 먼저 저어주세요. 노른자에 설탕을 넣고 젓지 않고 그냥 오래 두면 설탕이 닿은 자리맏다 노른자가 딱딱하게 응고되어버리니 조심하세요.

4) 노른자 색이 연해지기 시작하면 모스카토 다스티를 중량대로 넣고 계속 저어줍니다. (계란 노른자의 크기는 계란 크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전통 레시피에 따르면 계란 껍질 반 개에 모스카토를 넣어 중량하는 거랍니다. 집에 요리 저울이 없을 때에도 활용 가능한 편한 방법이지요.)

5) 뜨거운 중탕 냄비에 재료가 들어간 볼을 걸치고 거품기로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줍니다.

6) 거품기로 저을 때 거품기 지나간 자국이 바닥에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하면 거의 다 된 겁니다. 너무 오래 가열하면 갑자기 계란 노른자가 응고되면서 계란죽이 되니 조심해 주세요.  

7) 예쁜 젤라또 그릇 안에 젤라또를 담고, 쟈바요네를 곁들여 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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