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오늘은 너를 꼭 안아줄게
5월 중순이었을까? 레스토랑 재오픈을 위한 회의가 있었다. 몇 달 만이었다. 고성 안뜰에서 레스토랑 식구들이 다시 만났다. 뻥 뚫린 하늘에서는 실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원탁 두세 개를 마주 붙이고, 1미터씩 공간을 두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원탁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마주 본 우리들은 슬며시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2주 후, 레스토랑 재오픈 준비를 위해 우리는 다시 만났다. 3월 10일부터 5월 27일까지 총 두 달 반 가까이 닫혔던 성문이 드디어 열렸다. 주방은 낯설고 어수선했다. 그동안 주방장 혼자 음식을 준비하고, 배달까지 했으니 그럴 만했다. 우리들은 각자 구역을 맡아 모든 집기들을 들어냈다. 먼지를 닦아내고 집기들의 제 위치를 찾아 주었다. 마스크를 쓴 채 일을 하느라 숨쉬기도 쉽지 않았다.
몇 시쯤이었을까? “Wow! Che americana! 어머! 아주 미국 여자야!” 아주 짧게 자른 머리카락, 원더우먼이 그려진 티셔츠에 바지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셰프의 부인, 레스토랑 총 매니저, 레스토랑의 실질적인 운영과 아이디어 뱅크, 에이미다. 바싹 마른 몸과 가녀린 뼈대, 움푹 들어간 큰 눈은 작고 마른 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뭔가 달랐다. 곱슬 단발머리를 쇼커트로 짧게 잘랐다. 이마 정중앙에서 수북이 올라오는 흰머리를 더 이상 염색으로 가리지 않았다. 대신 짧게 쳐서 경쾌함을 주었다. 짧은 머리. 그 옛날, 미국 콜로라도에서 이탈리아 북부로 요리를 배우러 왔던 자신을 2020년으로 소환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녀는 프로 요리사 출신이다. 8년 동안 땀 흘렸던 주방을 첫 아이 만삭 때가 되어서야 떠났다. 첫 딸 줄리엣을 낳게 되면서, 그녀는 요리사 일 대신 갓난쟁이 딸을 선택했다. 10년 가까이 일한 주방에서 홀 서비스로 자신의 무대를 옮겼다. 특유의 산들거리고 가벼운 발걸음, 하이톤의 목소리와 환한 미소가 지금의 그녀다. 그 옛날 요리사 시절의 짧은 머리 사진을 보아도 도무지 요리사로서의 그녀가 그려지지 않는다.
언제나 밝은 그녀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에이미의 얼굴에서 짙은 그늘을 보았다. 도무지 걱정을 떨쳐버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씩 할 때였다. 다른 사람들은 담배를 피운다, 화장실을 간다 자리를 비운 차였다. 그녀와 나는 바에 단 둘이 남았다. “에이미, 너 괜찮니?” 처음이었다. 나의 한 마디가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괜찮을 거라고 매일 스스로 말하지만, 너무 두려워.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거래처에 대금 납부를 못 한 건 정말 처음이야.” 이야기를 더 나누려던 차, 셰프와 소믈리에가 들어왔다. 에이미는 급히 고개를 커피 머신으로 돌려 눈물을 닦았다.
그녀를 꼭 안아주지 못한 게 못내 미안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에서 배를 모는 일이 얼마나 두려울까?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이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잠을 푹 자기도 힘들었을 거다. 푹 꺼진 눈이 안쓰러웠다.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스폰서도 없이 집을 저당 잡혀 둘 만의 레스토랑을 꾸리고, 미슐랭 별을 따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그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년 넘는 레스토랑 인생에서 그녀에게도 이번 일은 처음 있는 심각한 상황인 거다.
속은 레스토랑 경영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하더라도, 언제나 유쾌한 농담을 할 줄 아는 그녀였다. 나는 언제나 그녀 없이는, 주방 일만 아는 우리 셰프에게 미슐랭 별의 영광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아무 일 없는 듯 지금 할 것에만 집중하며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셰프가 듬직한 산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앞일을 너무 걱정하다 보면 그 근심이 무거운 추를 마음에 달아 스스로를 가라앉게 만든다.
‘에이미,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너를 꼭 안아줄게.’ 그날 밤,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다음날, 팔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한아름의 꽃을 안고 나타난 에이미를 안뜰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때는 있습니다. 위기도 있습니다. 열 마디 말보다, 그저 바라봐 주거나, 꼭 안아주는 가슴이 되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쩌다 포옹마저 금지 조항이 되었습니다. '거리 두기'가 미덕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참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누구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한 모양으로 세상이 변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