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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23. 2022

 이것이 제겐 행복입니다.

카를로(Carlo olivero)아저씨의 포도 농사 이야기

질문 하나만 해도 되냐는 물음에 두 개도 하라는 싱거운 농담으로 시작된 카를로 올리베로(Carlo Olivero)할아버지와의 인터뷰. 그에게서 포도 농사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지난 5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Piemonte) 주 랑게(Langhe) 지역, 디아노 달바(Diano D'Alba)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카를로 올리베로(Carlo Olivero) 씨와의 인터뷰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 친구들. 저는 이탈리아 북서부 그린자네 카불(Grinzane Cavour) 조금 위쪽에서 포도 농사 짓고 사는 카를로라고해요.


포도를 어떻게 키우냐고 물었나요?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잘 키워 내려면 뭘 더하는 것보다 잘 빼줘야 해요. 과하지 않게. 예를 든다면요? 봄 산책이 즐거워지는 따스한 5월 중순이 넘어가면 포도 순을 꼭 따줘야 해요. 여기 보이는 이 보일 듯 말 듯하는 작은 포도 꽃망울 때문이에요. 포도 꽃망울이 포도잎에 가리면 안 되니까요. 해를 잘 받아야 꽃이 잘 피고, 꽃이 잘 펴야 열매도 잘 맺지 않겠어요?


내 포도밭에선 5월 10일 경에는 포도순 따기를 해줘야 해요. 첫 꽃이 피기 전에. 포도순은 포도꽃이 피기 열흘 전에는 따줘야 해요. 꽃으로 갈 영양분이 포도순으로 가면 아깝지 않수.


포도 순따기를 하는 방법이요? 아주 간단해요. 꽃봉오리가 생긴 가지를 잘 보면 되요. 꽃봉오리 바로 옆에 난 큰 잎이 보이지요? 그꽃봉오리와 큰 잎사귀를 잘 보고, 그 사이로 올라오는 새순을 따주는 거에요.


포도 꽃이 피기 전엔 순따기를 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나야 걸음마 할 때부터 포도밭에서 살았으니 듣고 보고 배웠지요.


포도주도 직접 만드냐고 물었나요? 하하하, 내가 이렇게 대대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남한테 포도주를 사야 되겠어요? 가족들, 친척들 줄 양만큼만 내가 만들어요. 얼마나 만드냐......1년이면 얼마나 되나 봅시다. 일 년에 다미자나(damigiana)를 16개~20개 정도 만들어요. 다미자나 한 통에 와인이 50리터가 들어간다우. 그럼 계산을 해 볼까요? 800~1000리터 되나요?

800~1000리터라니 감이 잘 안 오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쉬워요.  매일 점심 저녁 식사 때마다 와인을 1~2잔 마시면, 한 사람 당 많이 마시면 하루에 반 병을 마시지요. 와인 한 병에 750ml이 들어가지 반 병이 375ml에요. 1년은 365일로 계산하지 말고 40일을 빼고, 325일로 계산합시다. 사순절 40일 동안은 금주니까요. 그럼 이제 어때요? 계산이 되지요? 6~8명이 일 년 중 사순절을 제외하고 매 점심 저녁 식사 때마다 마실 양을 가족 용으로 만드는 셈이에요.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포도주가 딱 세 병 나와요. 포도 나무가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냐구요? 품질 유지를 위해서 한 그루에 3키로만 열리게 키우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어요. 포도 열매 3키로로 포도 세 병을 만드니, 포도 1키로로 포도주 한 병을 만든다는 말이랍니다. 포도나무마다 포도주 세 병이 매달려 있는 상상을 해 봐요, 재밌지 않아요?


난 잠은 밤에만 자요. 언제나 포도밭에 붙어서 일을 하죠. 내 포도밭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에요. 옛날 사람들 한테는 일하는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었나요? 가족들이나 나나 언제나 함께 포도밭에서 다 같이 눈만 뜨면 나와 일을 했죠. 요즘은 그게 되나요, 어디...... 사람 붙여서 일 시키면 한 달에 못 해도 1500유로는 달라고 하니. 아이쿠...... 포도 팔아서 몇 사람 그거 주고 나면...... 안 되요. 그러니 다른 포도 농사꾼들도 최대한 포도밭에 손을 적게 들이고 일을 하는 거지요. 다 둘러봐요 어디 이렇게 포도 순 따주면서 포도나무 키우는 사람이 있나.


좋은 품질의 포도주를 만들려면 우선 포도 나무를 잘 키워야 해요. 그래야 좋은 포도가 열리지 않겠어요? 아무리 좋은 양조 기술을 가진 사람도 안 좋은 포도로 좋은 포도주를 만들 순 없어요.


포도 농사엔 손이 많이 가요. 그런데, 이탈리아는 인건비가 비싸잖아요? 시간당 10유로 주고 사람을 써서 일하면, 세세한 일은 그냥 무시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런데 나는 내 밭에서 내가 일을 하니 돈 생각 안 하고 일하는 거에요. 사람만 사서 관리하는 밭에서 키운 포도보다 직접 포도밭 주인이 관리하는 포도로 만든 와인이 훨씬 좋겠지요?


내가 가진 포도밭이 2.7헥타르 되요.가끔 내 딸 이바나가 와서 도와주긴 하지만 거의 혼자서 포도밭을 돌보고 있어요.

어릴 때 기억을 해 보면, 할머니가 포도밭에 정성을 많이 쏟으셨어요. 할아버지 기억은 없어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서른이 되던 해까지 아주 정정하셨어요. 96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원한 번 가보신 적이 없었어요. 마지막 6개월만 침상에서 지내셨지, 그 외엔 언제나 포도밭에서 함께 일하셨어요. 연세가 많으신 지금 제 어머니처럼요.  


정성과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키워낸 밭에서 일 년에 300톤 정도의 포도를 수확하고 있어요. 가족용 포도주로 만들 포도만 남기고 나머지 포도는 떼레 다 비노(Terre da Vino) 와이너리에 팔아요. 거기서 내가 키운 포도로 네비올로 달바(Nebbiolo d'Alba)가 만들어 내지요.


비록 내 이름 석자를 붙인 와인을 만들어 팔지는 않지만 나를 기억해 주세요. 까를로(Carlo)라는 내 이름은 삼촌한테 받았어요. 1945년 이탈리아에 혁명이 일어났어요. 삼촌은 혁명 운동을 하러 다니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삼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가족들이 슬퍼하고 있을 때, 내가 태어났대요. 그래서 내가 삼촌 이름을 받아서 카를로Carlo 가 됐지요.


나중에 다행히 삼촌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우리 집안에는 큰 카를로와 작은 카를로, 두 명의 카를로가 있었지요. 삼촌은 혁명 때 고생을 하시긴 했어도, 포도 농사 지으시면서 90 넘어서까지 건강하게 잘 사시다 가셨어요. 지금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삼촌도, 숙모도 여기서 보이는 작은 마을 공동묘지에 잠들어 계세요. 제가 일하는 이 밭에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보이니 마음이 푸근해요.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거지요. 할머니나 삼촌이 그랬던 것 처럼, 가는 날까지 매일 아침을 이슬 내린 포도밭에서 시작하고, 해질 녘 잠을 자러 가고 싶어요. 이것이 제겐 행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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