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세계 파스타의 날'에 들어보는 이탈리아 파스타 이야기
매년 10월 25일은 '세계 파스타의 날'입니다. 파스타의 날을 맞아, 파스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지금 파스타의 종주국 이탈리아에 살고 있고, 몇 년 동안 이탈리아 현지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요리해 왔으니까요.
'식사=파스타'라는 공식이 성립할 만큼 이탈리아 인들에게 파스타는 중요합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식사를 할 때 딱 한 접시만 선택해야 한다면 이탈리아 인들은 십중팔구 파스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탈리아 인들의 파스타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어째서 저는 그렇게도 파스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었을까요? 아마도 한 장의 사진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할 때였습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왔었죠. 토리노 궁궐들이 가득한 삐아짜 까스텔로에서 포강으로 향하는 비아 포를 거닐 때였어요. 고풍스러운 상점 진열장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흑백 사진이 한 장을 보았습니다. 바로 한 이탈리아 인이 게걸스럽게 스파게티를 입으로 가져다 넣으려는 장면이었죠.
나중에 이 사진이 ‘Un americano a Roma’(로마의 미국인)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고, 스파게티를 먹는 남자는 당시 이탈리아 국민 배우 알베르토 소르디(Alberto Sordi)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1954년에 개봉한 또다른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 토토(Totò)가 나오는 이탈리아 영화 'Miseria e nobiltà'를 보면 이탈리아 인들의 파스타에 대한 열망을 생생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하얀 조리복의 요리사가 김이 펄펄 나는 토마토 스파게티가 봉긋하게 담긴 수프 그릇을 식탁 가운데에 두고 퇴장합니다. 여자 셋, 남자 둘의 다섯 사람은 식탁에서 거리를 두고 둘러앉아 이글거리는 욕망이 담긴 눈빛으로 군침을 삼키며 스파게티 그릇을 쳐다보지요. 주걱턱으로 유명한 배우 토토는 자기도 모르게 먼저 의자를 조금 당겨 앉습니다. 그러자 0.1초도 안 되어 다른 네 사람도 바로 바짝 식탁 쪽으로 당겨 앉지요. 다섯 사람은 파스타 그릇을 향해 경주를 하듯 의자를 바짝바짝 당겨 앉으며 눈치 싸움을 하지요. 그리고는 누구랄 것도 없이 갑자기 파스타 그릇에 달려들어 스파게티를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움큼 집어 입으로, 그것도 모자라 양복 양쪽 주머니 속으로도 마구 집어넣습니다.
그런데 그 파스타를 먹는 토토의 표정이 또 놀랍습니다. 아주 간절하게 파스타를 원하던 그가 입에 파스타를 집어넣으며 아주 익살스럽고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배가 고파서 안간힘을 쓰며 더 먹으려고 노력하는 그지만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가난에 대한 한탄은 커녕 당장 파스타 한 웅큼이 주는 만족감에 아주 행복한 표정입니다. 이탈리아 인들의 긍정적이고 느긋한 성격이 드러나는 장면 같아요.
어째서 이렇게 이탈리아 인들은 파스타에 진심일까요? 30년째 오스테리아를 운영하고 있는 한 이탈리아 인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파스타란 무엇인가요? 왜들 그렇게 파스타를 좋아하는 거죠?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파트 장으로 일할 때 이탈리아 인들만 오면 파스타를 두 배로 먹으니 파스타를 만들고 요리해서 낸다고 정말 고생했다구요."
나이가 지긋한 이탈리아 인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지금이야 다들 재미로 음식을 먹지 않나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맛 평가나 하구요. 제가 어릴 때 이탈리아 사람들은 배가 고파 살기 위해 음식을 먹었어요. 파스타는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었습니다." 생각해보지 못 한 이유였습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배고픈 시기를 겪었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파스타를 먹는다는 건 건강을 유지한다는 의미였대요. 그런 신념을 가진 부모 세대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파스타를 먹으면서 자라고, 커서도 파스타 한 접시를 먹지 않으면 식사를 했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거였죠. 어쩌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정성스러운 파스타 한 접시는 진정한 소울푸드인 거지요.
극도의 소식을 하는 친구 파올라 쟈코쟈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네가 지금 봐도 그렇지만 내가 참 말랐잖아. 그런데 난 어릴 때부터 그랬어. 어릴 때부터 많이 먹는 걸 안 좋아했거든." 여기서 친구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파올라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마른 사람 =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파올라를 건강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매 식사 때마다 파스타 먹기를 권했다고 해요.
"왜, 옛날에는 파스타를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생각하셨나 몰라.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렇게 어릴 때 부모님이 억지로 파스타를 권할 땐 그렇게 먹기가 싫더니...... 나도 정말 이탈리아 사람이 맞긴 맞나 봐. 오늘도 봐. 어제 바베큐 파티 거하게 했으니 오늘은 정말 한 접시만 먹자 하고선, 밖에 나와서도 파스타를 시키고 있잖아."
어릴 때 물리게 먹고도 파스타와 절교 선언을 할 수 없었던 파올라에게도 파스타를 먹을 때 딱 하나의 원칙이 있답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파스타랑 빵을 같이 먹는 건 안 돼!" "왜? 파스타 먹고 남은 소스를 빵에 찍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제가 궁금해하자, 파올라는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다르게 신랑 안드레아에게만은 절대로 파스타랑 빵은 같이 못 먹게 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안드레아도 참 파스타를 좋아해. 빵도 좋아하고. 그러니 언제나 소스가 남으면 빵을 커다랗게 찢어서 소스를 남김없이 다 먹었지. 그랬더니 야금야금 살이 찌기 시작하는 거야. 우리 나이가 이제 살이 찌면 좋을 게 없잖아." 생각해보니 파스타랑 빵을 같이 먹는 건, 라면이나 짬뽕 먹고 그 국물에 공깃밥까지 막아먹는 거랑 다를 게 없는 이야기가 되는 거였네요.
지금도 이탈리아 인들은 아이들이 함께 외식을 할 때면 아이들에게 파스타 한 접시부터 먼저 시켜줍니다. 아주 어린아이들이라면 짧은 건조 파스타에 올리브 오일이나 버터로만 간을 하거나 토마토소스 혹은 고기 라구 소스를 곁들여 주문하지요. 하지만 포크질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경우엔 짧은 파스타만 허용됩니다. 기껏 외식 한다고 입은 꼬까옷이 긴 파스타를 먹다간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요. 조금 나이가 든 여덟, 아홉 살의 아이들은 스파게티나 따야린 같은 긴 파스타를 시켜 먹을 수 있지요. 하지만 보통 대부분 파스타 한 접시를 먼저 시켜 먹어보고, 그 후에 더 먹고 싶으면 다른 음식을 선택해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스타 하면 어떤 파스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혹시 그 옛날 피자헛에서 먹던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에 미트볼을 곁들이고 파마산 치즈를 듬뿍 올려낸 '토마토소스 미트볼 스파게티', 혹은 생크림과 베이컨을 듬뿍 넣은 까르보나라가 떠오르시나요? 통조림 토마토소스를 그냥 데워서 내오던 신맛 가득하던 스파게티에 파마산 치즈를 듬뿍 올리거나 생크림을 넣은 까르보나라는 미국 식 입맛으로 변형된 파스타입니다.
굳이 커다란 마트나 백화점 수입품 코너에 가서 특별하게 장을 볼 필요도 없고, 별 다른 특별한 재료나 요리 도구가 없어도 집에 있는 재료로 오늘 여러분의 식탁을 근사하게 만들어줄 신선한 생파스타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뭐 요리를 글로 배우냐?' 하시지 말고, 한번 속는 셈 치고 준비해 보세요.
혼밥이 되었든, 오손도손 둘이 되었든, 옹기종기 대가족이 되었든 함박웃음을 짓게 해 줄 간단한 생파스타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식탁에 소울 푸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파스타 '빠빠르델라(Pappardella)'
생파스타를 생각한 이유는, 백화점 수입 코너에 가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수입 유통되고 있는 건조 파스타 선택의 폭이 넓지 않기 때문입니다.
굳이 건조 파스타를 사러 나가지 않아도 집에 있는 재료 밀가루, 계란, 올리브 오일, 소금, 버터 정도만 있어도 뚝딱 생파스타를 만들 수 있거든요. 얇은 따야린이나 딸랴뗄레보다는 굵게 툭툭 썰어내면 되는 빠빠르델레라면 누구든 쉽게 만드실 수 있어요.
혼자가 되었든, 커플이 되었든, 아이들과 함께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시며 차분하게 만드시다 보면 파스타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지실 거예요.
재료 (4인 기준)
중력분 밀가루 300그람, 계란 3개, 올리브 오일 조금, 가는 천일염 한 꼬집
만드는 법
1) 깨끗한 조리대 위나 조리용 볼 안에 분량의 밀가루로 언덕을 봉긋하게 만들어 주세요.
2) 밀가루 언덕 정상에 동그란 홈을 파고 분량의 계란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휘리릭 한 줄기, 천일염 한 꼬집을 채워 주세요. (올리브 오일이 없다면 생략하셔도 문제없습니다.)
3) 포크로 계란 화산 정중앙에서부터 차분하게 회오리를 그리시면서 밀가루를 계란물 안으로 섞어 들어가 주세요.
4) 적당히 계란물이 밀가루에 흡수가 되었다면 손으로 분량의 가루들을 모두 모아 반죽을 치대 주세요.
5) 날밀가루가 보이지 않고, 균일하게 반죽이 만들어질 때까지 반죽을 부드럽게 치대 주세요. 단, 너무 많이 반죽을 만지시면 생파스타 부드러운 식감이 덜해집니다.
6) 반죽을 공 모양으로 둥글게 만들어 주시고, 덧밀가루를 살짝 뿌린 후 랩으로 감거나 비닐 봉지에 넣어 반죽 겉이 마르지 않게 하고 반죽을 쉬게 해 주세요. 휴지 시간은 최소한 30분입니다. 겨울에는 상온도 괜찮지만 여름에는 꼭 냉장고 안에서 휴지 시켜 주세요. 휴지 시간이 짧으면 반죽을 밀었을 때 다시 돌아오는 수축 현상이 심해집니다.
7) 충분한 휴지 후 덧밀가루를 반죽 위아래에 살짝 뿌리고 밀대로 얇게 밀어주세요. 반죽의 얇기는 약 2mm 정도로 칼국수보다 조금 더 얇게 미시면 됩니다.
8) 반죽을 얇게 잘 미셨다면 다시 한번 반죽에 덧밀가루를 살짝 뿌려주세요. 그리고 칼로 썰 때 달라붙지 않도록만 살짝 말려 줍니다. 너무 많이 말리면 반죽을 자를 때 부숴지니 조심해 주세요.
9) 얇게 민 반죽을 롤케이크처럼 돌돌 말거나 잘 접어서 날이 잘 선 칼로 잘라 주세요. 칼로 자르실 때는 한국 성인 여성 두 번째 손가락 굵기 정도 되는 1.3~1.5cm로 잘라 주시면 됩니다.
10) 냄비에 물을 넉넉하게 넣고, 물 양의 10퍼센트 정도의 굵은소금을 물이 끓으면 넣어 주세요.
11) 물이 팔팔 끓을 때 파스타를 넣어줍니다.
12) 파스타의 두께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생파스타가 익는 시간은 2~3분 정도 됩니다. 파스타가 너무 푹 익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파스타가 약간 덜 익었다 싶을 때 파스타를 건져 줍니다.
13) 후라이팬 안에 약간 덜 익은 파스타, 파스타 익힌 소금물 약간, 원하는 소스를 넣고, 소스의 맛이 파스타에 베일 수 있게 천천히 저어 주세요.
좋은 재료로 정성껏 집에서 만든 생파스타라면 거창한 소스 없이도 올리브 오일 혹은 버터만 넣고도 담백한 한 접시의 소울 푸드가 됩니다. 관건은 소금간이니 너무 싱겁거나 짜지 않게 맛을 보며 요리해 주세요. 오일이나 버터에 취향대로 원하는 허브 로즈마리, 세이지 잎 등을 넣으셔도 향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