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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30. 2022

10만원짜리 계란 후라이요?

세계 3대 진미, 트러플의 고향 로에로와 랑게 지역 이야기

계란 후라이 두 개에 이것을 올리니 10만 원?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 트러플, 어디서, 어떤 녀석으로, 얼마나 지불하고, 어떻게 드시겠습니까?




제가 살고 있는 로에로, 랑게 지역은 금요일 저녁부터 화요일까지 호텔과 레스토랑을 예약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습니다. 10월 26일에는 한 신문에서 피에몬테 전체 지역의 호텔 예약이 이미 90 퍼센트  이상 끝났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지요. 도대체 왜 피에몬테일까요?


2022년 11월 1일 화요일은 모든 성인들의 날(Il giorno di tutti Santi), 11월 2일은 모든 망자들의 날입니다. 덕분에 이탈리아 전역은 주에 따라 11월 1일 화요일을 기준으로 휴일을 정합니다. 학교는 보통 10월 31일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문을 닫는 곳이 많지만, 회사에 따라서는 굳이 10월 31일 월요일 하루 회사에 나오게 하지 않고, 29일인 토요일부터 11월 1일 화요일까지 나흘 동안의 짧은 징검다리 휴가를 주는 곳이 많지요.  


나흘간의 꿀맛 휴가. 우중충한 이탈리아 가을 날씨는 어디 가고, 일기 예보도 긍정적입니다. 햇살이 밝으니 해가 높이 솟은 낮에는 여름처럼 무덥고, 날씨는 좋고, 랑게와 로에로 지역의 구릉마다 노랗고 붉게 물든 추수 끝난 포도밭이 외지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포도 추수가 끝난 후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장관인 로에로, 랑게의 포도 언덕들

지로 이탈리아(Giro Italia)로 유명한 포도밭 언덕을 신나게 자전거, 모터 사이클, 오픈카를 타고 질주합니다. 눈앞은 끝없이 이어진 포도밭에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은 귓가를 간지럽히지요.


아름다운 자연환경 외에도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을 랑게와 로에로 지역으로 끌어당기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 피에몬테의 보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인 트러플입니다. 이탈리아 말로는 타르투포(Tartufo), 한국어로는 송로 버섯으로 알려져 있지요.  


트러플? 타르투포? 송로 버섯? 맛보신 분들보다는 그렇지 않으신 분들이 더 많으실 겁니다. 타르투포는 크게 네로와 비앙코, 흑 트러플과 백 트러플로 나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이 트러플로 너무나 유명하다 보니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로에로와 랑게 지역에서 일 년 내내 트러플을 맛보실 수 있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타르투포 팬들 때문에 한여름에도 검은 여름 트러플 스코르쪼네(Scorzone)를 계란 생파스타 따야린 위에 올려 내는 식당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검은 송로버섯과 하얀 송로버섯을 이야기하자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얀 송로버섯의 가치가 월등히 높습니다.

화이트 트러플 속을 한 번 볼까요?


그럼 하얀 송로버섯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보통 버섯과 달리 땅 위가 아니라 땅 속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송로버섯도 버섯이지요. 생물인지라 연도는 물론 매일 그 시가가 달라집니다. 보통 100그람 당 350유로~700유로 정도로 거래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금 더 피부에 와닿게 말씀을 드릴게요. 2주 전, 여러 부위의 고기를 삶은 피에몬테식 수육, 볼리또 미스토(Bolito Misto)를 잘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했습니다. 버터를 살짝 두르고 계란 두 알을 살짝만 익혀 손님 앞에서 타르투포 비앙코를 올려주는 접시 하나가 70유로였습니다. 한국 돈으로 10만 원 조금 못 되는 가치군요.


앞서 말씀드린 식당처럼 타르투포 가격을 접시 안에 포함해 계산하는 곳도 있고, 서빙 전에 그람 수를 정밀 저울로 재고, 손님이 원하는 만큼 접시 위에 서빙을 하고 그 후 그람 수를 정확하게 재어서 그 양만큼 지불하는 곳도 있습니다. 보통 한 접시 위에 올라가는 타르투포는 9~10 그람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원하는 요리 가격 + 35~70유로가 더해진 가격이 손님이 지불하는 가격이 되겠군요. 아!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면 타르투포 가격이 더 뛰게 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타르투포 비앙코 10그람에 1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니...... 공감이 되실런지요? 10그람이라고 하니 아주 짜게 느껴지시겠지만, 타르투포는 땅 속에서 자라는 둥그런 버섯으로 껍질은 딱딱한 편입니다. 타르투포 비앙코는 표면이 매끈하고 껍질이 조금 더 부드러운 편이지만, 타르투포 네로는 껍질이 그야말로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시킬 만큼 우둘두둘하고 딱딱합니다. 향이 좋아서 먹는 타르투포지만 이탈리아 인들은 딱딱한 질감을 즐기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타르투포 칼! 한 손에 손잡이가 쏙 들어오고 두께 조절이 가능한 휴대용 대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타르투포 시즌이 오면 칼가게도 부쩍 바빠집니다. 작은 대패가 달린 타르투포 전용 커터.

타르투포는 얇게 저며낼수록 이질감 없이 음식과 저화를 이루고 향도 더 잘 느낄 수 있지요. 타르투포는 주문과 즉시 흐르는 물 아래에서 씻고 말린 다음 손님상 앞에 모셔집니다. 한 손에는 타르투포, 다른 손에는 타르투포 칼을 든 서버가 막 도착한 뜨끈뜨끈한 요리 위에 종잇장보다 얇은 하늘하늘한 타르투포를 원하는 만큼 올려 주지요. 얇게 잘 저며낸 타르투포 10그람이면 어떤 접시에 올리든 빈틈이 없이 수북하다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음식과 타르투포는 잘 어울릴까요? 손님은 왕인지라 어떤 접시든 일단 주문하시고 그 위에 타르투포를 올려달라고 하면 안 된다는 레스토랑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타르투포와 찰떡궁합인 요리가 있는 건 분명하지요. 타르투포 비앙코 하이 시즌이 되면 이 지역의 거의 모든 레스토랑마다 타르투포 메뉴를 내놓습니다.

피에몬테식 라비올리 고기 속을 넣은 플린도 화이트 트러플과 단짝입니다.



타르투포는 향으로 먹는 식재료라 타르투포보다 향이 강한 식재료는 대부분 배제됩니다. 그래서 심플하고 담백한 음식들이 타르투포의 짝으로 사랑받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요리가 버터에 구워낸 후 소금간만 살짝 한 계란 후라이지요. 버터, 계란을 넣은 뜨거운 음식과 타르투포는 찰떡궁합을 자랑하거든요.

2018년 타르투포 비앙코 박람회 포스터 일부. 계란과 타르투포의 조화를 재치있게 표현했더군요.


물 없이 계란으로만 반죽을 한 후 얇게 썰어내는 생파스타 따야린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르투포 메뉴 단골손님입니다. 올리브 오일은 향과 맛이 강하니 타르투포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야린을 소금물에 살짝 익힌 후 좋은 버터만 조금 첨가해 손님 상으로 나가지요.  

라스케라 치즈 폰두따와 계란 노른자를 올린 심플한 리조또. 화이트 트러플에 잘 어울리는 요리입니다.


버터를 살짝 두른 후 감자를 볶다가 부드러운 감자 크림을 만들어 감자 크림 속에 수란을 퐁당 담궈 숨겨내는 요리는 쓰리 스타 미슐랭에 빛나는 피올라(Piola)의 셰프 엔리코 크리파(Enrico Crippa)의 야심작이지요.


로에로와 랑게 사이의 작은 도시 알바에서는 매해 가을부터 겨울 초입까지 세계 트러플 박람회가 열립니다. 올 해는 10월 8일부터 12월 4일까지 주말마다 9주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타르투포 향을 찾아 이 작은 도시 알바로 몰리겠군요.

어제오늘은 날씨도 좋고, 이탈리아 휴일까지 겹쳐 알바는 물론 와인은 물론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그린자네 카불, 몽포르테, 모라 지역은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타르투포 철만 되면 레스토랑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울상을 짓지요.    

저도 오늘 저녁 식사는 예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거리 때문에 쉽게 발걸음이 나서지지 않던,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알따 랑가 지역 레스토랑으로 겨우겨우 예약할 수 있었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무더운 여름도 좋지만 먹거리가 풍부하고 타르투포와 와인향이 코를 유혹하는 이 가을 어떨까요?

2022년 화이트 트러플 박람회 포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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