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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Nov 11. 2022

악마의 잼을 파는 이탈리아의 착한 부자?

누뗄라가 페이스북을 이겼다?

집 근처 동네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먹다 지난 날짜의 신문을 보았다. "누뗄라가 페이스북을 이겼다!" 발라먹는 초콜렛이 페이스북을 이겼다고? 무슨 일일까?

2022년 11월 3일 <Cueno>지에 난 기사. “미스터 페이스북을 넘어”라는 제목이다.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신문 라스탐빠(La Stampa) 기사였다. 제목도 자극적이다. 'Nutella batte Facebook (누뗄라가 페이스북을 이겼다)' 기사 내용의 주는 이랬다. '알바(Alba) 태생, 58세, 조반니 페레로(Giovanni Ferrero)가 주커버그를 이겼다.' 누텔라 CEO가 세계 부유한 사람들 순위 중 25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세계 부자 순위 25위라고 하면 뭔가 모호하다. 그러니 어린아이도 알아듣기 쉽게 누구나 알고 있는 페이스북을 언급한 것이다.


아직도 그럴까? 여전히 누뗄라는 페이스북을 눌렀을까? 세계 부자 순위는 매일 바뀌지 않나? 어제의 순위가 오늘의 순위와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나는 바로 forbes.com을 통해 포브스 (Forbes) 실시간 세계 억만장자 순위(The World's Real-Time Billionaires) 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이탈리아, 특히 피에몬테 주 알바(Alba) 사람들에게는 안타깝게도 2022년 11월 4일 금요일 기준 세계 자산가 순위에서는 마크 주커버그가 29위, 조반니 페레로는 32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돈 이야기, 순위 이야기는 어쩜 이렇게 표현도 자극적일까? 전체 순위에 앞서 'Today's Winners and Losers'라는 란이 있었다. 자산 가치가 상승한 세 사람과 반대로 하락한 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자산 변동 폭과 함께 공개해 두었다. 재미있는 건 전 세계 1위 부자로 선정된 테슬라(Tesla)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오늘의 패자 3인 중 하나를 장식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 부자 1위가 되어도 루저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다니!


전 세계 누구든 내가 얼마의 자산을 가진 것을 알 수 있고 다른 자산가들과 순위까지 매긴다? 부자가 되는 일은 누텔라처럼 언제나 365일 달콤하지만은 않겠구나.


대신 누텔라를 만드는 기업 '페레로 로쉐'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을 통해 달콤한 미담을 전해 들었다. '나쁜 부자 이야기'에 대한 익숙해진 나는 이런 미담이 의심스러웠다. 인간이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축적하는 가장 빠른 길은 선대의 부를 상속받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없다는 '악마의 잼',  마성의 초코잼 누텔라를 팔아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자가 된 착한 부자 페레로 이야기. 그 초콜렛 부자가 누구보다 자산 가치가 높든 오늘 우리의 일상에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하지만 대대로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근처 농부들, 와인 메이커들은 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알바에 뿌리를 둔 초콜렛 공장 칭찬을 침이 마르게 했다.


"이 지역이 이렇게 잘 살게 된 건 말이지......" 대부분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응? 지금은 금싸라기 땅인 이곳이 한때는 그렇게 가난했었다고?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왕의 와인, 와인의 왕 '바롤로'와 와인의 여왕이라 불리는 '바르바레스코'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주를 대표하는 귀한 와인들이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모스카토 다스티'또한 자동차로 30분만 달리면 주 생산지가 펼쳐진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특히 랑게와 로에로 지역에는 쟈코모 콘테르노(Giacomo Conterno), 도메니코 클레리코(Domenico Clerico), 주세페 리날디(Giuseppe Rinaldi), 체레또(Ceretto), 피오 체자레(Pio Cesare), 프로두또레 델 바르바레스코(Produttore del Barbaresco), 콘트라또(Contratto) 등 이름난 와이너리들이 빼곡하다. 나는 와인 메이커들의 가난했던 시절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근처 농부들, 와이너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전후에 랑게와 로에로 지역이 얼마나 못 살았는지 듣는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할 때, 점심이라고는 어제 식사에서 먹고 남은 말라빠진 빵조각과 그 빵조각을 적셔 먹을 와인 한 병이 다였다고. 와인은 물보다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힘을 주는 음료였다고 했다.

지금이야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 한 병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이지만 그땐 이탈리아 와인 자체의 가치가 낮았다.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는 탄닌이 많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고, 식후에 마시는 소화주 정도로 여겨졌다나? 돌체또(Dolcetto) 12병을 사면 바롤로(Barolo) 1병을 선물로 주는 와이너리가 많았다고 했다.


지금의 와이너리들이 이렇게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페레로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와이너리와 초콜렛 공장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피에트로 페레로는 1942년 랑게의 작은 도시 알바(Alba)에 공장을 세운다. 달달한 걸 좋아하는 이탈리아 아이들의 배를 채워 줄, 값비싼 초콜렛을 대신할 대중적인 간식. 어제 먹다 남은 말라비틀어진 빵조각에 발라먹어도 훌륭한 간식이 될 발라먹는 초코잼을 만들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왜 하필 알바였을까?


알바 근처에는 값비싼 초콜렛에 첨가할 노촐라(Nocciola 헤이즐넛)가 넘치도록 생산되고 있었고, 농가에서는 노촐라 판매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페레로는 닥치는 대로 헤이즐넛을 사들였다.


"페레로에서는 농가를 돌며 노촐라 심기를 권했어요. 농부들은 노촐라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일단 심어 거두기만 하면 전량 매수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건 거예요. 우선 노촐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살게 해 줬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돈벌이가 없어 시골을 뒤로하고 밖으로 밖으로 나가던 시기에 페레로는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했어요. 공장이 있는 알바에서 멀리 떨어진 꼬불꼬불 언덕 위에 사는 사람들도 출퇴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죠. 페레로에서 직접 출퇴근 버스를 운영해 일꾼들을 실어 가고 집까지 다시 데려다줬으니까요.

페레로가 다른 직장과 다르게 이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한 점 하나 더 있어요. 농번기에는 젊은이들이 가족을 도와 집의 농사를 돌볼 수 있게 배려해 준 거예요. 페레로에서 일하기 시작한 젊은이들은 모두 농사꾼들이잖아요. 농부의 자식들이 땅을 버리면 지역 경제가 무너지지요.

페레로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노촐라를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게 중요했을 거예요. 젊은이들이 노촐라 농사를 그만두면 결국 페레로도 초콜렛 생산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구조니까요.

결국 누구도 농사일을 버리고 떠나거나 그 당시 똥값이었던 땅을 팔아 해치우지 않았죠. 페레로 덕분에 노촐라 농사가 돈이 되기 시작했으니까요. 농부들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물꼬가 트인 거예요. 덕분에 사람들은 땅을 잃지 않고 노촐라 농사든, 포도 농사든 지속할 수 있었죠. 페레로가 없었다면 지금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의 영광은 없을 거예요."

 

"물론 페레로도 돈을 벌었죠. 하지만 페레로는 우리도 살게 해 줬어요."


그뿐이 아니다. 페레로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족 중 하나가 아프기라도 하면 회사에서 전적으로 도움을 줬다고 한다. 나라가 어수선할 때 회사에서 사회적 안전망 구실을 한 셈이다.


곧 11월 13일, 노동 운동을 하다 분신한 전태일의 기일이 다가온다. 각성제를 먹어가며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밤낮없이 미싱을 돌리던 어린 미싱공 소녀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자신의 몸에 스스로 기름을 붓고 죽음으로 외쳐야 했던 전태일의 처절한 노동 운동은 이 먼 나라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알바에서는 필요가 없었다.


'그들도 돈을 벌었지만, 우리도 살게 해 줬다'라는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아주 오래전, 알바 사람들이 리구리아 바다쪽 사보나(Savona)로 소금과 앤쵸비를 사러 떠나던 길이 보이는 사보나 광장(Piazza Savona) 중앙에는 얼마 전 새로운 동상 하나가 세워져 화제가 되고 있다.

도시 알바를 상징하는 새로운 랜드마크의 이름 또한 역시 ‘알바 Alba’.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앳된 소녀 모습을 한 동상은 페레로 본사를 키워낸 도시 알바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페레로에서 헌정했다.

알바의 사보나 광장(Piazza Savona) 중앙에 세워진 동상 ‘Alab 알바’

알바에서는 지금도 바람만 불면  하고 초콜렛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사회적으로도 악취가 아니라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페레로. ‘일출 동음이의어인 도시 이름 알바(Alba), 앳된 소녀의 모습을  동상 알바처럼 페레로가 아직 떠오르고 성장할 기업이  이유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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