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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Nov 15. 2022

버터의 온도

냉동 버터부터 끓인 버터까지

요즘 한국에선 ‘소금빵’이 히트더군요. 브리오쉬 반죽 정 중앙에 기다란 둘째 손가락 굵기의 가염 버터를 통째로 넣어 구운 빵. 뜨거울 때 먹는 게 진리겠지요. 먹어보기 전에 벌써 아는 맛일 겁니다. 누군가는 소금빵이 우울증 치료제보다 낫다더군요.


그런데, 차가운 소금빵은 어떨까요? 여전히 누군가의 소울 푸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브리오쉬 정중앙에 가염 버터를 존재감 있게 툭 하니 넣고 소라 모양으로 돌돌 말아 구운 빵. 뜨거울 때야 버터가  엄청난 풍미로 영혼을 도닥여주겠지만, 차가운 버터 조각을 깨무는 맛은 그닥 반갑지 않겠지요.


오늘은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신박한 버터, '버터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버터는 수퍼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 네모지게 포장된 냉장고 속의 차가운 버터가 아닐까요? 제가 어릴 적만 해도 버터는 동네 수퍼에서 쉽게 파는 식재료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식문화에 버터가 쓰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엄마는 카레 라이스를 만들  풍미를 조금  좋게 하려고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버터를  귀퉁이 잘라 양파, 감자, 당근을 볶을  쓰셨지요.


차가운 버터를 댁에서는 어떻게 사용하세요?

그럼요! 핫케이크에 버터가 빠질 수 없지요! 막 구워낸 핫케이크를 층층이 쌓은 뒤 메이플 시럽이나 꿀이 살짝 흘러내리게 취향껏 올리고, 마지막으로 네모지게 자른 작은 버터 조각 하나를 핫케이크 위에 수줍게 올려 줘야지요.

홈베이킹을 즐기는 분이시라면 바삭한 파이지나 쿠키를 만들 때도 냉장고에서 막 꺼낸 냉을 먹인 차가운 버터를 사용하시겠지요. 작업을 하면서 버터가 녹아버리면 반죽이 질척해지고 오븐에서 구워 나온 후에도 파이나 쿠키가 파삭한 맛이 덜하니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국인들이 차가운 버터를 그대로 즐기는 일은 드문 것 같아요. 이탈리아에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가 막힌 삼합이 있습니다. 'Pane, burro e acciughe', 바로 빵, 앤쵸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버터지요.

‘Pane, burro e acciughe’, 빵, 버터, 앤쵸비의 삼합

입이 심심할 때나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 아페리티보를 준비해야  , 빵을 한입 크기로 잘라 토스트하고  식힙니다.  구워 식힌 바삭한  위에 버터를 얇게 잘라 올려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금에 절인  오일에 보관한 앤쵸비를 올리지요. 이탈리아 대부분의 가정에 언제나 있는 식재료 , 버터, 앤쵸비 삼총사는 구운  덕분에 바삭하고, 버터와 앤쵸비 덕분에 부드럽습니다. 버터의 부드러운 고소함과 앤쵸비의 짭짤함, 구운 빵의 구수함이 아주  어울리지요.  


뜨거운 버터는 어떠세요? 글 초입에 언급했던 갓 구워져 나온 '소금빵' 반죽 속으로 사르르 녹아들어 엄청난 풍미를 자랑하는 버터 말이죠. 빵 속에 녹아든 버터를 논하자면 십여 년도 더 전에 유행했던 '로티번'도 소환해야겠지요. 한겨울 막 구워져 나온 겉은 파삭하고 속은 뜨끈뜨끈 부드러운 로티번 하나면 김이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죠. 역시 뜨거운 버터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날이 차가워지는 계절에는요.


그런데 일부러 버터만 녹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까요? 많은 양의 버터를 녹여보신 적이 있나요? 오늘은 버터를 중탕으로 녹여 볼게요. 중탕이 귀찮으시면 아주 은은한 약불에 버터를 녹이셔도 되지만 부글부글 끓을 정도가 되면 안 되고, 말 그대로 사르르 녹아야 하지요. 어? 그런데 아랫부분은 노랗게 투명하게 녹고 위에는 하얗게 뭐가 둥둥 뜨지요?

버터를 중탕해서 녹일 때 하얗게 떠오르는 층을 걷어내 주세요.

그 둥둥 뜨는 부분을 잘 걷어내주세요. 그리고 투명한 노란 액체만 내열 유리 용기에 얌전히 조심스레 담아 주세요. 마지막 아래의 불투명한 부분은 버리시고요. 그리고 서늘한 곳에서 굳혀주시면 됩니다. 자! 정제 버터(Burro chiarificato) 완성입니다!

도무지 조심스럽게 분리된 층들을 걷어낼 자신이 없다구요? 그렇다면 잘 녹은 버터를 잘 씻어 말린 우유곽 속에 그대~로 얌전하게 실온에서 잘 식히세요. 잘 식은 버터는 서늘한 곳에 밤새 두셔도 되고, 냉장고에 두셔도 됩니다. 그럼 버터가 어떻게 될까요? 그럼요, 다시 굳었겠지요? 잘 굳은 버터를 우유곽에서 분리해 볼까요? 우유곽을 잘 잘라 벗겨줍니다. 짜잔~ 근데 이 버터가 조금 이상하지요? 단단한 부분과 수분이 있는 부분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때 수분이 있는 부분, 불투명한 부분을 확실하게 제거해 주시면 됩니다.

인도에서는 기(Ghee)라고 불리는 이 정제 버터는 어디에 쓸까요? 버터를 요리에 쓰다 보면 잘 태우게 되지요? 정제 버터를 사용하시면 그런 걱정을 더실 수 있답니다. 기름기 적은 퍽퍽한 가슴살로 치킨까스를 만들어 드실 때 튀김유 대신 정제 버터를 사용해 보세요. 새로운 풍미의 신세계를 만나실 겁니다.


앗! 귀찮아서 버터를 중탕으로 못 녹이고 그냥 약불 위에서 녹이다가 버터가 끓어버렸다구요? 어허~ 거뭇거뭇 뭔가 빵가루 태운 것처럼 불순물도 보이기 시작한다구요? 그 기름, 아니 그 버터 버리지 마소서! 왜냐구요?

그 버터도 역시 귀~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브라운 버터를 '헤이즐넛 버터(Burro nocciola)'라고 부른답니다.

헤이즐넛 버터 바닥에 가라앉은 부분. Burro nocciola

버터를 이렇게 살짜쿵만 태워(?) 버리면 정말 헤이즐넛을 갈아 넣은 듯 고소한 맛과 향이 일품이랍니다. 이탈리아식 옥수수 죽 뽈렌따(polenta)에 뜨거운 헤이즐넛 버터를 살짝 둘러 먹지요. 끓는 물에서 막 건져낸 감자 뇨끼(gnocchi)에 벌벌 끓는 뜨거운 헤이즐넛 버터에 치즈 가루를 뿌려 먹기도 합니다.

브라운 버터는 밀폐용기에 넣고 냉장이나 냉동 보관하다 베이킹을 할 때 사용해도 좋답니다.

차갑게 굳힌 헤이즐넛 버터를 쿠키나 케이크를 만들 때 일반 버터와 조금 섞어 사용하면 풍미가 아주 색달라 지지요.   


네? 잠깐만요! 방금 냉동이라고 하셨나요? 네, 냉.동. 버터도 냉동이 가능해요? 그렇답니다. ^_^ 버터를 사긴 했는데 조금만 사용하고 나니 처치 곤란인 당신. 버터를 한 번에 쓰실 만큼만 잘라 소분한 후 달라붙지 않게 사이사이에 오븐 종이를 넣어 밀폐 용기 속에 넣고 냉동해 보세요. 버터를 오래오래 잘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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