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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Jul 04. 2020

거기가 어디요? 못난이도 미녀 소리 듣는다는...

호박꽃도 꽃이더라, 이태리 미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 '호박 같은 내 얼굴 우습기도 하구나.' 

한국에서는 못 생긴 사람을 보고 호박 같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호박꽃은? 어허..... 꽃은 꽃인데 호박꽃일세..... 


언제나 나는 호박꽃이었다. 크고 동그란 눈에, 오똑 한 코, 작은 계란형 얼굴. 비단실 같은 참머리를 가진 동생은 예쁜이였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엄마가 고른 우리 자매의 옷에서 엄마의 취향이 또렷이 드러난다. 새하얀 장미가 목 주위에 달린 사랑스러운 티셔츠와 빨간 반바지는 여동생, 땡땡이 무늬 티셔츠에 초록색 반바지는 내 차지였다. "아이고 우리 예쁜이" 동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금 시무룩해진 나는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을 듣는 동생이 부러웠나 보다. 어느 날 우물쭈물하다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엄마, 나도 예뻐요?" 엄마는 미적 기준 앞에서는 칼이다. "아~ 니는 입 주위가 쪼매 새첩지. 솔직히 말해 이쁜 얼굴은 아이다, 맞제?" 어린 마음에도 충격이 컸다. "아, 나는 예쁘지 않구나."


작은 눈, 튀어나온 광대뼈, 각진 턱. 높지는 않지만 코만은 선이 오똑해서 친구들이 물어보곤 했다. "솔직히 말해라. 니 코 한 거제?" 아, 이런. 코 하나만이라도 오똑하면 안 되겠니? 수술할 거였음 눈부터 했다.

내 주위에서 친구는 물론 친구 어머니까지 심각하게 내게 성형수술을 권하기도 했다. 실핀으로 눈꺼풀 위에 살짝 선을 긋는다. 그럼 아주 잠깐 쌍꺼풀 선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다. "엄마야, 바라 바라. 훨씬 낫데이." 쌍꺼풀 테이프를 붙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도무지 쌍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왜 안 하는데? 우짤라꼬 그라노?" 내 얼굴이 정말 심각하게 '어쩌려고 그러나'수준이었나 보다. "무서워서요." 그렇다. 무서워서 못 하겠더라. "아이코, 무섭긴 뭐가 무섭노? 잠깐인데." 한국에선 수술보다 여자가 못생긴 게 더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오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볼로냐 어린이책 박람회에 가느라 숙소를 찾는데, 호텔도 에어비앤비도 구하지 못해 카우치 서핑을 찾아보던 때였다. 첫 집주인이었던 프랑스 인 이베트는 내가 카우치서핑을 한다고 하자 아주 심각학 얼굴이 되었다. "차라리 그 남아있다는 호텔 스위트를 예약해. 내가 돈을 줄게. 카우치 서핑이 뭐야? 왜 돈을 안 받고 재워주는 거야? 이상해." "괜찮아, 이베뜨. 호트스 후기 보고 평이 좋은 사람들한테만 신청했어." " 그래도, 안 돼. 넌 너무 예뻐서 위험해." "응? 이베뜨. 뭐라고?" 


태어나서 한 번도 듣지 못 한 말. '예.쁘.다'


나를 보고 예쁘다고 했다. 뭐라고? "넌 정말 예쁘구나." 귀를 의심했다. 내가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걸까? "눈이 어쩜 그렇게 이쁘니?" "어머, 눈이 정말 아몬드처럼 생겼어." 단춧구멍 같다고 놀림받던 내 눈이다. 그런데 아몬드 같다고? "어머나, 난 니 광대뼈가 너무 부러워." 광대 나온 여자 팔자 세고 억세 보인다고 했건만. 여기서는 내 광대뼈가 부럽단다. "와, 머릿결이 정말 좋다." 머릿결 좋은 건 참빗으로 빗어도 슥슥 내려가는 참머리 내 동생 이야기 아니었던가. 난 말축 머리 반곱슬인데. "어쩜 이렇게 피부가 좋니? 한국인들은 너처럼 다 피부가 좋니?" 응? 한국 갔더니 동생이 깜짝 놀라던 내 피분데...... 손을 잡아끌며 돈은 자기가 댈 테니 어서 피부과 가자고. 뭐지? 이태리 사람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나의 미적 기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엄마께 바로 전화를 했다. "엄마, 여기 사람들이 저보고 예쁘대요." "뭐라꼬? 어데가?" "몰라요. 눈이 예쁘대요." "하하하, 그 사람들이 참말로 친절하네. 착각 하지 마래이, 다 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겉치레로 하는 말에 비행기 타지 말고 정신 차려라." 아, 네, 어머님.


참 이상하다. 작은 눈, 높은 광대뼈, 각진 턱. 나는 똑같은 나인데. 한국에 가면 못난이, 이태리 오면 이쁜이란다. 


그래서 몇 년째, 이태리에서 미녀로 사는 걸로.


한국에서 심각하게 성형 권유를 많이 받았거나, 심각하게 자신이 못 생겼다고 생각하시는 여성분들, 성형 수술 상담 전에 쌍꺼풀 테이프, 인조 속눈썹 떼고 이탈리아 여행부터 오시길.  


저처럼 한국에서는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호박꽃은, 이탈리에서는 초여름부터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습니다. 다음 글은 '이탈리아 꽃 요리'(https://brunch.co.kr/@natalia0714som/2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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