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꽃요리 1
우리는 왜 꽃을 먹지 않을까?
내 고향 부산에서는 누런 단풍 콩잎도 장아찌로 만들어 숨 죽여 먹고, 손으로 만지면 앗 따가워 비명을 지르게 되는 억센 바늘 털이 솜솜이 박힌 호박잎도 쪄서 먹는다.
왜 억센 잎은 먹으면서 보드라운 꽃은 먹지 않을까? 꽃요리하면 봄에 붉은 진달래를 찹쌀 반죽 위에 올려 지져 내는 화전이 떠오르지만..... 그것도 풍류를 즐기느라 꽃놀이 때나 먹을 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꽃을 많이 먹는다. 계절별로 먹는 꽃요리를 몇 가지 시리즈로 소개하려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꽃은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는 추운 겨울부터 초봄까지 아티쵸크. 여기 말로는 카르쵸피다.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카르쵸피 비닐하우스 시범 재배가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바람 세기로 유명한 사르데냐 섬이 카르쵸피로 유명하니, 제주도가 카르쵸피 재배에 딱이지 싶다.
응? 아티쵸크? 카르쵸피? 그게 뭘까? 거대한 엉겅퀴 꽃봉오리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 점보 사이즈 엉겅퀴과 아티쵸크는 꽃봉오리 보드라운 속잎과 꽃 바로 아래 연한 줄기를 먹는다.
꽃봉오리라는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모양새. 지옥문을 지키는 거대한 용의 손발톱을 모아 꽃봉오리를 만든 듯하다. 줄기고 잎이고 꽃봉오리고 뾰족한 가시가 달리지 않은 곳이 없다. 꽃잎 하나하나 끝마다 악마의 발톱 같은 가시가 달려 있다.
꽃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맨손으로 덤볐다가는 큰 코 다친다.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뾰족한 가시가 손가락이며 손바닥으로 파고든다. 한 번 박힌 가시는 도무지 빼기가 쉽지 않다. 그뿐인가, 줄기며 꽃을 잘라낸 자리마다 꽃물이 온 손과 손톱 밑을 검게 물들여 그 검은 물이 일주일은 간다.
가시 투성이에, 장갑을 끼지 않으면 온통 손톱 밑과 손가락 살을 검게 물들이는 아주 까다로운 놈이지만, 겨울부터 추위가 가시지 않는 초봄까지만 제철인지라, 그때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 아티쵸크가 나오는 계절이면 카르쵸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카르쵸피를 먹으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카르쵸피를 만지기 전에는 두꺼운 장갑부터 낀다. 굵은 줄기 밑동은 두껍고 단단해서 어떤 때는 칼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카르쵸피의 억센 잎이며 줄기며 꽃봉오리 끝을 잘라낼 때는 날카로운 톱날이 달린 커다란 톱같은 빵칼이 제격이다. 가시 투성이 커다란 잎을 툭툭 쳐서 잘라내고, 꽃봉오리 바로 아래 보드라운 줄기만 짧게 남기고 억센 줄기도 잘라낸다. 먹는 부분보다 버리는 부분이 더 많다. 웬만한 음식물 봉투는 무시무시한 가시 덕에 다 구멍이 나 버리니 버릴 때도 곤욕이다.
드디어 꽃봉오리와 연한 줄기만 남으면 이제 필요한 건 레몬, 차가운 물, 그리고 스피드다. 장갑을 끼고 꽃봉오리 끝 가시를 잘라내고, 겉의 억센 꽃잎을 떼 낸 단면마다 반으로 자른 레몬을 쓱쓱 재빨리 문지른다. 레몬즙을 발라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예쁜 초록색이 색이 검게 변한다. 억센 줄기 껍질과 겉의 단단한 꽃잎을 제거하고 반을 자른 후 차가운 레몬수에 퐁당퐁당 던져 넣는다. 카쵸피는 워낙 억센 꽃인지라 속의 암술 수술도 바늘처럼 거세다. 반을 잘라 작은 칼 끝으로 속의 바늘 같은 암수술도 잘 도려낸다.
겉의 억센 꽃잎들도 떼내고, 속의 보드라운 꽃잎과 꽃과 가까운 연한 꽃대를 먹는다. 아무리 한 성격 하는 구석이 있는 녀석이지만, 꽃은 꽃인지라 살짝 달큰한 맛이 있다.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오일과 말돈 소금, 다진 샬롯과 이탈리안 파슬리 조금에 갓 짠 레몬즙을 살짝 뿌려 샐러드를 만들어 피에몬테 산 하얀 암소 파소네 육회와 함께 곁들이면 제격이다.
겨울이나 초봄에는 카르쵸피로 유명한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 가자. 얇게 채 썬 아삭하고 달큰한 생 카르쵸피에 숙성 건조한 어란 보따르가를 인심 좋게 올리면 달큰한 꽃과 짭짤한 생선알의 샐러드가 기가 막힌다.
샐러드만 맛이던가? 얇게 썰어 튀겨도 바삭하니 향기롭게 맛있고, 꽃잎 사이사이에 속을 채워 오븐에 부드럽게 구워내도 맛있다. 부드러운 줄기와 꽃잎만 볶다가 물을 붓고 잘 익힌 후 곱게 갈아 리조또를 만들고 해물을 올려도 기가 막힌다. 바베큐 할 때 벌건 숯 위에 꽃잎 끝이 하늘로 가게 통째로 놓고 이탈리아 파슬리, 마늘, 올리브 오일, 소금만 술술 뿌려 익혀 겉의 두꺼운 껍질을 호호 불며 까서 먹어도 하하호호 함께 웃으며 먹기에 제격이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생으로는 보지 못 했다. 대형 백화점에서 병조림으로만 보았을 뿐이다. 병조림 속에서 누렇게 뜬 얼굴로 숨죽이고 있는 카르쵸피는 아무래도 슬퍼 보였다.
한국에 가면 카르쵸피 씨앗을 한 아름 가져가 제주도 농부에게 선물하고 싶다. 훗날 한국에 정착하면 제주도나 남해에 텃밭을 만들고 작은 레스토랑을 열어도 좋겠다. 봄이면 직접 만든 숙성 어란 보따르가, 질 좋은 한우 육회, 갓 수확한 카르쵸피 샐러드를 만들어야지.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함께 와인 한 잔을 기울이고 싶다. 상쾌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햇살 좋은 날이면 더 좋다. 꽃향기 가득한 신선한 카르쵸피 샐러드에는 주세페 리날디 와이너리의 상큼한 프레이자, 마리나 코피 와이너리의 티모라소가 좋겠다.
이탈리아 꽃요리 두 번째 이야기 "호박꽃을 먹는 N가지 방법"은 https://brunch.co.kr/@natalia0714som/2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