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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23. 2022

이태리 오셨으면 아페리티보, 하셔야죠?

무더운 여름 늦은 오후, 살랑살랑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햇살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시원한 시간이 되면 여러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나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삼삼 오오 광장으로 모입니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가벼운 기분 전환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고, 배는 살짝 고파 올 때가 정확히 '이 것'을 즐길 시간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늦은 오후는 물론, 점심을 먹기 전 배가 출출할 때나 과하지 않게 가볍게 딱 한 잔 하고 싶을 때 하는 '이것', 무엇일까요? 이것을 즐기기 위해 이탈리아 사람들은 밀라노 비나리오 강가 지구와 토리노의 베네토 광장을 꽉 채우지요. 지역에 따라 Happy Hour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딩동댕! 맞습니다. 바로 '아페리티보(Aperitivo)'입니다.  


실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페리티보 사랑은 계절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겨울이면 겨울 아페리티보 사랑은 사계절 내내 지속됩니다. 다만 따뜻한 햇살이 귀한 겨울에는 햇살을 찾아 자리를 잡고, 따뜻한 봄과 서늘한 가을에는 이른 아침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든 환영, 무더운 여름은 더위를 피해 해가 질 무렵부터 아페리티보가 시작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퇴근 시간은 한국보다 빠른 편이고, 저녁 식사 시간은 한국보다 느린 편이지요. 퇴근 후 뭔가를 먹어보자 싶어도 시간이 어중간하고, 그렇다고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리자니 배가 슬슬 고파올 겝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늦다니, 아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체 몇 시가 되어야 저녁을 먹냐구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저녁 8시, 8시 반은 되어야 저녁 식사가 시작됩니다. 이탈리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친구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저녁 6시, 늦어도 7시면 저녁을 먹던 저는 저녁 8시 반에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는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저녁 식사를 그렇게 늦게 시작하니, 허기는 살짝 가려주고, 저녁 식사 전 입맛은 돋우게 해 줄 아페리티보가 필요한 거죠. 늦은 오후에서 이른 저녁 시간이 되면 밀라노 두오모 꼭대기가 보이는 리나 쉔 떼 백화점 꼭대기 테라스 혹은 나빌리 강가 아페리티보 촌, 토리노의 베네토 광장이나 산 살바 리오 지역은 의자를 더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린답니다.


이탈리아 친구가 "아페리티보 하러 갈까?" 하면 "가볍게 한 잔 하러 갈까?" 하는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과는 다르게 그 한 잔이 보통 정말로 한 잔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니 섭섭해하거나 놀라지는 마세요.


자, 시원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광장 테이블 한 켠에 자리를 하고 앉아 볼까요? 서버가 다가와 물어봅니다. "Da bere? 음료는 뭘로 하시겠어요?" 여러분이라면 와인이나 맥주, 혹은 칵테일 중 뭘 선택하시겠어요?


와.... 와인이요? 음.... 저라면 와인은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와인 리스트가 특별히 좋은 곳이거나 전문적으로 와인을 판매하는 에노테카(Enoteca)에 아페리티보를 하러 앉으셨나요? 그렇지 않은 이상, 아페리티보 전문 바나 아페리티보 카페의 와인은 겨우 기본만 한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은 화이트냐 레드냐 정도만 물어보는 경우가 많죠. 서버가 테이블에서 와인을 따라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화이트냐 레드냐 색으로만 알 수 있는 이 정체불명의 와인은 잔에 이미 따라져서 나오기 마련이죠. 보통은 병이 아니라 몇십 리터짜리 박스에 들어있는 '비노 스푸조(Vino sfuso)'와인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술은 실패 없이 갓 짜서 나오는 시원하고 신선한 생맥주, 혹은 민트 잎과 라임이 들어간 모히토(Mohito), 혹은 달콤 쌉싸름한 아페롤(Aperol) 베이스의 스프리츠(Spritz)를 맛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렇다면 안주는요?  보통은 음료를 주문하면 허기를 가시게 해 줄 살라미(salami), 프로슈토(prosciutto), 프리타타(frittata),  조각 피자, 포카챠(focaccia), 절인 올리브, 치즈 조각 등이 함께 나오죠. 이탈리아에서는 스뚜찌끼니(stuzzichini)라고 불리는 작은 핑거 푸드들은 물가가 비싼 지역에서는 깍쟁이처럼 주문한 음료 수에 딱 맞게 세어서 나오기도 해요. 그러니 입맛에 맞는다고 딱 인원수대로 나온 미니미 조각 피자를 하나 더 먹었다간 괜한 일에 마음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한 잔이 더 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면 남 눈치 보지 말고 한 잔 더 주문하시면 됩니다. 주머니가 얇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대학가에서나 프레시맨이 많은 직장인들은 보통 더치페이를 합니다. 본인이 마신만큼 계산해서 낼 준비만 하시면 되는 거죠. 어떤 땐, 이렇게 정확하게 본인이 주문한 만큼 더치 페이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땐 사람 수만큼 나누어 더치 페이를 하기도 하니 내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몇 유로 더 지불하게 생겼다고 속상해 하진 마세요. 즐거웠던 아페리티보 시간이 고작 그 몇 유로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치즈나 살라미 몇 조각으로는 도저히 성이 차지 않고, 그렇다고 따로 저녁을 먹고 싶지도 않으시다구요? 그러시다면 아페리티보가 아니라 아페리체나(apericena)를 하는 곳을 찾아보세요. 아페리체나는 아페리티보(Aperitivo)와 저녁 식사를 뜻하는 체나(Cena)의 합성어입니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략 10유로~20유로 사이의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면 아페리티보처럼 음료 한 잔에 저녁을 대신할 음식들이 함게 나온답니다. 음료 한 잔에 배가 찰 만큼 푸짐하게 한 접시가 함께 서빙되거나, 뷔페식으로 원하는 만큼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도 있답니다.


너무 춥거나 덥지 않다면 답답한 실내가 아니라 확 트인 시원한 공간에서 아페리티보, 어떨까요? 강이 흐르는 밀라노의 나빌리(Navigli) 지구나 토리노의 포강(fiume Po) 앞 드넓은 베네토 광장(Piazza Veneto)은 어떨까요? 바닷가가 보이는 리구리아 친꿰 떼레(Cinque Terre)의 작은 마을도 좋습니다. 아페리티보 한 잔으로 이탈리아 여행의 여유를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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