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윤 Sep 07. 2022

대체 와인을 어떻게 고르라는 겁니까?

소믈리에가 세 권의 와인 리스트를 가지고 나타났다. 어쩌라고?

"언니, 와인 좀 추천해봐. 언니 이탈리아 산다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스타벅스에 마주 앉아 대학원 동기 지영이가 물었습니다. "어떤 와인 좋아하는데?" "나? 나는 달달한 와인 좋아하지."" 달달한 와인? 그건 후식용 와인인데?" "아, 뭐, 모스카또 다스티(Moscato d’Asti)이런 거 있잖아. 난 그런 와인이 좋아." "그게 후식용이잖아. 디저트 용으로 같이 먹는 거." "언니, 다 필요 없고, 내 취향은 확실해. 모스카또 다스티라고."


맞습니다. 본인의 취향을 본인이 확실히 알면, 누가 뭐라 해도 그 와인이 맞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후식용으로 먹든 말든, 모스카토 다스티도 여름에 시원하게 쿨링 한 후 과일과 치즈와 함께 아페리티보로 한 잔 하면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와인 고르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 이유는 우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와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고민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제 동기 지영이와는 다르게 본인의 와인 취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네, 와인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을 위한 와인을 골라야 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마실 와인을 골라야 한다면 어깨가 제법 무거워질 겝니다.

 

와인을 고르는 일은 언제, 누구와, 어떤 자리에 있느냐? 그리고 어느 정도의 버짓을 사용하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과감하게 비싼 와인을 골랐는데, 그 와인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다면 와인을 고른 사람의 얼굴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에 사색이 되겠지요.


보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식사 메뉴와 함께, 혹은 식사를 고르고 난 후 와인 리스트가 고객에게 전해집니다. 와인 리스트가 너무 얇고 빈약하다면 선택의 폭이 좁아 곤란하고, 반면 와인 리스트가 너무나 두꺼워 백과사전 수준이라면 와인 고르기란 참 쉽지 않아질 겁니다. 아직 뭘 골라야 할지 모르는데 시간은 흐르고, 소믈리에는 다가와 무슨 와인을 원하는지 묻습니다.


본인의 취향이 확실하고, 다만 시간이 조금 부족한 경우라면 시간을 조금 더 가지겠다고 말하면 됩니다. 하지만 정말로 뭘 골라야 할지 몰라 머리가 새하얗게 될 지경이라면, 몇 가지 자신의 기준을 확실히 하고 소믈리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자신의 기준 없이 그저 소믈리에에게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소믈리에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고르게 되거나, 그 레스토랑에서 어서 팔아치우라고 푸시를 받은 와인을 고르게 되거나, 생각보다 과한 지출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질문하는 걸 귀찮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소믈리에와 함께 와인을 골라보는 건 어떻까요? 이렇게 말이죠.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군요. 추천 좀 해주시겠어요?"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Fermo(가스가 없는 와인을 말합니다.)를 원하십니까?"

"기포가 없는 와인을 원합니다."

"화이트를 원하시나요, 레드를 원하시나요?"

"그것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둘 다 좋아해서요. 저희가 선택한 메뉴에 어울리는 와인을 선택해 주세요."

"이 지역 와인을 원하십니까,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와인을 원하십니까?"

"이왕이면 이 지역 와인을 맛보고 싶습니다."

"이 지역 토착 품종은 아니지만 랑게에서 재배한 리즐링(Riesling) 품종으로 빚은  에또레 제르마노(Ettore Germano) 와이너리의 헤르주(Herzu), 혹은 네비올로(Nebbiolo) 품종으로 빚은 콘테르노 알도(Conterno Aldo) 와이너리의 파봇(Favot) 2018년 빈티지 어떠십니까?"

"두 와인은 어떤 특성이 있습니까?"

"헤르주는 화이트지만 생선과 육류에 두루 어울리고, 콘테르노 알도의 네비오로는 깔끔한 맛이 일품입니다.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으니 가볍게 드시려면 2016년 빈티지보다는 조금 젊은 2018년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네비올로를 맛볼까요? 아...... 이 지역에서 생산했다는 헤르주도 궁금하긴 하네요...... 음...... 죄송하지만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헤르주는 45유로, 파봇은 55유로입니다. 가격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음...... 고민은 되지만..... 이번엔 헤르주를 맛보겠습니다.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하고 싶네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와인의 가격은 만족도와 항상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항상 비싼 와인이 만족스러운 건 아닐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스토랑마다 에노테카(enoteca)마다 와인의 가격을 다르게 매기기 때문입니다. 그 와이너리와 레스토랑의 관계가 좋아서 아주 좋은 가격에 와인을 들여왔다면, 고객에게도 좋은 가격으로 와인이 제공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물론, 그것과 상관없이 비싸게 와인 가격을 매기는 곳도 있습니다.) 반면, 신생 레스토랑이라 처음부터 제 값을 모두 주고 일반 소비자 가 비슷하게 와인을 들여왔다면 고객에게도 비싼 가격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비싼 와인이 아닌데도 맛과 향이 훌륭하다면 만족도가 커질 것이고,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게 주고 뚜껑을 열었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꼭 그 와인 라벨을 기억하게 되겠지요. "내 다시 저 와인을 내 돈 주고 사 마시나 봐라!"


즐겁고 스트레스 없는 저녁 식사를 위해서는 와인에 얼마나 소비하고 싶은지를 먼저 마음속으로 결정하시면 좋습니다. 저는 보통의 저녁 식사라면 외식에서 40-50유로가 넘는 와인은 잘 고르지 않습니다. 그래야 마음에 드는 와인이라면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한 병 더 시킬 수 있지 않겠어요?


누군가와 동행한 식사이고 전체 식사비를 동일하게 나누어 내야 한다면, 미리 와인 소비에 대한 합의도 어느 정도 하시고 가시면 좋습니다. 한 번은 소믈리에 친구와 식사를 하러 갔다가, 그 친구가 너무 최상급의 와인만 선택하는 통에 전통 오스테리아에서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주고 나와 속이 쓰렸던 적이 있습니다.


와인은 식사의 일부이자 생활의 일부입니다. 너무 과한 소비를 하시면 위에도 지갑에도 구멍이 나니 현명한 소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조직의 마녀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