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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Sep 06. 2022

내가 조직의 마녀였을까?

어디 준비된 요리사 없나요?

아말피 해안가 원스타 레스토랑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아말피 작은 마을 친구네와 더 가까이서 살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내린 결정이었다. 겨울 휴가 기간 동안 아말피에 내려가 셰프를 만났고, 임금 협상도 잘 되었다. 단, 내 자리를 넘겨줄 만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으니 몇 달 여유를 달라는 게 나의 조건이었다. 기다려 주겠다, 가능하면 부활절 전에만 내려와 달라는 게 이전할 레스토랑 측의 요청이었다.


후임자를 찾는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어째서 번드르르한 이력서와는 다르게, 어디서 이런 요리사들만 다 모였을까? 길에서는 멋지고 잘생긴 남자들만 보이던데, 어째 소개만 받으러 나가면 어디서 이런 분들이 오셨을까 싶었던 대학 미팅 때처럼 말이다.


후식 파트 보조로 있던 사라(Sara) 소개로 쁘로바(prova)를 왔던 조르조(Giorgio)는 자신 있게 생선 필렛을 뜰 수 있다고 말하더니, 그 비싼 생선 산 피에트로(San Pietro)를 정말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쥐포로 만들어 놓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재빠르고 깨끗하게 작은 큐빅으로 잘라야 했던 최상급의 마르티니 18개월 된 파소나 암소 고기를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자르는 데, 어찌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셰프 왈, “암소가 기다리다 못해 벌써 산으로 살아 돌아가겠다.”


프랑스에서 왔던 피에르는 첫눈에도 한 덩치 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뚝뚝 육수를 내도  만큼 땀을 흘렸는데, 긴장만 하면  심해져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민첩하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 키친 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튀어나온 배가 툭툭 집기 손잡이들을 자동으로 건드렸다. 며칠을  만든 폰도 브루노 소스를 옮겨 닮은 작은 소스 용기 손잡이를 배로 건드렸을 , 셰프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 피에르 너도 안녕.


셰프 부부의 친구의 딸이었던 엘레나(Elena)는 웃음도 많고 말도 많았다. 모두가 초집중해서 최대한 빨리 밑준비를 해야 하는 서비스 전 시간, 쾌활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농담을 하며 천천히 바질 잎을 따서 용기에 옮겨 담았다. “저기, 미안한데, 라디오 좀 꺼 주면 안 될까?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어.”

그녀는 칼솜씨 또한 놀라웠다. 이탈리아 차이브 격인 에르바 치뽈리나(erba cipollina)를 잘고 균일하게 자르라고 했더니 길고 짧은 엄청나게 다양한 사이즈의 작은 초록 원통형의 고리들을 만들어 내느라 새하얀 도마 전체를 시퍼렇게 물들여놓았다. “저기..... 차이브 자르기 전에 칼을 다시 갈긴 한 거야? 물이 많이 나오면 풋내가 나고 빨리 변해서 못 쓴다고. 미안하지만, 이 차이브는 직원 식사 용으로 쓸게.” 그날 저녁 직원 숙소에서는 울며불며 큰 소리로 남자 친구에게 부엌에 마녀가 하나 있다며 전화로 일러바치는 통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40대 후반에 뉴욕 밥보 레스토랑의 실습생, 주방 노예 생활을 자처했던 기자 빌 버포드는 그의 주방 선임 엘리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가 내 당근을 버렸어. 전부 다!” 주문한 대로 자르지 못 한 당근을 선임이 다 버렸던 것이다. 그는 당근이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그는 주방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치욕을 느끼지 않고 지나간 날이 없었다고.


조직에는 꼭 개가 한 마리씩 있다고 했다. 그 개가 보이지 않는다면 의심하라. 당신이 그 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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