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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Sep 05. 2022

천천히 요리하는 즐거움

이탈리아 시골에 사는 미국인 부부 이야기

띠링! 와츠앱으로 문자가 왔다. 레슬레와 로버트가 레슬레 생일을 위한 비비큐 파티를 연다는  것이었다. 오~ 비비큐 파티~! 고기! 고기!


지난번 레슬레가 만든 미니 버거 빵이 그렇게 촉촉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배워 보기로 했다.


“레슬레, 혹시 도움 필요해? 나 아침에 갈 테니까 햄버거 용 미니 번 만드는 거 알려 줘.”


약속을 하고 아침 9시 30분, 레슬레 집에 도착했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공간, 레슬레와 로버트의 주방은 작지만 굉장히 잘 정돈되어 있다. 모든 물건들이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와이너리 이름이 적힌 여러 크기의 와인 상자 수납장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작은 공간까지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활용한 것을 보니 작은 시골집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주방은 이 둘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시골에 사는, 머리가 새하얀 중후년의 두 미국인이 자신의 개인 생활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요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훌륭한 사업을 위한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 식탁 한쪽 벽면 위에는 이 지역의 중요한 포도밭과 와이너리 대형 지도 3개 걸려 있고, 벽면 중앙의 애플 대형 스크린에서는 이 지역의 유명한 와이너리,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 슬라이드가 돌아가고 있었다. 대리석 조리대와 작은 4인용 식탁이 있는 그들의 좁은 부엌은 쿠킹 레슨, 쇼룸, 와인 테이스팅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 작은 부엌에서 시작한 그들의 사업, 로버트의 와인 투어와 레슬레의 쿠킹 레슨은 올 해는 만원, 내년 예약까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자, 이젠 미니 햄버거 번 반죽을 만들 차례. 주방의 조리대로 사용하는 대리석 상판 탁자 위에는 감자 몇 알, 레몬, 뻬뻬론치노, 갖가지의 우스토프 칼이 올라와 있었다.  


“뭐부터 할까?”


그녀는 우선 감자 껍질을 깎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작게 조각을 내 달라고. 감자 조각 크기가 작을수록 감자가 빨리 익을 테니까.


“근데 이 감자는 어디 쓸 거야?”


푹 삶아 곱게 으깬 감자는 햄버거 빵 반죽에 넣을 거라고 했다. 빵을 오랫동안 촉촉하게 유지시켜주는 비결이 삶은 감자였던 것이다.


껍질을 벗기고, 잘게 자른 감자를 물에 넣고 불을 켰다.


“오케이, 다음은?”

“당근 껍질을 까줄래? 코슬로에 넣을 거야.”


코슬로 용 당근 껍질을 벗기고 강판의 큰 구멍을 택해 얇고 작은 조각이 되도록 북북 문질렀다. 손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동안 레슬레는 햄버거 고기 패티에 넣을 캐러멜 양파를 준비했다. 그녀가 옆에서 양파 껍질을 벗기고, 얇게 채를 써는데, 아, 슬슬 발동이 걸렸다. 난 옆에 있어도 이렇게 매운데 그래도 잘 자르네? 싶던 찰나,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미안해.”

“내가 자를까?”

마지막으로 남은 양파를 해치우지 못하고 후퇴한 전우를 위해, 내가 나섰다. ‘뭐, 그렇게 맵지는 않네, 칼이 좋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눈물샘이 와르르 무너졌다. 눈물이고 콧물이고 방향을 모르고 흐르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도 훌쩍이며 코를 팽팽 풀었다. 어찌어찌 마지막 양파까지 다 얇게 잘랐다.



“펑펑 울어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날, 양파 볶음 준비하면 되겠다.”

얇게 채 썬 양파는 버터 조금과 함께 팬에 들어갔다.

“태우지는 말고 갈색이 될 때까지 자주 들여다보고 저으면서 잘 볶아야 해.”

자주 들여다보고, 관심을 쏟으면서 천천히 천천히 양파를 갈색이 돌 때까지 볶기는, 아주 단순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나 성격이 너무 무심한 사람은 어려운 준비 과정이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빨리 양파 갈색을 만들고 싶어서 화력을 높이다 양파를 태워 버리거나 캐러멜화 되기도 전에 불을 꺼버려서 양파의 그 진한 단맛에 이르지 못한다. 반면, 무심한 사람은 양파를 너무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고 방치해서 태워 버린다.


둘 다 다시 한번 눈물을 닦고 코도 닦고 난 뒤, 나는 당근 업무로 복귀. 채칼 같은 강판에 당근도 모두 해치웠다. 다행이었다, 내 살을 갈아내지 않아서.


어느새, 감자가 푹 익었다. 반죽에 필요한 물만큼을 감자 삶은 물에서 덜어내고, 채에 받쳐 물기를 뺀 감자를 곱게 으깼다. 너무 뜨거운 물에서는 이스트가 죽어버리니, 감자 삶은 물과 으깬 감자가 식도록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면서 와인 한 잔 어때?”

“오예! 고마워!”

화이트 와인을 즐기는 레슬레는 리즐링, 나를 위해서는 네비올로를 열었다.


와인을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펄펄 끓어 김이 나던 감자물은 어느덧 손가락을 넣어도 화들짝 놀라지 않는 은은하고 기분 좋은 따뜻한 온도가 되었다. 맥주 건조 이스트를 따스한 감자 물에 부을 차례. 이스트가 죽지 말라고 먹이가    숟가락도 넣어 주었다. , 이스트가 부글부글 감자 꿀물 속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레슬레는 모든 재료를 (거의) 한꺼번에 넣는 올-인(All-in)기법을 썼다. 보통 글루텐 형성이 잘 되도록, 올리브 오일이나 버터 같은 지방은 가장 나중에 넣는데, 레슬레의 편안한 주방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레슬레는 잠에서 깨어난 이스트 감자 꿀물 안에 버터, 계란, 밀가루를 모두 함께 넣었다. 그리고는 키친 에이드 반죽기를 저속으로 돌렸다. 끈기를 가지고 기계를 주시하면서. 한참이 지나자 끈적이던 반죽은 한 몸을 이루며 플라네타리아 표면에 붙지 않고 동그랗게 자기들끼리 뭉치는 모습이 보였다.


“자, 이렇게.” 그녀는 손가락으로 반죽을 눌러 단단하고 무른 정도를 확인했다. “이 정도 되었을 때 반죽을 멈추면 돼.”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너무 끈적이거나 물렁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대리석 조리대 위에 밀가루를 살짝 뿌리고, 햄버거 번이 될 반죽을 쏟아냈다. 손반죽으로 마무리를 한 뒤, 동그랗게 잘 모양을 잡아 발효를 시킬 준비를 했다.


“미안, 어제 양배추 사는 걸 깜빡했어. 양배추 없는 코슬로는 안 되잖아.” 내가 가도 되는데 굳이 같이 가겠단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묶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자 그녀의 외출 준비는 끝이 났다.


그녀의 차에 올라 창문을 모두 열고 작은 식료품 가게까지 가는 길, 이웃의 텃밭에 자라고 있는 주렁주렁 열린 토마토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헤이즐넛 숲 아래 후두둑 떨어져 굴러다니는 헤이즐넛을 구경했다.



레슬레는 무엇을 하든 서두르는 법 없이 굉장히 느릿느릿 움직이고, 말도 느리게 조용조용한다. 그런 그녀 옆에 있어서 그럴까? 참, 평화롭다. 느릿느릿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음식을 준비하는 일,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한국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할 때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눈썹까지 휘날리며 요리를 할 때도,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천천히 요리를 해 본 적이 없구나. 내 급한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고,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없는 내 삶의 조건이 그러했으리라.     


멀리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온 이 미국인 부부, 느릿느릿 내게 빵을 가르쳐주는 레슬레는 왜 이 이탈리아 작은 시골 네이베(Neive)에서의 삶을 선택했을까?


레슬레 집 앞 길은 좁디좁아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다, 레슬레 집 앞 흙길 주차장은 차 두 대만 주차가 가능하다. 시골이라 차가 없이는 발이 묶이니, 레슬레와 로버트의 차만으로도 주차장은 만원. 손님이라도 오게 되면 이웃의 양해를 구하고 차 두 대를 모두 이웃의 마당으로 옮겨야 한다. 그들의 오래된 농가 주택은 너무 좁아서 쿠링 레슨 때는 2명이 이상적이고 4명 이상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오래된 농가 주택에는 제법 큰 텃밭이 딸려 있고, 농기구를 두던 창고 자리가 두 개나 있다. 텃밭 가까이 창고는 그대로 농기구 창고로 쓰고, 부엌 옆 창고는 레슬레의 그림 작업실 겸 튀김실로 쓴다. 튀김실? 저번에 나를 초대했을 때는 한국식 양념 치킨을 한다고 그녀의 작업실은 온통 닭튀김 냄새로 뒤덮였었다.


부엌 앞 작은 마당과 경사가 있는 언덕에 만들어져 있는 2층짜리 텃밭이라는 공간도 기가 막히게 멋들어진다. 낮게 잘 정돈된 텃밭 바로 앞은 온통 멀리 바르바레스코와 과레네(Guarene) 성이 보이는 포도밭 구릉이다. 집 밖 좁은 길에서 바라보면 참 답답해 보이는 집인데, 집 안에서 반대쪽 풍경을 바라보면 언덕 위에 지어진 집이라 눈에 걸리는 것, 거슬리는 건물 하나 없이 그야말로 탁! 트여있었다. 매일 저녁 마당에서 일몰을 바라보는데 계절에 따라 해가 떨어지는 지점이 바뀐다고 했다.


아..... 충분하다. 그들이 이곳의 삶을 선택한 이유.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도 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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