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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Sep 04. 2022

와인과 물, 아무 거나 마시기 없기!

물 한 모금에도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예수의 기적을 사회문화적, 정치 경제적, 철학적,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논술하라.'라는 문제를 마주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다.'라는 한 줄 답안으로 만점을 받았다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물이 얼굴을 붉히니 와인이 되었다! 참 재치있는 대답이군요. 와인과 물을 차별 없이 같은 위치에 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테이블을 안내받아 자리에 앉으면 음식과 와인을 주문하기 전에 제일 먼저 물을 주문할 건지 물어봅니다. 보통은 생수 혹은 탄산수 중 선택하지요.

그런데 몇몇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다양한  브랜드를 싣고 선택하게 하는  메뉴를 따로 준비한 경우도 있어 놀란 적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몰리 (Michelangelo Mammoliti) 미슐랭 투스타를   시점의 마데르나사(Madernassa) 레스토랑으로 기억됩니다. 소믈리에가 사진까지 깔끔하게 인쇄된 여러 페이지의  메뉴를 가지고 나타나더군요. 덕분에  하나 고르는 데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이렇듯 어디서든 물은 음식보다도 와인보다도 먼저 식탁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습니다. 레스토랑을 찾아오느라 목이 마른 사람들이 우선 물부터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통은 생수냐 탄산수냐만 물으니 가장 빨리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사 시 와인과 물에 대한 농담을 자주 합니다.


보통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병으로 주문하면, 테이블에서 와인 병을 열게 되지요. 와인을 잔에 따라 시음하기 전, 소믈리에는 코르크 마개를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습니다. 혹시 와인이 병 안에서 변질되었을 경우, 마개에서 나는 냄새를 먼저 맡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르크 마개에서 와인이 변질된 냄새가 날 경우, 와인을 마셨는데 맛이 이상할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Sa di tappo."라고 합니다. 와인에서 와인 향과 맛이 아니라 변질된 코르크 뚜껑 냄새가 난다는 뜻입니다.


재치와 위트를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웨이터가 주문한 물을 테이블에서 뚜껑을 돌려 따고 물을 따라 주면, 한 모금 맛을 보고는 마치 와인인 양 "괜찮네요. 뚜껑 맛이 안 나요."라며 싱거운 농담을 하기도 하고, 식사를 할 때 물은 손도 대지 않고 와인만 계속 마시는 친구를 보면 "맞아, 물은 몸에 안 좋지."라고도 농담을 하기도 하죠.


"물은 몸에 좋지 않다."라는 말은 역사가 있는 농담입니다.  지금과 달리 물은 그다지 믿을 만한 마실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포도주로 유명한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지역의 농부들은 믿을 수 없는 음료인 물이 아니라 포도주와 마른 빵을 새참으로 챙겨 밭일을 하러 갔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인들은 와인에 대한 취향이 다양하듯이 물에 대한 취향도 매우 확고합니다. 보통 무더운 여름에는 차게 식힌 화이트 와인 혹은 도수가 낮은 레드 와인을 찾고, 추위가 찾아오면 제법 묵직한 와인들을 많이 즐깁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화이트 와인만 마시는 사람, 레드 와인만 마시는 사람도 있지요.  

물도 그렇습니다. 생수만 마시는 사람, 탄산수만 마시는 사람, 심지어 생수와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구 집에 초대되었거나, 레스토랑에 초대된 저녁 자리, 호스트가 어떤 물을 마실 건지,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물어본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초대받은 자리인데 괜히 까다롭게 보이는 건 아닐까?'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탈리아가 괜히 미식의 나라가 아닙니다. 음식에 대한 취향은 물론, 물에 대한 취향도 존중해주는 게 당연합니다. "그냥 먹어라, 그냥 마셔라."는 건 있을 수 없지요. 그러니 명쾌하게 자신의 취향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 유명한 개그우먼 김신영이 연기한 밥집 아주머니가 이탈리아에서 식당을 열어 식사 주문을 받으면 아마도 속에 천불이 날 겝니다. 그 유명한 멘트 "이 바쁜 시간에 불백, 김치찌개, 된장찌개, 계란말이 이렇게 따로따로 시킨 사람 누구야? 우리 아저씨 아픈 거 몰라? 진짜 이렇게 할 거야? 나는 이라믄 장사 못 해!"


 단! 이렇게 식탁에서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이탈리아에도 예외는 있군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는 레스토랑에서 구성한 이른바 '세트 메뉴(이탈리아에서는 양을 조금씩 줄여 여러 접시를 맛볼 수 있게 구성한 세트 메뉴를 Menu degustazione라고 합니다.)'를 주문할 경우, 테이블에 앉은 사람 모두 같은 메뉴를 선택할 것을 권유하는 곳이 많습니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플레이팅에 여러 코스로 나가다 보니, 혼란을 줄이기 위한 것이죠. 여러 코스를 단품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맛보려면 메뉴를 통일해야 하는 아쉬움이 이탈리아에도 있군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메누 데구스따찌오네를 선택하고 싶은데, 한 사람만 단품을 먹고 싶은 경우에는 그 한 사람에게 괜한 눈치 주지 마세요. 센스 있게 웨이터에게 "죄송한데 이 친구가 오늘 점심 식사를 조금 늦게 하고 와서요. 혹시 이 세트 메뉴 중에서 몇 접시만 빼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부탁해볼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말만 예의 있게 해도 식탁 위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답니다.


탄산수를 좋아하지만 언제나 당신을 위해 생수를 주문했던 남자 친구!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당신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탄산수를 시켜버리는군요. 어허...... 이것은 정말 관계의 적신호일 수 있습니다. 물 한 모금에 마음 상하시지 마시고, 평소에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탄산수 한 병, 본인이 좋아하는 생수 한 병 시키시길 바랍니다. 식탁 위의 평화가 세계 평화의 기초입니다. 기본 유닛에 균열이 오기 시작할 때 사회 전체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도 식탁에서 물이든, 양파를 넣고 든 빼고 든, 너무 눈 흘겨보지 마시고 서로의 선택권을 존중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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