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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Sep 08. 2022

이탈리아에는 ‘후추 맛’나는 와인이 있다?

한식과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 와인, 뻴라 베르가 (Pelaverga)

네? 정말입니까? 고양이 오줌 냄새나는 와인이 있다더니, 이젠 후추맛이 나는 와인이 있다구요?


네, 후추 맛이, 그것도 조금도 아니라 훅! 치고 들어오는 와인이 있습니다.


바로 뻴라 베르가(Pelaverga)입니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주 랑게의 작은 언덕 마을 베르두노(Verduno) 토착 품종 뻴라 베르가 삐꼴라(Pelaverga Piccola) 100퍼센트로 만든 와인이지요.  


"정말 신기한 노릇이지? 후추 맛이 나는 와인이라니! 어째서 이렇게 후추 맛이 날까?"내가 뻴라 베르가 맛을 보고 신기해하자, 이탈리아 친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지더군요. "후추를 넣었겠지!" "뭐라는 거니?" "와인 숙성하는 통에 후추를 넣었으니 후추 맛이 이렇게 강하게 나지 않겠어?" "헉! 진짜면 완전 사기극이잖아." "예전에, 아주 예전에, 이탈리아 와인 질이 낮았을 옛날이야기야. 작은 나무 오크통에서 발효한 스모키 한 나무향이 확 나는 일부 지역 프랑스 와인을 미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겠어?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 많이 토스트 한 작은 나무통 바리크에서 와인을 숙성해야 미국에도 팔리고 돈이 되는구나'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오크통 하나가 돈이 얼마야? 그게 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나? 아니지. 그래서 나무통 바리크 느낌을 내려고 정말로 몇몇 영세한 포도 농사꾼들이 포도 숙성통 안에 오크 나무 조각을 둥둥 띄워놨더라나. 농담 아니야."


"그럼, 니 말은 DOC 등급의 와인을 후추 맛을 내려고 몰래 후추를 넣어서 숙성했단 말이야?" 친구는 하하하 웃었습니다. "뻴라 베르가 품종 포도에서도 후추 맛이 날까?" "나겠지. 그 포도에 그 와인 아니겠어?" "아이 참, 그렇게 마음대로 혼자 추측해서 대답하지 말라구."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바로 발걸음을 돌려 뻴라 베르가로 유명한 랑게(Langhe) 지역의 작은 언덕 마을 베르두노(Verduno)  향했습니다. 목적지는 뻴라 베르가를 생산하는 와이너리  하나인  꼴레(Bel Colle). 목적은 뻴라 베르가 포도알에서 후추 맛이 나는지 확인하기!



베르두노 언덕 위에서 벨꼴레 와이너리 마케팅 담당 루까 씨를 만났습니다. 아직 뻴라 베르가 포도는 수확 전이었습니다. 구욧 방식으로 일렬로 죽 늘어선 포도밭에 옅은 보라색의 뻴라 베르가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 혹시 뻴라 베르가 포도알 하나만 따먹어도 돼요?" "그럼요." 다행히 짧은 여행을  보람이 있게 포도알을 맛보게 되었어요. 뭔가 마지막에 살짝 맵싹한 맛이 돌기도 하는  같긴 한데..... 어디 하나  맛을 볼까요? 아리송합니다. 뻴라 베르가 와인이 주는  치고 들어오는 강한 후추 맛은 포도알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포도알에서는 후추 맛이 안 나네요?” 무식함을 용감하게 드러내는 질문 앞에 루까 씨는 하하하 웃었죠. “가끔 그런 질문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베르두모 마을의 흙이 향신료 맛을 더해주는 겁니다. 석회, 모래, 석고가 섞인 땅이 그렇게 후추향을 내게  주지요. 사실 뻴라 베르가뿐만 아니라 베르두노에서 재배되는 다른 와인들도 약간씩 모두 향신료 맛이 납니다. 땅의 특성과 포도 자체의 특성이 만나 후추 맛을 만들어  것이지요."


뻴라 베르가는 1900년도 이전부터 이 작은 마을 베르두노에서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필로세로 해충 때문에 자취를 감췄다가, 육칠십 년대까지는 식사 시 먹는 저렴한 반주용 와인 vino da tavola 정도로 인식되고 소비되었어요. 그러다 1986년 베르두노 마을 장과 몇 개의 와이너리가 합심해  DOC레벨을 받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왕의 와인이라면 익히 바롤로(Barolo)가 먼저 떠오르실 거예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뻴라 베르가도 왕이 사랑하는 왕의 와인이었답니다. 카를로 알베르토(Carlo Alberto) 왕은 무더운 여름이면 베르두노 성(Castello di Verduno)에 와서 지내는 걸 즐겼는데, 뻴라 베르가 품종으로 빚은 와인을 아주 사랑했다고 해요.


"이 지역 아르네이스는 거의 수확이 끝났던데 뻴라베르가는 아직인가요?" "포도 수확은 매 년마다 다른데, 올해는 조금 빠른 편인데, 이 삼 주 정도 후로 예상하고 있어요. 하지만 매일 변화를 잘 지켜봐야 하죠. 보통 뻴라 베르가 수확은 네비올로 조금 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햇살이 아직 뜨겁군요. 안으로 들어가서 한 번 맛보시겠어요?" "고맙습니다." 익히 아는 맛이지만, 뻴라 베르가가 만들어지는 땅 위에서 다시 한번 맛보고 싶었어요. 루까 씨가 잔에 따라준 뻴라 베르가는 역시 옅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와인 색이 옅은 이유는 포도 껍질 자체 색이 옅기 때문인가요? 몇 년도 산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 드시는 와인은 2021년 빈티지입니다. 뻴라 베르가는 오래 묵혀 드시는 와인은 아닙니다." "뻴라 베르가의 평균 수명은 얼마나 되지요?" "수확 연도 기준으로 2년을 넘기지 않고 드시는 게 좋아요. 2년이 지나버리면 뻴라 베르가 특유의 향과 맛이 많이 사라집니다." "올해는 조금 수확이 빠르다고 하셨고, 보통 10월 초쯤 뻴라 베르가 수확을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어느 시기에 마시는 게 가장 좋나요?" "수확한 뻴라 베르가는 공식적으로 이듬해 3월 1일부터 마실 수 있습니다. 나무통 숙성은 하지 않습니다.  1년 전후 숙성한 지금이 마시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5개월 후면 마실 수 있다니 굉장히 빨리 마실 수 있는 젊은 와인이군요."


너무 진하지 않은 붉은색에, 코로 맡으면 옅은 체리향과 후추향이 알쏭달쏭,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아! 후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와인, '뻴라 베르가(Pelaverga)'. 숙성도 짧게, 평균 수명도 짧게, 나무통 숙성도 하지 않는 젊은 와인답게 12도에서 18도 정도의 온도로 시원하게 즐기면 좋다고 하는군요. 너무 무겁고 심하게 기름진 음식보다는 가벼운 음식이 잘 어울립니다.


"후추 맛이 나는 와인이니...... 후추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살라미와 함께 즐기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떤가요?" "네, 아주 클래식한 페어입니다. 가벼운 아페리티보는 물론 무겁지 않은 생선, 육류와도 잘 어울립니다."


이탈리아 한 작은 언덕 마을의  뻴라 베르가는 머나먼 작은 나라 한국, 담백하면서도 강한 맛이 공존하는 한식에도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채소와 고기를 넣은 잡채, 해물을 듬뿍 넣은 동래 파전, 돼지고기 편산적과 잘 어울리겠군요.  양식으로는 후추나 디종 머스터드를 곁들인 담백한 돼지 안심 스테이크와 함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아주 작은 마을에서 소량만 생산되는 와인이라 한국에서 뻴라 베르가를 맛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가을, 트러플 버섯(tartufo)을 맛보러 랑게에 오신다면, 토리노나 밀라노에 출장을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조금 방향을 틀어 뻴라 베르가, 한 번 맛보시러 와 보시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이어진 포도밭 언덕이 당신에게 손을 흔들며 반겨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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