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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Sep 09. 2022

한국 와인바에 대한 유감

한국에서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기 어려운 이유

와인, 좋아하십니까? 어느 나라 와인을 즐기시나요? 얼마짜리 와인을 고르십니까?


저라면, 보통의 아페리티보에서는 2인 기준 30유로 내외의 와인에 편하게 손이 갈 겁니다. 점심 식사라면 40유로, 저녁 식사라면 외식에서 50유로가 넘는 와인은 잘 고르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이 와인의 천국 바롤로(Barolo)와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근처라서 가능한 이야기일 겝니다.


한국에 수입되어 들어가면 이 지역에서 생각 없이 술술 마시던 와인도 큰맘 먹고 주문하게 되더군요. 한국에서는 어떤 와인바를 가든 10만 원 이하의 와인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부분 프랑스 와인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한국에서 질 좋은 와인을 식사 때 편하게 마시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에 수입되고 유통되는 와인의 가격과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분이 좋은 날은 술도 술술 더 잘 들어가게 되지요. 한국에 잠깐 들어갔던 올해 6월, 어스름이 지는 초저녁 기분 좋게 남동생과 한우 숯불구이 한 점 하러 갔습니다. 동생이 잘 아는 집이라 미리 콜키지를 주고 캐리어에 애지중지 넣어 갔던 바르바레스코 한 병을 땄지요. 담백하면서 고소한 한우의 깨끗한 맛과 부드러운 탄닌감이 예술인 바르바레스코의 조화는 기가 막혔습니다. 고기가 어디로 넘어가는지, 술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 었죠. 와인을 별로 즐기지 않던 남동생도 "누나야, 이 와인이 참 깨끗한 맛이다?"하고 말이 많지 않은 동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찬을 내뱉었죠. "그렇지? 포도를 잘 키우고, 와인을 정직하게 잘 빚으면 굳이 많은 기교를 부릴 필요가 없지. 맛있지? 한 잔 더 받아라, 동생아!" 그런데, 어라? 술병에 바닥에 구멍이 났는지 벌써 술이 없습니다. 이렇게 아쉬울 수가...... 그렇다고 바르바레스코 마시다가 고깃집에서 파는 묻지 마 와인을 마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고로 술은 올라가지 내려갈 순 없는 것이거늘...... 그래서 화이트 먼저 마시고 레드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레드 와인 한 병 먼저 따고 화이트 와인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지요. 이탈리아에서도 친구들끼리 랑게 로쏘로 시작했다가 네비올로, 바르바레스코, 바롤로 순으로 와인의 질을 높여 가며 술자리를 합니다. 혹은 도수가 낮은 와인으로 시작해 좀 더 묵직하거나 도수가 높은 와인으로 가지요. 빈티지가 젊은 와인에서 오래된 와인으로 옮겨 가기도 합니다. 아! 사설이 길었군요. 요는! 아쉽게도 술이 없더라!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갈 때 와인을 제대로 챙겨가지 못 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 캐리어 가방 공간과 무게 제한의 한계와 1인 1병까지만 세금 면제라는 무시무시한 세관의 검열 때문이었지요. 어쨌든, 급하게 나가느라 좋아하는 와인을 한 병만 챙긴 저의 불찰이 컸습니다.


한 날은 이탈리아에서 함께 일하던 주방 동료와 한국에서 재회 술자리, "지원 씨, 이래서 내가 우리 동네 질 좋은 랑게와 로에로 작은 와이너리들의 와인을 한국에 수입해서 팔고 싶은 거예요. 와인 선택이 폭이 너무 좁고, 너~ 무 비싸요. 도대체 한국에만 들어오면 와인이 몇 배나 가격이 뛰는 거예요? 이렇게 와인이 한 병에 10만 원 남짓 하니, 우리가 기분이 좋아도 두 병 마시긴 부담스러운 거 아니냐고요." 숯불 불판 위에 놓인 장어를 뒤집으며, 한 마디 했습니다.


"아서라!" 우리 동네 질 좋은 작은 와이너리들의 와인을 한국에 소개하고 수입하고 싶다고 했더니, 무역 회사이서 일하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와인은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소량으로 팔리다 보니, 와인을 수입하기엔 큰 어려움이 있다더군요. 무게며 공간이며, 아서라는 겁니다. 더구나 한국의 와인 시장은 큰 업체에서 독점으로 쥐락펴락 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이젠 백화점은 물론, 대형 마트까지 와인 시장에 뛰어든 지 오래라 소규모 와인 수입 업자가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롯데 백화점 지하 와인 코너를 잠시 들렀습니다. 이탈리아 와인이 어떤 게 들어와 있나 보고자 함이었죠. 역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영향인지 체레또 와이너리의 몬소르도(Monsordo)가 들어와 있더군요. 7만 원의 가격은 둘째 치고, 우선 한국에 믿고 마시는 질 좋은 이탈리아 와인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이탈리아 와인은 이게 단가 하고 돌아설 때, 행사로 나와 있는 와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바롤로 보이스의 주역 도메니코 클레리코(Domenico Clerico) 와이너리의 돌체또(Dolcetto) 와인이 행사에 덤핑으로 나와 있는 겁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가정에서 사랑받는 돌체또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가장 잘 맞을 와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더구나 도메니코 클레리코라는 보증 수표 와이너리의 와인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행사 매대에서 발견하다니 놀라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요.


동생과 야간 쇼핑, 이마트였던가요? 묶음으로 파는 마치 커다란 창고 안에 들어간 듯 한 느낌의 대형 마트였어요. 그곳에서 이탈리아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시칠리아 와인, 파쏘 피샤로(Passopisciaro) 와이너리의 에트나 로쏘(Etna Rosso)를 본 겁니다. 이탈리아 안에서 소매로 거래되는 가격이 25~30 유로 선인 걸 볼 때, 한국에서 7만 원 선에서 판매되고 있는 와인은 가격이 딱 두 배만 뛴 셈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에노테카나 레스토랑에 앉아서 먹게 되면, 딱 그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게 되거든요. 한국에서도 마트에서 구입한 소주 한 병을 술집에서 마시게 되면 같은 품질의 소주 가격이 몇 배로 뛰는 것처럼요.

와인을 수입할 때 독점 계약을 하기로 유명한 금양 인터내셔널이라는 큰 와인 유통업체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걸 보니 역시 파쏘 피샤로 와이너리와 금양 인터내셔널이 독점 계약을 맺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무역 도사 친구가 제가 '와.인.수.입.' 넉 자만 입에서 꺼냈을 분인데 "아서라" 말렸구나 싶었지요. 업체야 독점 계약을 맺었든 뭐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탈리아에서도 인정받는 좋은 품질의 확실한 와인을 좋은 가격으로 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싶었습니다.   


"지원 씨, 나중에 술집 할 거라면서요? 요리가 맛있는 술집. 그러면 지원 씨가 술집 할 때, 맛있고 저렴한 이탈리아 와인 좀 들여놔요. 와인 바에 갔더니 이탈리아 와인이라고는 바롤로밖에 없으니 원! 어디 부담스러워서 마시겠어요?"


한국에서 ‘와인 바’하면 이름에서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 종류의 폭이나 질은 오히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에노테카나 와인 전문점에서 질 좋은 다양한 와인을, 마트에서는 다소 저가의 와인이 주를 이루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와인 바’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면서 정말 전문성을 가진 와인 전문 바를 찾기 어려운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한국에 ‘요리가 맛있는 술집’, ‘착한 와인 리스트가 있는 집’,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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