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단지 사랑하는 부모님이어서가 아니라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이였기에 나의 손과 발이 되고 말이 되어주신 부모님은 나의 온 우주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단했고 위대했고 엄청났다. 하지만 오늘 순간부터 나의 우주는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아졌고 모든 동작과 반응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인간이 나이가 드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럼에도 슬픈 것은 나의 모든 것이었던 그들의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좁아지고 세상은 점점 그들의 세상을 무대 뒤꼍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이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장담컨대 한국은 가장 빠르게 변하는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영광에 걸맞게 우리 속담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실제 체감상으로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나는 평균 3달에 한 번은 한국을 가는 편인데 갈 때마다 변하는 한국에 적응하느라 하루에서 이틀은 어안이 벙벙하다. 이번에 몇 달 만에 한국을 갔을 때 역시 그새 변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중에서도 어느새 널리 퍼진 키오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갔을 때만 해도 셀프 계산대나 혹은 몇몇 매장에서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걸 봤고 그 외에는 어르신들을 푸대접하는 키오스크라고 인터넷이나 뉴스에서나 접한 것이 다였다. 그러나 몇 달 사이에 키오스크는 대한민국을 점령한 수준으로 많아졌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큰 매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점, 하다못해 동네의 작은 카페까지 정말 모든 매장에 키오스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키오스크는 눈을 부릅뜬 장승처럼 매장 앞에 우뚝 솟아 있다.
이렇게 판매, 주차 등 모든 과정이 키오스크를 통해 이뤄지면서 생활에 크게 변화를 겪게 된 사람들은 바로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노년 세대이다. 60대 후반에 접어든 부모님 또래와 그 이상의 대다수는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그 마저도 이제는 기계들로 가득 차서 점점 이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게다가 키오스크는 어쩐 일인지 한글이 아닌 영어로 적힌 경우도 왕왕 있어서 이들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외국인이 많은 매장도 아닌데 굳이 영어로 써 놓은 걸 보면 황당하다 못해 사실 코웃음이 난다. 우스운 일이다. 품절, 매진이라는 버젓이 단어가 있는데 sold out이라고 적혀있다. 굳이요?
30대인 나도 어려워서 가끔 키오스크 앞에서 긴장되고 버벅거리는데 어르신들의 두려움은 오죽할까. 가뜩이나 뒤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놈의 눈치가 보여서 아예 시도조차 안 하고 나오기 마련이다. 매장에 도우미 직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은 키오스크와 직원 한 명 조합인데 그 직원은 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옆에서 키오스크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 또 괜히 물어보면 방해가 될까 싶어서 이들은 선뜻 물어보기도 망설여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의 어르신들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엄마는 카페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나갔다가도 집에 가서 마시지 뭐 하고 돌아서게 된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는 건 엄마의 삶에서 꽤 특별한 일이다. 늘 누군가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커피를 만들어주던 입장에서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하는 여유는 엄마가 젊은이들처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분을 만끽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에게 카페와 커피 한 잔은 단지 음료의 종류가 아니라 만남이자 사회 속에 속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소박하지만 아주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참 야속하게도 이들의 작은 일상마저 해체시킨다. 재빠르고 친디지털 한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이 변화의 물결에 탈 수가 없는데 한국은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려고 하지 않는다. 노년층은 하나의 예시일 뿐 그 외에도 장애인, 어린이 등 각자의 이유로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없는 소외계층이 많다. 그럼에도 키오스크는 점점 더 그 지분을 늘려가며 오직 할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아 사용할 수 있는 현존하는 오징어 게임 같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가 들고 느려진다. 지금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따라 할 수 있어도 나이가 들었을 때 새로운 문물을 지금처럼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널리 퍼진 노년이나 소외계층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 더 나아가 동물, 아이, 노년등에 대한 혐오가 계속된다면 현 젊은 세대인 우리 역시 미래에는 사회에서 소외될 것이다.(꼭 싫어하고 괴롭혀야만 혐오가 아니다. 사회에 못 들어오게 막는 것도 혐오의 일부다) 부모님이 핸드폰 하나도 어려워하듯이 나 역시 무언가를 어려워하고, 뭘 하려면 자식들이나 젊은 누군가에게 물어야만 할 수 있는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이대로의 사회 분위기라면 우리 또한 늙음을 눈치 봐야 하는 그런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키오스크를 다 없애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분명 편리한 점이 존재하고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노년층과 그 외 소외계층도 함께 할 수 있는 배려와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토스트가 먹고 싶지만 키오스크라는 괴물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걸어가는 세상, 조금 느린 사람을 낙오자라 배제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는, 여유와 배려가 넘치는 사회가 곧 오길 희망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꿈같은 얘기가 아니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