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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Aug 26. 2022

애매한 재능

narrative recipe: 애매한 생각들 속에 생강을.

#글이읽다가끝나는느낌 #그냥먹었다치는레서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엇도 될 수 없는 애매한 재능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무한 공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아, 제목에 속을 수도 있겠다 싶은 그런 책이었어.


외국에서 디자인 대학을 나왔지만 외국어도 디자인도 직업으로 갖지 않았고, 요리를 좋아하지만 배고픈 친구 무료 집밥을 차려주는 그 기분을 좋아하는 것이었고, 말을 조리있게 하기엔 시간의 압박 때문에 힘이 들어 글이 편한 것일 뿐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야. 사진을 잘 찍는다지만 그건 보통사람들보다 괜찮은 카메라로 보기 좋은걸 찍어서일 뿐 뭐하나 특출 난 것 없는 이런 애매한 재능들이 나에겐 백개쯤 더 있지.


재능인데 애매하다면 그건 어떤 기준일까 생각해보니 그 재능으로 밥벌이가 되는지의 유무가 아닐까 싶었어. 음식을 팔아 그릇 수 대로 돈을 벌던 시대에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콘텐츠로 만들어 돈을 버는 시대에 사는 나는 어쩌면 이 애매한 재능들로 무엇인가 할 수 있겠다 싶기도해.


냉동실 바게트와 긴삐라
파니니 그릴로 템페와 버섯도 같이 구운 샌드위치


뿌리채소를 참 좋아하지만 물에 빠진 뿌리채소는 뭔가 어색해서 볶는 걸 좋아해. 우엉과 당근을 가볍게 볶다가 맛간장 등으로 조미를 한 긴삐라는 빛나는 배우의 무명시절 같아. 어제 쌀밥 반찬으로 먹으면서 이것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상상을 했어. 그래서 나온 샌드위치는 채식계의 소시지빵같이 빵 중에 가장 밥 같아서 ‘밥을 먹어야지 빵만 먹냐’는 잔소리에 조금 당당할 수 있겠다 싶었어.


우엉, 연근이 들어가는 조림요리에는 반드시 생강을 채 썰어 같이 볶아. 달다 짜다 맵다 같은 맛 표현으로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생강 맛은 그저 황홀하지. 무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수토메 아로마를 칙 칙 뿌린 그런 기분이야. 무엇이든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생강 같은 작은 역할, 나의 애매함에 가능성을 알아보고 함께해주는 친구와의 한 밤. 



과학적인 요리들, 멋진 기술, 기능 좋은 도구를 사용한 요리들, 그리고 손맛이 전부인 요리들, ‘진짜 아무것도 안 넣었어’라고 했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장인의 장과 시간이 들어간 요리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애매하겠지. 그래도 무언가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건 생강, 들깨, 큐민, 이런 작은 것들. 오래된 무쇠솥. 그리고 상상.




[긴삐라는 이렇게 만들었어요]


1. 뿌리채소와 생강 한 톨을 성냥 모양으로 썰어 달구어진 무쇠솥에 기름과 중불에 볶기.

2. 어느 정도 숨이 죽으면 약불로 줄여 뚜껑을 닫아 채소에서 수분이 나오게 두기.

3. 맛간장, 맛술, 마스코바도를 넣어 약불에 조리듯 찌기.

(팬에 조리하는 경우 수분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 다시물을 조금 부어 국물이 졸아들게 익히기)


[긴삐라를 넣어 들들들면을 만들었어요]


https://brunch.co.kr/@natdaa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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