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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Apr 14. 2022

이빨 닦기 싫은 맛

narrative recipe / 별책부록

말은 부족하거나 넘쳐서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지.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어요./

물론 이러한 인사들이 적당한 부피의 마음을 전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잘 먹었을 때에는 분명 초라하고 모자랄 거야.


내 앞에 있는 한 그릇을 보아.

각 재료가 다듬어진 모양, 재료들 사이의 관계, 소스의 두께, 조화로운 맛 안에서 톡톡 튀어 오르는 요점, 그릇의 무게와 질감, 한 상의 매무새 등, 나는 허투루 지나칠 것 하나 없는 세심함에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어. 잘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차린 음식은 그런 음식을 차려본 사람이 알아보거든. 쉽지 않다 쉽지 않아.


히비 /안아 드리고 싶은 그런 맛이었어요!/


코코넛크림이 들어간 부드러운 에비 카레. 곁에는 제주 레몬으로 드레싱 한 샐러드. 개였다면 혀로 싹싹 핥아먹었을 맛. 그것이 개들의 감사 인사하는 방식. 아이였다면 손가락으로 그릇을 훑어 그대로 입에 넣어 쪽 할 법한 맛. 그것은 아이의 인사법. 삭삭 스푼이 지나갔던 자리에 최소한으로 남은 카레 자국을 보며 난 어떻게 인사를 할지 단어를 조합하고 있었어.


계산을 하려고 보니 지갑을 두고 왔고 계좌로 보내드리겠다고 했어. ‘그런 일이 왕왕 있지요.’라며 그녀는 번호를 주셨어. 입금자란에 이름을 적는 대신 인사말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앞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내가 놓여있다는 압박을 느꼈고 내 손가락은 서둘러 이체 버튼을 눌러버린 거지.


‘안아 드리고 싶은 맛이었어요.’


마스크 탓에 혹시나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 점잖은 발걸음을 이끄는 구두 소리처럼 또박또박.


그녀는 양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감동이라고 했어. 조금만 따뜻한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 쉽게, 너무나도 쉽게 눈물을 흘리는 나처럼 그녀 또한 못지않게 순두부 같은 마음씨를 가졌음에 분명해.


애월항 근처 한 노포.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비려서 먹기 난해했지만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곳이었다. 맛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지.


‘열개도 먹을 수 있겠어요.’

‘매일 먹을 수 있어요.’

‘내일 생각날듯해요.’

‘소문 듣고 왔습니다.’

‘집에 가서 침대에 누우면 생각 날것 같아요.’

나는 때론 이런 인사를 해.


 /열개도 먹을 수 있겠어요/



이렇게 많은 답례의 말들이 내 마음 속에 있지만 때론 쉽게 꺼내지 못하지.

나는 요리사에게 화답하려고 손가락으로 빈 그릇 싹싹 닦아 남은 소스 입에 쪽쪽 넣고싶겠지만  

그것은 공공장소에서 지성인에게 허락된 행동이 아닐테니 포크랑 숟가락이 스케이트 타듯이 빈 접시 위를 빙판처럼 왔다 갔다 해.


맛있는거 먹고 난 후 그 여운을 머금은 채 ‘아, 이빨 닦기 싫어!’ 이게 진짜진짜 속마음. 그렇다고 ‘이빨 닦기 싫은 맛이예요.’ 할 순 없잖아. 참 맛도 좋고 소중한 음식을 먹고 나면 음식에게 어떤 인사를 할지 문장을 생각하게 되고 그와 그녀에게 꼭 전하고싶어. 대강 만들지 않겠다는 그 마음 때문에 몸이 고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일 생각날듯해요/



연잎밥 /소문 듣고 왔습니다/


제주시 다소니


빈그릇 인사, 이만한 인사가 없지


그리고 내가 그들을 기억하듯 그들도 나의 인사를 기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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